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오징어 게임'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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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국 영화가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다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의 영예를 안고, 한국 노래가 미국 빌보드차트 1위를 밥 먹듯이 하는 걸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만든 황동혁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이정재·박해수가 주연을 맡은 9회 분량의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 은 지난 1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 일주일 만에 전세계 넷플릭스 티브이(TV) 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오징어> 남한산성> 수상한>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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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서정민 ㅣ 문화팀장
내 평생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국 영화가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다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의 영예를 안고, 한국 노래가 미국 빌보드차트 1위를 밥 먹듯이 하는 걸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린 시절 그렇게 높게만 보였던 문화적 장벽들이 요 몇년 새 하나둘 무너지는 걸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는 중이다.
그런 사례가 하나 더 늘었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인 화제작으로 우뚝 선 것이다.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만든 황동혁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이정재·박해수가 주연을 맡은 9회 분량의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지난 1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 일주일 만에 전세계 넷플릭스 티브이(TV) 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한국 드라마로는 처음 거둔 성과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 요인을 두고 갖가지 분석이 쏟아진다. 드라마는 벼랑 끝에 몰린 ‘밑바닥 인생’들이 최종 우승하면 456억원을 차지하는 게임에 목숨을 걸고 참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데스 게임’ 장르물이라 할 수 있는데, 중요한 건 한국식 변주다. 우리에겐 친근해도 외국인들에겐 호기심을 부르는 딱지치기,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같은 추억의 놀이와, 이른바 ‘케이(K) 신파’로 일컬어지는 각 인물의 절절한 사연이 색다른 재미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얘기다.
여기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얘기를 해보려 한다. 바로 플랫폼의 힘이다. 한국 드라마가 외국에서 바람을 일으킨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한류의 도화선이 된 <겨울연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일본 등 아시아에 한정된 국지적 현상이었다. 각 나라 방송국을 통해 전파됐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오징어 게임>은 전세계 190여개국에 동시 공개됐다.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 덕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 대중음악사를 새로 쓴 방탄소년단(BTS)의 성과도 글로벌 플랫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튜브로 전세계에 음악을 알리고 트위터로 외국 팬들과 소통하지 않았다면,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와도 협업하는 오늘날의 방탄소년단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이돌 그룹뿐 아니라 인디 음악인들도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하는 게 일반화됐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유튜브와 달리 넷플릭스는 아무나 올라탈 수 없다. 소수의 선택된 작품만이 190여개국 시청자와 만날 기회를 얻는다.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들이 아무리 투자를 늘리고 경쟁력을 높인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지점이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날 시작한 남궁민 주연 첩보 액션 드라마 <검은태양>(MBC)이 지상파 방송과 토종 오티티 웨이브가 아니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면 어땠을까? 다른 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요즘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이 협업을 원하는 1순위는 넷플릭스다. 넷플릭스에 기획안을 내고 잘 안되면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리는 게 일반적 수순이라고 한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통해 이런 흐름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의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
많은 성공 사례가 나와서 한국 콘텐츠의 위상을 빛내는 건 반길 일이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그림자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넷플릭스에 채택되면 제작비를 보전하고 안정적 수익을 올릴 순 있겠지만, <오징어 게임>처럼 ‘대박’을 터뜨려도 추가 수익이 없는 게 보통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번다”는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넷플릭스 성공 공식에 맞춘, 자극 수위 높은 장르물 쏠림 현상이 강화될 거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문화의 저력은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각양각색의 취향에서 비롯된, 기상천외한 콘텐츠가 밑거름처럼 쌓여야 찬란한 문화의 꽃이 필 것이다. 글로벌 플랫폼이 우리 콘텐츠를 잘 이용하듯이, 우리도 중심을 잃지 않고 플랫폼을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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