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피》, 사람 잡는 군대를 말하다

하재근 문화 평론가 2021. 9. 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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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 소재'의 한계, 리얼리티로 극복..기존 방송 관행에도 경종

(시사저널=하재근 문화 평론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디피(D.P.)》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DP는 Deserter(탈영병) Pursuit(추격)의 약자로, 탈영병을 잡는 헌병대의 군무 이탈 체포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육군에만 있는데 100여 명 정도이고 통상 2인 1조로 활동한다. 민간 영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기르고 사복을 입는다. 활동비와 수갑도 지급된다. 디피 보직은 탈영병 급감(2014년 406건에서 지난해 91건)에 따라 내년 7월 폐지될 예정이다. 

작품을 쓴 김보통 작가가 디피 출신이다. 본인의 실제 경험이 깔려 있기 때문에 묘사가 생생하다. 2014년 11월15일부터 김 작가가 '한겨레'에 연재했던 만화 《D.P 개의 날》이 원작이다. 당시 '윤 일병 사망 사건'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등이 크게 이슈가 됐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작품이 나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바로 '이 조직은, 군대는 괜찮은 것일까?'라는 질문이다. 

그런 질문을 담은 내용이기 때문에 당연히 작품 분위기가 무겁다. 이런 드라마가 인기를 끌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군대 예능이 인기를 끈 적은 있지만, 드라마에서 군대는 금기였다. 너무 어둡고, 답답하고, 시청층도 제한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피》도 만화의 인기 이후 바로 판권이 팔렸지만 실제 드라마가 만들어지기까지 무려 6년이나 소요됐다. 이나마도 넷플릭스가 등장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만약 기존 방송사만 있었다면 《디피》는 아직도 제작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디피(D.P.)》의 한 장면ⓒ넷플릭스

생생한 묘사로 공감 이끌어내 

그렇게 드라마판에서 기피하던 소재였는데 놀랍게도 《디피》는 큰 인기를 모았다. 기성 방송사에서 방영하던 드라마들보다 화제성도 더 컸고, 호평도 잇따랐다. 이것은 《디피》가 효과적인 전략으로 군대 드라마의 한계를 벗어나면서, 동시에 대단히 리얼한 묘사로 국민적인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건 디피라는 소재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민간 영역에서 사복을 입고 활동하는 보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배경이 등장하면서 병영만 비출 때에 비해 답답함이 완화됐다. 그리고 탈영병을 찾아서 체포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치 추격 액션 장르물 같은 느낌도 추가됐다. 

그래서 극적 재미가 커졌다. 거기에 군대 부조리의 리얼한 묘사까지 더해지자 반응이 폭발한 것이다. 특히 군대 부조리 묘사 부분이 이 작품이 주는 특별한 울림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TV 콘텐츠에서 본 적이 없었던 수준의 생생한 묘사가 등장해 광범위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디피》 속에서 군대는 폭력이 구조화된 별세계로 그려진다. 물리적 가혹행위와 인격적 능욕이 수시로 벌어지는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군대 구성원들은 그런 일들을 그저 무감각하게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군 생활을 이어간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가해자와 방관자가 되고 누군가는 직접적 피해자가 되지만, 결국 모두가 군대라는 조직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이 《디피》의 주제의식이다. 

작품은 주인공이 입대하는 모습부터 보여준다. 지인들과 작별하고 훈련소에 들어간 순간부터 인격적 존중을 받지 못한다. 장교는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통제를 편하게 하기 위해 묵인한다. 헌병대로 배치받은 후엔 생활관에서 본격적인 가혹행위를 당한다. 디피병이 된 후엔 탈영병을 쫓는데, 그 과정에서 탈영병의 사연을 통해 군대의 부조리에 직면한다. 

특히 이 드라마의 원작이 만들어진 2010년대 중반에 군 생활을 했던 시청자들이, 마치 자신이 겪은 군대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 같다며 이 작품의 고증을 인정했다. 디피 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인정했다. 군대 시절 생각이 나서 그냥 눈물이 흐른다는 시청자도 있고,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라고 호소하는 시청자까지 나왔다. 

그렇게 리얼하게 그렸다는 군대 내부의 분위기는 참혹한 수준이다. 잔혹한 폭력뿐만 아니라 성희롱까지 벌어져 인격을 파괴시킨다. 군 예능으로 인기를 모은 《진짜 사나이》하고는 전혀 다른 군대 모습이다. 원래 작가가 원작을 만들 때 문제의식 중 하나가 '《진짜 사나이》엔 나오지 않는 군대의 실상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예능이 군대를 미화한다는 반발이 있었는데, 바로 그런 흐름 속에서 《디피》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은 여전히 많은 국민이 군대를 불신한다는 뜻이다.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대한민국 군대의 민낯이 폭로된 것이다. 군 측은 '요즘은 달라졌다'고 하지만, 이 드라마 공개 이후에도 공군에서 폭행과 유사성행위 강요 등으로 고참병들이 고발당한 사건이 불거졌다. 이런 뉴스들이 나오는 한 군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긴 힘들 것이다. 

