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서양 동맹' 저물고 '태평양 동맹' 본격화

정의길 입력 2021. 9. 26. 16:56 수정 2021. 9. 26. 17: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며, 전후 70여년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지탱해온 미국과 유럽 사이의 '대서양 동맹'이 조락하고 '태평양 동맹'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 3개국이 지난 15일 '오커스'라는 3자 안보 협의체를 창설하기로 한 것에 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안보 체제에 불어닥친 최대 변화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영·호주의 오커스, 전후 미 동맹 구도의 최대 변화
오커스는 인도-태평양 전략 구체화하는 첫 각론
미-유럽 멀어지고, 미 주도의 앵글로 블록 강화
유럽 홀로서기..유럽연합군 창설 등 '전략적 자치' 추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의 새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 창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다른 두 정상이 화상으로 참여한 가운데 하고 있다. 왼쪽 화면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오른쪽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며, 전후 70여년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지탱해온 미국과 유럽 사이의 ‘대서양 동맹’이 조락하고 ‘태평양 동맹’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 3개국이 지난 15일 ‘오커스’라는 3자 안보 협의체를 창설하기로 한 것에 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안보 체제에 불어닥친 최대 변화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국제 질서의 기본 축이었던 대서양 양안 동맹이 저물고, 태평양을 무대로 한 ‘반중국 동맹’이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 변화를 “눈앞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의 지각 변동”이라고 평했다. 이번 발표가 영국·프랑스 등 옛 열강의 국제적 영향력을 몰락시키고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이 확립된 결정적 계기였던 1956년 수에즈 위기, 중국·소련 사회주의 블록의 해체와 반소 미-중 연대를 가능케 한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 냉전 종식의 서막이었던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에 비견된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24일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떠받치는 4자 안보 협력체인 ‘쿼드’의 첫 대면 정상회의가 열렸다.

미국이 반중국 포위를 동맹 구도의 중심축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뒤를 이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 변화를 쿼드를 기반으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발전시켰다. 오커스 조약은 중국 봉쇄가 핵심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군사적으로 구체화하는 첫 움직임이라 평할 수 있다.

오커스 결성이 갖는 지정학적 의미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대서양 양안 동맹이 쇠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재균형 정책을 표방한 오바마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탈퇴까지 시사하며 유럽 동맹국들을 폄하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뒤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동맹 복원’을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동맹의 축을 태평양으로 옮긴 뒤 영어권 국가들과 일본·한국 등 아시아의 동맹국을 엮어 반중국 동맹을 결성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독일·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의 대미 불신과 회의가 커졌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 행정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우리는 유럽인으로서 우리 운명을 위해 우리 스스로 싸워야만 한다”고 말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9년 11월 <이코노미스트>와의 회견에서 나토가 “뇌사 상태”라며 유럽의 독자적인 전략적 지정학적 힘을 키우기 위해 유럽연합군 창설을 주장했다. 독일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우르줄라 폰 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오커스 조약이 발표된 15일 유럽의회 연례 국정연설에서 “유럽연합은 군사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 주도의 나토가 없어도 유럽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오커스에 강하게 반발한 직접적 원인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수출하려던 잠수함 건조 계약이 무산된 것이지만, 그 배경엔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 유럽은 앞으로 ‘홀로서기’에 나서게 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 핵추진 잠수함 건조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밝히며 반중국 동맹 강화를 위해서라면 ‘핵 기술’까지도 이전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군비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역내 잠재적 경쟁자로 보는 인도네시아는 17일 성명을 내어 “군비 경쟁과 무력 개발이 이 지역에서 계속되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미 중국에 대한 ‘거리 두기’를 놓고 입장이 갈리는 아세안 국가들도 각자도생의 군비 강화에 나설 수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