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모호성으로 주도권 포석.."지나친 낙관땐 수싸움 밀릴수도"
남북회담본부, 화상회의 추진 예상
내년 베이징서 회담 가능성 있지만
정부 '北의 전제 조건' 만만치 않아
주한미군 등 꺼내면 수용 힘들 듯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10차례가량 친서를 주고 받았다. 두 정상 간 소통은 남북 간 통신연락선 복원으로 이어지며 4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의 군불을 지폈다. 하지만 한미연합훈련을 계기로 남북 관계는 다시 경색됐다. 문 대통령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유엔총회에서 ‘종전 선언’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당초 예상과 달리 북측은 이에 극적으로 호응했고 남북정상회담의 불씨는 다시 살아났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여러 노림수를 고려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북한이 꺼낸 전제 조건과 관련, 우리 정부의 수용 한계치가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최종 성사 여부가 갈릴 것으로 전망했다. 더욱이 북한은 이중 기준이나 적대시 정책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거론하지는 않았다. 향후 대화에서 ‘이현령비현령’ 식의 의도적인 모호성으로 향후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지나친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화상+베이징 회담, 정부 ‘투트랙’ 추진할 듯=통일부는 올 4월 남북회담본부에 북한과 전용 선로를 통해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영상회의실’을 마련했다. 코로나19 등 방역 상황이 엄중한 시기에도 남북 고위 관계자 간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실제 올 들어 각국 주요 정상이 참여하는 행사에 화상회의는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5월 서울에서 열렸던 P4G(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서는 문 대통령과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화상으로 정상회담을 진행했고 이달 열린 유엔총회에서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등이 화상으로 연설을 진행했다.
북한은 현재 코로나19 백신이 공식 공급된 바 없어 방역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상황이다. 또 중국·러시아와 국경도 여전히 엄격하게 폐쇄할 정도로 바이러스 전파에 예민하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상황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화상 정상회담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더 높다는 평가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코로나19 우려로 국경 문도 못 열고 있는 상황에서 대면 정상회담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연내 이뤄진다면 화상 정상회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맞춰 중국에서 대면 정상회담을 진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이유로 서방 국가에서 ‘올림픽 보이콧’ 주장이 나오면서 중국은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에 문 대통령을 국빈 초청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이 방중하게 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 위원장을 차례로 만날 수 있으며 여기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천명할 가능성도 있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문 대통령은 베이징 올림픽에 맞춰 방중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며 “베이징에서 시 주석, 김 위원장을 차례로 만나 종전 선언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모호한 북의 전제조건이 난관··· 한미 훈련 꺼내면 성사 어려워=남북정상회담의 관건은 북한이 제시한 전제 조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문 대통령의 종전 선언에 호응하면서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될 때만이 비로소 북남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구체적으로는 ‘이중 기준’과 적대시 정책, 적대적 언동 등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달 15일 SLBM 잠수함 발사 시험을 참관한 뒤 “우리의 미사일 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을 콕 집어 지적한 것이다. 북한 역시 이날 열차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피장파장 아니냐’는 논리로 공세에 나서기도 했다. 김 부부장은 이에 대해 “우리의 자위권 차원의 행동은 모두 위협적인 도발로 매도되고 자기들의 군비 증강 활동은 대북 억제력 확보로 미화한다”고 비판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남북 간 군사력 경쟁을 포기하고 상대에 대한 공세적인 언행을 삼가는 수준이라면 용납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한미연합훈련 폐지와 주한 미군 철수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과거 3차례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 등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 동맹의 근간을 훼손하는 정책을 섣불리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우리 국민 상당수의 반발을 불러오는 등 내부에서의 후폭풍도 만만찮을 것이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박 교수는 “북한이 정확한 전제 조건을 언급하지 않았고 공정성에 대한 이행 대상이 미국인지 우리 정부인지도 불분명하게 언급했다”며 “어느 수준의 요구인지가 확인이 돼야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청와대는 김 부부장의 담화와 관련해 “남북 관계의 복원과 발전을 위해 늘 같은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통일부는 “남북 간 원활하고 안정적인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한 만큼 우선적으로 남북 통신연락선이 신속하게 복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동효 기자 kdhy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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