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 추악한 민낯 #악덕고용주 #나치숭배자 #반자유주의자(서프라이즈)

서지현 2021. 9. 2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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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가 죽음 이후 오명을 쓰게 됐다.

9월 26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자 월트 디즈니를 둘러싼 어두운 이면이 폭로됐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뒤 그를 둘러싼 어두운 폭로들이 쏟아졌다.

이 가운데 월트 디즈니의 최측근인 애니메이터 아트 배빗이 그에 대한 구체적인 폭로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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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서지현 기자]

월트 디즈니가 죽음 이후 오명을 쓰게 됐다.

9월 26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자 월트 디즈니를 둘러싼 어두운 이면이 폭로됐다.

앞서 미국이 낳은 세계적 만화가이자, 할리우드 최고 영화 제작자로 꼽히는 월트 디즈니는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디즈니랜드를 개장했다. 이어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 월드를 계획, 엡콧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했다. 엡콧 프로젝트란, 원형 공동구역에 공항, 산업단지 등을 세워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미래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특히 월트 디즈니는 엡콧 프로젝트에서 토지와 주택 소유가 금지된 공동체 사회를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 같은 계획이 공동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파시스트 사상, 즉 자유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비쳐진다며 나치의 공동체 방식과 흡사하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후 1966년 월트 디즈니가 폐암으로 사망함에 따라 엡콧 프로젝트는 평범한 테마파크로 바뀌어 개장됐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뒤 그를 둘러싼 어두운 폭로들이 쏟아졌다. 1940년대 당시 급여 구조가 체계화되지 않았던 디즈니 사는 직원들 간 업무가 같아도 급여는 천차만별이라는 문제점과 배급 작품에서 직원들 이름을 제외하고 오로지 월트 디즈니의 이름만 적혀있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이로 인해 1941년 영화만화가조합이 결성돼 디즈니 사 직원들이 대거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협상 대신 직원들을 해고, 마피아와 결탁해 노조 지도자를 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디즈니 사를 향한 세간의 여론이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월트 디즈니는 이를 만회하고자 세계 2차대전을 이용해 히틀러의 얼굴에 토마토를 던지는 도날드덕 등 나치를 비판하고 애국심을 고양하는 선전 영화와 포스터를 제작했다.

이 가운데 월트 디즈니의 최측근인 애니메이터 아트 배빗이 그에 대한 구체적인 폭로를 내놨다. 월트 디즈니가 번드(나치를 숭배하는 독일인과 미국인의 모임)에 참석했다는 것. 또한 월트 디즈니는 나치 총통 히틀러가 총애했던 독일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직접 행사를 주최하기도.

이처럼 월트 디즈니는 수많은 업적을 이뤘음에도 사후 악덕 고용주, 반자유주의자, 나치 수배자 등 사후 부정적인 인물로 재평가받게 됐다. (사진=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뉴스엔 서지현 sjay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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