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평 쪽방에 이미 두꺼운 이불..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

김진 기자,구진욱 기자 2021. 9. 2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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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 103번지 일대 쪽방촌.

8년째 이곳에 거주 중인 류모씨(67·남)는 무더위를 넘기고 찾아온 초가을 날씨를 반기지 않았다.

85개동, 737개실(室), 거주민 550여명이 한 개 번지수로 묶인 이 곳은 지난해 기준 서울역 일대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큰 돈의동 쪽방촌이다.

거주민 수가 1030여명(지난해 기준)인 서울역 일대 쪽방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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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선 누구와 대화 못해..추워지면 나갈 수 없고"
코로나 방역 집중하던 1년9개월간 외로움 누적
24일 오후 류모씨(67·남)가 거주하는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건물 내부 모습. © 뉴스1 구진욱 기자

(서울=뉴스1) 김진 기자,구진욱 기자 =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 103번지 일대 쪽방촌. 8년째 이곳에 거주 중인 류모씨(67·남)는 무더위를 넘기고 찾아온 초가을 날씨를 반기지 않았다.

선선한 바람도 잠시, 추위가 본격화하면 전기장판 온기에 의지해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1평 남짓한 그의 방안에는 이미 두꺼운 이불이 깔려 있었다.

류씨의 방은 건물 꼭대기 층인 4층에 있다. 높이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계단들을 등산하듯 한참 올라야 7개 방문이 늘어선 좁은 복도가 나타난다.

위암 수술 전력에 당뇨약, 혈압약, 심혈관약까지 달고 사는 류씨지만 날이 좋은 때면 높은 계단 아래로 내려가 외출을 하는 게 낙이다.

"집에 가만히 있다 보면 누구랑 대화할 수 없으니까 (공원에) 가는 거지. 운동하고 싶어 공원 한 바퀴 돌다 보면 종로가 '제2의 고향' 같아져. 그러면서 코로나 위기를 견딘 건데, 추워지면 바깥에 나갈 수가 없잖아."

류씨는 "방안에만 있으면 온종일 지루하니까 점심때는 (동네) 지인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밥을 먹는다"며 "수다를 떨다가 저녁때 들어와서 내가 밥을 해 먹는다"고 덧붙였다.

85개동, 737개실(室), 거주민 550여명이 한 개 번지수로 묶인 이 곳은 지난해 기준 서울역 일대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큰 돈의동 쪽방촌이다. 이곳 주민들은 올 여름 무더위와 코로나19 확산세를 무사히 넘겼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도 1명도 나오지 않았다.

정기검진·방역과 방역물품 배급 등 지방자치단체 노력뿐 아니라 외출을 자제하는 등 주민들의 협조도 한몫을 했다. 이곳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80% 달한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건물 벽에 내걸린 코로나19 예방행동수칙 안내문. 뉴스1 DB © News1 박지혜 기자

그러나 복병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방역에 집중하던 지난 1년9개월간 누적된 주민들의 외로움이다. 나들이 등 각종 대면 프로그램이 취소되면서 홀로 방 안에서 보내는 주민들의 시간이 길어진 탓이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은 주민도 많아 줌(ZOOM)이나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비대면 활동을 진행할 수도 없다.

줄어든 대면 프로그램의 공백은 물품 배급으로 채워졌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공개된 '쪽방거주자 생활안정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 5개 쪽방 밀집지역에서 명절공동차례상, 문화행사 경험 지원 등 '정서 안정 및 자긍심 고취 활동'은 총 43회로 전년(199회) 대비 약 78% 감소했다.

반면 식품·생필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초생활지원' 활동은 같은 기간 46만4000여건에서 57만여건으로 23% 늘었다. 이에 일부 사회복지사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푸드마켓이 된 거 같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온다.

류씨 역시 "예전에는 동사무소에서도 같이 모여서 얘기하고, 밥먹고 나누는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그게 다 비대면으로 없어지니까"라며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까"라고 말을 흐렸다. 이어 "나는 친인척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없고, 혼자 외로우니까"라며 "(겨울이 와서) 안 나가면 앉아서 TV만 쳐다보고 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고민이 돈의동 쪽방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주민 수가 1030여명(지난해 기준)인 서울역 일대 쪽방촌도 마찬가지다.

시내의 한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본인은 '우울하지 않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설문조사나 1대 1로 대면을 해보면 '자살 충동도 있었다' '좀 우울했다'는 내용이 많다"며 "물질적 지원도 좋지만 이번 연말에는 나아가 정신적·심리적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soho090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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