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여초' 셀린 시아마 "페미니스트로서 영화 만든다"
열풍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1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타여초)’(2019)으로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난 지 1년 8개월. 데뷔작 ‘워터 릴리스’(2007) 등 이전 영화 3편이 앞다퉈 국내 극장가를 찾았다. 다음 달 7일에는 신작 ‘쁘띠 마망’이 개봉된다. 2년이 채 안 돼 연출작 5편이 모두 국내 스크린에 투영되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 감독 셀린 시아마는 최근 국내 예술영화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다. 25일 화상으로 그를 만났다.
‘쁘띠 마망’은 8세 소녀 넬리가 엄마 마리옹과 함께 외할머니 유품 정리를 위해 시골집을 찾았다가 겪는 일을 그린다. 넬리는 엄마가 어렸을 적 뛰놀았던 숲에서 자신을 빼닮은 동갑내기 마리옹을 만난 후 마법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마리옹은 알고 보니 어린 시절의 엄마다. 넬리는 마리옹과 친구로 지내며 엄마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시아마 감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전반적으로 상실감을 지니게 됐다”며 “지금은 가족을 통한 치유가 좀 더 강한 의미를 갖게 된 시기”라고 평가했다. 시아마 감독은 영화를 빠르게 선보이기 위해 지난해 프랑스가 2차 전면봉쇄(록다운)된 시기에 촬영을 해냈다.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에서 영감을 얻어 ‘쁘띠 마망’을 연출했다”며 “미야자키와 픽사의 영화들처럼 세대를 아우르면서도 특히 아이들을 위한 아름답고도 철학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관습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시아마 감독은 기존 영화와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주인공들부터가 모두 여자다. 그의 영화들은 여자들끼리 사랑하거나 우정을 나누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도 다르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뚜렷하다. 그의 영화들에 국내 여성 관객들이 유난히 지지를 보내는 이유다. 코로나19 확산 직전 개봉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예술영화로선 드물게 15만 명이 봤다. ‘톰 보이’(2011)와 ‘워터 릴리스 ‘걸후드’(2014)는 코로나19로 극장 관객이 쪼그라든 상황에서도 1만~3만여 명이 관람했다.
시아마 감독은 자신의 연출 방식에 대해 “그동안 유지돼 온 영화의 규칙과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경향을 지녔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나도 배우고 진화해 가는 듯하다”며 “(영화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선) 본인 생각을 뒤집으려는 정치적 욕망이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시아마 감독은 “이는 성별의 문제라기보다 관습에 도전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며 “나는 여성이라서가 아닌 페미니스트 감독으로서 사회에 던질 수 있는 메시지를 핵심적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한 순간 생각만 해도 행복"
시아마 감독은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에 오른 직후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봉 감독이 시상식 후 열린 축하 파티에서 시아마 감독에게 국제장편영화상 트로피를 쥐여주며 “이 상은 당신이 탔어야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시아마 감독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봉 감독과 칸국제영화제에서는 황금종려상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국제장편영화상을 두고 경쟁을 펼쳤다.
시아마 감독은 “파티에서 봉 감독이 한 말은 정확하게 ‘당신이 이 트로피를 쥐어야만 해(You Should Hold This)’였다”며 “해석의 여지가 있어 좀 더 아름다운 말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정치적 동질감을 지닌 봉 감독과 아카데미상 경쟁을 펼치는 몇 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영광이었다”며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제 입가에 웃음이 바로 맺힐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었다”고도 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는 봉 감독을 만나기 이전부터 쭉 ‘마더’(2009)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아마 감독은 “2년이 채 안 돼 제 영화 모두가 한국에서 개봉된 것은 정말 놀랍다”고 했다. “(한국 관객이) 저와 제 영화에 대해 궁금해하니 매우 기쁜 마음”이라고도 했다. “제가 한국에서 왜 그리 인기가 있는지 콕 집어 말하긴 어려워요. 여러분께서 그동안 갈망했던 것, 볼 수 없었던 것을 제 작품에서 발견하신 듯합니다.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를 제 영화에서 찾으신 듯한데, 저는 이게 일종의 ‘케미스트리(화학 작용)’라고 생각해요.”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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