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종교] 전지구적 의제 앞에 선 종교

한겨레 2021. 9. 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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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종교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갤럽이 1500명의 한국인에게 물었다.

불교인의 59%, 천주교인의 65%, 개신교인의 80%는 종교가 사회에 도움을 준다고 응답한 반면, 비종교인의 82%는 종교의 사회적 기여를 부정했다.

종교인들이 익명으로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종교에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종교의 사회적 기여를 악의적으로 평가절하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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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뉴노멀-종교]구형찬 ㅣ 인지종교학자

“요즘 종교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갤럽이 1500명의 한국인에게 물었다. 2014년에는 응답자의 63%가 종교의 사회적 기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평가는 7년 만에 거꾸로 뒤집혔다. 2021년의 조사에서는 62%의 응답자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종교가 사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커진 것이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비율도 변했다. 2014년에는 5 대 5였지만 2021년에는 4 대 6으로 비종교인이 더 많아졌다.

올해의 조사 결과에는 특별히 눈길을 끄는 지점이 있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인식이 극명하게 대조적이라는 사실이다. 불교인의 59%, 천주교인의 65%, 개신교인의 80%는 종교가 사회에 도움을 준다고 응답한 반면, 비종교인의 82%는 종교의 사회적 기여를 부정했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커다란 인식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한 걸까?

종교의 사회적 기여가 비종교인 사이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종교인들이 익명으로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종교에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종교의 사회적 기여를 악의적으로 평가절하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 말이다. 종교가 우리 사회에 실제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연구가 필요한 문제다.

사회를 위한 ‘진정한 도움’에 대해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판단이 서로 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판단은 매우 중요하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내용과 형식의 도움은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도움인지 아닌지 여부는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수용자의 입장에서,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판단할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가 도움을 주는 사회의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인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도 있다. 종교는 열심히 돕고 있다는데 사회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종교인의 대부분은 종교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종교의 사회적 기여란 결국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 속에서나 확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가능성은 매우 흥미롭다. 종교가 사람 간의 협력을 증대시킴과 동시에 제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가깝지 않은 타인을 적극적으로 돕는 매우 예외적인 생물종이다. 많은 학자들은 인류가 혈연을 뛰어넘어 협력하게 되는 데 종교적 믿음이 큰 기여를 했을 것으로 본다. 이른바 ‘종교적 친사회성’ 가설이다. 지난 10년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과 하버드대학 등 북미와 유럽 학자들을 중심으로 수행된 연구에서도 종교가 협력 행동을 증진시키는 경향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종교인들이 같은 종교인들 간의 협력을 위해서라면 집단 전체에 해가 되더라도 타인에게 기꺼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즉, 종교적 친사회성은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종교는 우리 사회에 도움을 주는가? 이 질문은 ‘우리 사회’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답변될 수 있다. 물론 종교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선시하는 심리적 편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닌 협력 능력의 한계와 가능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팬데믹과 기후위기, 난민, 지속가능발전목표 등과 관련해 전지구적 협력을 필요로 하는 긴급한 의제가 넘쳐난다. 이를 진지하게 다루는 ‘인플루언서’들이 늘고 있으며, 몇몇 종교단체도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이 전지구적 의제가 진정한 호소력을 발휘하려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문제로 인식되어야만 한다. ‘우리 사회’의 범위를 새롭게 성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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