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카페인, 로고스의 친구

한겨레 2021. 9. 2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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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

전범선|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마약은 카페인이다. 인류의 90%가 상시 복용한다. 주로 커피와 차의 형태로 마신다. 카페인은 중독성이 강하다. 수면을 유도하는 아데노신 작용을 방해하여 칼로리 없이 에너지를 주는 환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카페인이 분해되면, 누적된 피로감이 몰려온다. 반감기가 6시간이라서 정오에 마셔도 자정에 25%가 몸에 남아 있다. 카페인의 마력은 인간의 생체 리듬과 맞아떨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금단 증상이 나타나고, 모닝 커피를 마시면 주기가 반복된다.

우리는 카페인을 마약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모두가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카페인은 인간의 의식을 강력히 변화시킨다. 매일 취하기 때문에 기본값이 되었을 뿐이다. ‘카페인 금단 증상’의 전문가인 롤런드 그리피스 박사는 두통과 피로, 주의력 결핍, 현기증, 근육통 등을 경고한다. 나는 커피를 한번 끊어보기로 했다. 카페인에 마비되지 않은 정신 상태를 오랜만에 경험하고 싶었다.

작심삼일. 너무 피곤하고 비생산적이었다. 정신이 흩어져서 한가지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내가 아닌 기분이었다. 원고 마감이 있는데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글쓰기는 추상적인 사고를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한글이라는 소리글자를 쓸 때는 생각을 차례 지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렬 배치해야 한다. 카페인은 의식을 모아 선형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을 탁월하게 향상시킨다. 지금도 나는 에스프레소 원샷의 효과로 문자를 빠르게 나열하고 있다. 커피는 우리의 생산성을 책임진다.

근대 문명의 역사는 커피의 역사다. 중동에서 처음 마시기 시작했다. 9세기 에티오피아부터 15세기 예멘까지 다양한 설이 있다. 이때는 이슬람의 황금기다. 수학, 과학, 철학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유럽과 아메리카로 전해진 것은 17세기다. 근대의 태동 과정에서 커피의 공은 지대했다. 원래 서양인의 ‘최애 마약’은 알코올이었다. 오염된 물 대신 술을 주로 마셨다. 밭일을 하면서 맥주를 마셨고 어린이에게도 사과주를 줬다. 알코올은 알다시피 합리적 판단에 도움이 안 된다. 카페인의 반대다. 사교장이 술집에서 카페로 바뀌면서 계몽주의와 이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도시인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낭독하고 토론했다. 뉴턴은 친구와 카페에서 떠들다가 그 자리에서 돌고래를 해부했다. 볼테르는 하루에 커피를 사오십잔 마셨고, 디드로 역시 ‘카페인발’로 <백과전서>를 썼다. 미국과 프랑스 혁명은 커피가 창조한 공공 영역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카페인은 로고스의 친구다. 로고스는 이성을 뜻하기 전에 그리스어로 ‘말’이다. 현대인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분석한다. 언어는 이성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직선적이다. 하지만 세상은 직선이 아니다. 사방 팔방 십방으로 존재한다. 시간도 우리가 느끼기에는 직선적이지만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휘어져 있다. 로고스는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는 아주 단편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방식이다. 카페인은 그런 로고스를 증폭하여 근대 문명을 건설했다. 인간이 자연을 효과적으로 분류하고 측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성의 빛으로 어둠을 정복하게 했다. 낮밤의 경계를 허물었다. 카페인 없이는 야간 근무와 로켓 배송도 없다. 노동자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마약이기에 자본주의 국가가 허락한다.

카페인은 놀라울 정도로 건강에 무해하다. 유일한 단점은 수면 방해다. 로고스의 친구가 잠과 꿈을 침해하는 건 당연하다. 카페인 문화에서 에로스와 무의식의 영역은 줄어든다. 산발적이고 비선형적인 느낌,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연결이 잊혀진다. 인간의 행동은 의식이 결정하지만 의식은 카페인, 설탕, 알코올, 니코틴 같은 마약이 결정한다. 주의하고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커피 한잔 마시며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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