[오늘의 글로벌 오피니언리더] '조용한 은퇴' 물 건너간 메르켈

로이터 연합뉴스

16년간 장기집권 후 연임을 사양하고 조용히 물러나려던 앙겔라 메르켈(사진) 독일 총리가 총선이 혼전 양상을 보임에 따라 선거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26일(현지시간)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도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사회민주당(SPD)에게 2~3%포인트 차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메르켈은 라이벌인 사회민주당에게 계속 밀리자 그동안 나서지 않던 모드를 버리고 공세적으로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 잡기에 나섰습니다. AFP와 dpa 등 외신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5일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CSU) 연합 총리 후보인 아르민 라셰트의 지역구 아헨으로 날아가 지지연설을 했습니다.

메르켈은 이번 총선을 "여러분의 미래, 여러분의 자녀와 부모들의 미래에 관한 선거"로 규정하며 독일의 미래를 위해 보수연합에 한 표를 행사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후계자인 라셰트 후보가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가 될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할 적임자라고 강조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기술 개발, 새로운 절차 마련과 시민사회의 능동적 참여가 필요하다면서 "라셰트는 이런 도전에서 다리를 놓을 후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전날에는 우파진영의 본산 뮌헨을 찾아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하기도 했습니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은퇴를 준비하던 메르켈 총리가 이처럼 막판에 선거전의 한복판에 뛰어든 것은 보수연합의 지지율이 좀처럼 사민당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만 해도 37%에 달했던 기민·기사당 연합의 지지율은 기민당 대표인 라셰트가 메르켈의 뒤를 이을 총리 후보로 정해진 뒤 20%까지 추락했습니다.

라셰트는 총리 후보로 지명될 당시부터 기사당 대표인 마르쿠스 죄더에게 크게 밀리는 등 약체 후보로 꼽혔습니다. 지난 7월에는 서부 독일의 홍수 피해 현장에 갔다가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반면 라이벌 사민당의 총리 후보 올라프 숄츠는 재무장관으로 재직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비교적 잘 대처했다는 평가 속에 안정적 이미지를 쌓아왔습니다.

한편, 여전히 인기가 높은 메르켈의 '구원 등판'이 기민·기사당 연합에는 오히려 패착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베를린자유대 오스카 니더마이어 교수는 "메르켈은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이지만 합동유세는 유권자들에게 라셰트보다 메르켈이 (여전히 총리직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습니다.

이규화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