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미 있는 커피가 꽃이 되려면 [박영순의 커피 언어]

- 2021. 9. 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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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테이스팅 자리에 가면 종종 "복합미가 있다"는 표현을 듣게 된다.

"커피에서 복합미가 느껴진다"는 것은 신맛, 단맛, 쓴맛처럼 커피의 보편적인 속성과 함께 무엇인가 칭찬할 만한 요소가 더 있다는 뜻이다.

단지 '복합미가 뛰어난 커피'라는 표현에 그치는 것은 향미전문가로서 준비가 덜 돼 있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쳇말로 '복합미라 퉁 치지 말고' 구체적인 이름을 불러주어야 그 커피가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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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두에서부터 멜론향을 풍기는 파나마 게이샤 커피는 복합미가 뛰어나다. 진가는 복합미가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속성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마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감성을 피워내는 데 있다.
커피테이스팅 자리에 가면 종종 “복합미가 있다”는 표현을 듣게 된다. “커피에서 여러 가지 맛이 느껴진다”는 말인데, 생각할수록 모호하다. 사실 ‘복합미’는 우리 사전에 없다. 그럼에도 향미 표현에 별 거부감없이 쓰이고 있다. 무슨 뜻일까?

커피 맛을 표현하는 데 쓰이는 단어들은 와인에서 빌려 온 것이 적잖다. 그중 하나가 ‘컴플렉시티(Complexity)’이다.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을 때 향미 속성들이 다투지 않고 잘 어우러지는지(Balance), 작은 개성들은 명료하게 드러나 나름대로 고유의 영역을 갖는지(Intensity), 목 뒤로 넘긴 뒤에 여운은 길게 이어지는지(Length) 등의 요소와 함께 와인 품질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다.

컴플렉시티는 우리말로 ‘복잡성’이라고 풀이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탓에 언급을 주저하기 쉽다. “복잡하다”는 것은 뭔가 불편하고, 깨끗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따라서 향미 전문가들은 ‘복합미’라는 단어를 만들어 감성을 순화시킴으로써 긍정적인 뜻을 담으려 애쓴다. 이런 마음이 서로 통해서 복합미는 어엿한 ‘향미 단어’로 자리를 잡았다. “커피에서 복합미가 느껴진다”는 것은 신맛, 단맛, 쓴맛처럼 커피의 보편적인 속성과 함께 무엇인가 칭찬할 만한 요소가 더 있다는 뜻이다.

와인에서는 포도 품종마다 다르게 지니게 되는 1차향, 양조와 숙성 과정에서 부여되는 2차향, 병숙성에서 스며드는 3차향을 한 잔의 와인으로 모두 감상할 수 있을 때 “컴플렉시티하다”고 평가한다.

커피는 와인과 달리 로스팅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향미가 표출되긴 하지만 향미가 뇌를 자극해 입으로 하여금 표현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은 다를 수 없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신 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나 추억이 많을수록 복합미가 있는 커피이다.

새까맣게 잊고 살았던 추억의 한 장면이 향기 한 점으로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환상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커피의 향미는 기억을 깨우쳐 그리움이란 정서(emotion)를 만들어 낸다. 커피의 맛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골방으로 들어가 묵상하는 심정으로 커피를 대하면 좋다. 고요한 가운데 한 잔의 커피를 머금고 향과 맛이 내 기억 속의 어느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지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이어 떠오르는 이미지 속의 상황, 예컨대 추운 겨울 따뜻하게 품어 주는 어머니라거나 복숭아 과수원길을 걷고 있다거나 운동회날 솜사탕 또는 단물이 흐르는 군고구마가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묘사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커피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려는 맹목적인 수작이 결코 아니다. 커피의 향미를 우리의 인지체계와 연결 지어 영원히 잊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단지 ‘복합미가 뛰어난 커피’라는 표현에 그치는 것은 향미전문가로서 준비가 덜 돼 있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속성들이 많이 보이는 커피를 만나면 향미에 대한 경험이 적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시쳇말로 ‘복합미라 퉁 치지 말고’ 구체적인 이름을 불러주어야 그 커피가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된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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