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칼럼] '블랙핑크'에게 배워라
"驚波一起三山動(경파일기삼산동; 거대한 파도가 일면 산들도 들썩 들썩),公無渡河歸去來(공무도하귀거래; 임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소. 제발 돌아오소)."
당나라 시성 이백(AD 701~762)의 '횡강사'(橫江詞) 제 6수의 일부다. 위험한 강을 건너는 이를 붙잡는 애틋함이 서려있다. 마지막 문구의 공무도하에선 '공(公)'은 "임이여", '무도하'(無渡河)는 "강을 건너지 마소"라는 뜻이다. 우리 고조선의 공무도하가와 뜻과 시정(詩情)이 같다.
고조선의 공무도하가는 강물에 빠져 죽은 백수광부의 처가 부른 한(恨) 서린 노래다. 아내는 노래를 부른 뒤 따라 죽었고, 곁에서 그 곡을 들은 곽리자고라는 이가 아내 여옥에게 들려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고조선은 BC 108년에 망한다.
이백이 활동하던 때와 대략 830년 이상의 격차가 있다. 신기하게도 이 긴 시공을 지나 이백은 고조선의 공무도하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백수광부의 이야기를 다룬 '공무도하가'라는 제목의 시도 남겼다.
도대체 얼마나 유행했기에 공무도하가는 고조선이 망하고 만주벌판을 지나 다시 한(漢)나라를 거쳐 당(唐)나라까지 전해졌을까. 최근 한국 걸 그룹 '블랙핑크' 멤버 리사의 '라리사'를 보면 대략 짐작이 된다. 유튜브의 세계는 온통 '라리사' 동영상에 빠져 있다 싶을 정도다. 지난 10일 '라리사'의 동영상이 공개된 뒤 26일 현재 조회 수만 2억1200만을 돌파했다. 한국 인구의 4배다. 공개 24시간에 7000만 회를 넘겼다고 하니, 한국인 전부가 그날 하루 모두가 라리사를 보고도 모자란 수치다.
보기만 한 게 아니다. 26일 오후 1256명이 '엄지 척!'을 보냈고 각국 크리에이터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리액션 영상'들이 만들어져 쏟아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회 수는 전기 미터기처럼 올라가고 있다. 고조선의 '공무도하가'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유튜브가 없던 시절이라 반응이 지금보다 시간이 걸렸을 듯싶다. 하지만 그 덕에 유행은 더 오래 기간을 거쳐 한반도를 휩쓸고 대륙까지 전파됐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공무도하가'가 한민족의 한(恨)을 노래한 반면, '라리사'는 한민족의 흥(興)을 전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무도하가'가 한자로 전해진 반면, 라리사는 한국어 노래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굳이 따지자면 '라리사'가 더 한국적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라리사를 부른 리사는 한국인이 아니다. 태국인이다. 태국 가수가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블랙핑크와 리사의 성공 신화의 비결이 숨어있다.
바로 국제성(國際性)과 한국성(韓國性)의 조화다. 리사는 한 동영상에서 "한국은 우리나라, 태국은 내 나라"라고 말했다. 그가 태국인에 그쳤다면 오늘의 리사가 있을 수 있었을까.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고조선의 공무도하가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한국적인 한을 주제로 하면서도 대륙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자와 음률을 갖췄기에 그 인기가 1000년 가까이 유지된 것이다.
리사가 받아들인 한국성은 언어만이 아니었다. 세계 모두가 인정하는 혹독한 'K-POP'의 경쟁 시스템이었다. "매달 평가에서 떨어진 연습생은 회사에서 떠나야 했다." 블랙핑크의 멤버들이 전한 이야기다. 너무나 치열한 'K-POP'의 경쟁을 이겨낸 이들은 단숨에 세계 톱이 된다. 'K-POP'이 세계적인 이유다. 블랙핑크가 그렇고 방탄소년단(BTS)가 그렇다.
블랙핑크 리사가 보여주는 공연은 춤과 노래만이 아니다.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이 진정한 공연이다. 그런 인생에는 누구나 박수를 치게 된다. 응원을 하게 된다. 라리사에 쏟아지는 조회 수가 바로 응원이다. 리사의 노래 덕에 '비전'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온다.
비전이란 말로만, "앞으로 이런 저런 것을 하겠다"고 그저 입으로만 약속하는 게 아니다. 리사처럼 혹독함을 인내로 이겨내 성공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참된 비전이고 그런 비전은 수많은 이들을 환호하고 응원을 하게 만든다. 선거판에 비전만 쏟아내는 우리 정치권이 리사에게 배웠으면 한다
박선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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