가해자까지 결국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무서운 대목이다. 디피병이었던 작가는 과거 부대 밖에서 탈영병을 쫓다가 가끔 복귀하는 식으로 생활했는데, 복귀했을 때 충격적인 모습을 봤다고 했다. 

"저번에 맞던 애가 이번에는 다른 애를 때리고 있어요. 섬뜩했어요." 바로 이래서 군이라는 조직이 사람을 가해자로 만든다는 인식이 생겼다. 신병으로 들어가 인격적 모멸과 폭력을 당하면서 영혼이 파괴되고, 자신이 고참이 됐을 때 그런 폭력적인 문화를 대물림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작가가 던진 '이 조직은, 군대는 괜찮은 것일까?'라는 질문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속에선 후임을 괴롭히는 병장과 괴롭힘을 당하는 일병이 등장한다. 병장은 작가가 군대에서 경험한 선임들의 특징을 조합한 인물이고, 괴롭힘당하는 일병은 유도를 배우다 사람을 공격하기 싫어서 그만둘 정도로 마음이 여린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렇게 여린 마음 때문에 괴롭힘의 대상이 되고 결국 폭력에 물들다 탈영하고 만다. 이런 사례를 통해 작품은, 군대에서 몇몇 괴물이 사고를 치는 게 아니라 군 조직 자체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괴물이라고 역설한다. 군대가 사람을 잡는다는 이야기다. 

그런 문화를 만든 배후는 지휘관이다. 《디피》 속에서 부대장은 자신의 보신, 진급에만 신경 쓴다. 사병이 당한 피해 같은 것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만 중요할 뿐이다. 이런 설정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것도, 실제 우리 군 지휘관들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군대 안에서 폭력 사건이나 성 비위 사건이 벌어져도 은폐 축소된다는 의혹이 많은데, 지휘관의 보신주의가 은폐 축소의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가혹행위 사건 등을 그저 자신의 승진을 위협하는 장애 요소 정도로 여긴다면 자연스럽게 은폐를 기도하게 되고,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를 적으로 여기게 된다. 이러한 사고 구조가 가능한 것은 사병을 존중해야 할 주권자, 인격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동원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병에게 갑질을 하고, 사병이 당하는 피해엔 무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지휘관들이 있을 때 군대는 괴물이 된다. 

ⓒ넷플릭스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 군

바로 그런 식의 문화가 군 내에 어느 정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어 왔는데 군에선 으레 부인해 왔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는 그런 군의 주장이 아닌 드라마 《디피》에 공감을 표시했다. 지금 군대는 좋아졌다고 하지만, 작가는 "《디피》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군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잊지 말고 시민들이 계속 군을 감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 들어 탈영병이 급감할 정도로 군 문화가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위계구조 속에서 '까라면 까는' 조직 문화가 온존하고, 하급자에 대한 인격적 존중이라는 걸 모르고 자신의 보신만 생각하는 지휘관이 있다면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디피가 '수사해서 가혹행위의 진실을 밝혀주겠다'고 하니 탈영병은 '차라리 군대가 바뀔 거라고 하십시오!'라고 일갈했다. 군대는 바뀌지 않을 거라는 냉소다. 과연 대한민국 군은 그런 냉소를 신뢰로 바꿀 수 있을까? 

■ 기존 방송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 

《디피》가 역대급 리얼리티를 구현한 드라마가 된 것은 OTT 넷플릭스와 관련이 있다. 일반 TV 채널만 있었다면 《디피》는 아예 제작되지 않았거나 설사 제작됐더라도 리얼리티를 많이 덜어냈을 가능성이 크다. 폭력 묘사가 사라진 자리에 《태양의 후예》 같은 러브라인이 들어섰을 수도 있다. 

《디피》의 성공은 기존 드라마 관습에 안주해 왔던 기성 방송사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 이미 그런 경종이 여러 번 울리긴 했는데, 모든 방송사가 기피했던 군대 소재 드라마가 다시 한번 큰 경종을 울린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플랫폼들에 비해 불리한 기존 방송의 처지도 그대로 보여줬다. 설사 《디피》 수준의 리얼리티 표현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고 해도 기존 방송에선 어차피 불가능했을 것이다. 욕설이나 폭력 묘사 등에서 기존 방송은 사회적 제재를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미디어 전면전 상황인데 기존 방송에만 불리한 구조다. 특히 국내의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운 해외 OTT 플랫폼이 다양한 표현을 하는 데 가장 유리하다. 《디피》는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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