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쳇바퀴 탈출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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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포 전에 책을 하나 냈다.
이상적으로 말해 사전 편찬자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겸손히 수집하고 이를 사전에 주기적으로 반영한다.
모든 책임을 사전에 떠넘기거나 전적으로 기댈 필요가 없다.
사전은 늘 과거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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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달포 전에 책을 하나 냈다. 띄어쓰기 원칙을 엄히 지켜 교정지를 빨갛게 고쳐서 갔다. ‘부드러운 직선’을 닮은 편집자는 난감해했다. 교정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오. 독자가 읽기 편하게 하는 게 원칙이오! 그 원칙이 뭐요? 웬만하면 붙여 쓰는 것이라오. ‘죽어 가는’보다는 ‘죽어가는’이 잘 읽힌다는 것. 앙심이 생기기보다는 그 말이 반가웠다. 독자 본위라!
이상적으로 말해 사전 편찬자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겸손히 수집하고 이를 사전에 주기적으로 반영한다. 그렇다면 저자, 기자, 편집자 등 모든 글쟁이들은 말의 관습을 만드는 주체다. 모든 책임을 사전에 떠넘기거나 전적으로 기댈 필요가 없다.
철자법은 완벽하지 않다. 사전은 늘 과거형이다. 말의 세계에는 고착과 생성이 공존한다. 그러니 함께 순환의 질서를 만들어가자. 변화에 둔감한 체제나 제도는 따로 바꾸더라도, 현장에서 어떻게 쓰는 게 잘 읽힐지 열심히 언어실험을 감행하자.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코너에 “‘목 넘김’과 ‘목넘김’ 중 뭐가 맞나요?”라 묻고, ‘목 넘김’이 맞다는 답이 달리면 얌전히 그 명령을 따르는 걸로 소임을 다하는 게 아니다. 나의 독자라면 ‘목 넘김’이 잘 읽힐지, ‘목넘김’이 잘 읽힐지 판단하면 어떨까. 각자의 감각대로 시도한 언어실험이 쌓이고 쌓여야 내일의 관습이 된다.
띄어쓰기에도 엘리트주의가 아닌,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시민은 묻고 국가는 답하는 일방주의가 아니라, 한쪽은 시민, 한쪽은 사전이 비슷한 무게로 오르내리는 시소게임이 되어야 한다. 언어민주주의는 글쟁이들의 줏대와 깡다구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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