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내 집의 꿈' 간신히 이뤘는데..하필 귀신의 집

한겨레 2021. 9. 2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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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쇼미더고스트
취업도 안 되고, 미래도 안 보이는
불안한 청년들의 으스스한 동거기
인디스토리 제공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집이 문제다. 최근 극장에 걸린 영화들에서도 한국인들의 불안에 기반암처럼 자리 잡고 있는 주거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코믹 재난극 <싱크홀>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동원(김성균)이 집들이를 하는 날 빌라 전체가 땅속으로 꺼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쉬이 올라갈 수 없는 한국인의 재난과도 같은 현실이 싱크홀에 빠진 절망감에 중첩된다.

<보이스>에서도 주인공 서준(변요한)의 비극은 ‘내 집 마련의 꿈’ 실현을 목전에 둔 순간, 그 돈을 피싱조직이 털어가면서 시작된다. 피싱 피해는 그저 돈을 잃은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영혼까지 끌어모으느라 고생했던 과거와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일 줄 알았던 미래가 모두 담보 잡히는 일이다. 한국인에게 ‘집’이란 ‘마이 스위트 홈’이라기보다는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거대한 싱크홀이자 인생 전체를 낚아채는 피싱이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집 이야기가 있다. 코믹 호러 청춘물 <쇼미더고스트>다.

인디스토리 제공

귀신의 집에 모인 희망 없는 청년들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호두(김현목) 앞에 산발을 한 여자가 나타난다. 흡사 ‘처녀귀신’ 같은 모습으로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등장한 이 여자는 호두의 20년 지기 예지(한승연)다. 취업 준비생인 예지는 또 취업에 실패했다. 그는 자신의 빛나는 스펙을 읊으며 이 이상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나는 희망이 없어….” 울부짖던 예지는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호두에게 자기 돈 1500만원을 갚으라고 말한다. “그 돈 모두 월세 보증금으로 들어갔는데.” 호두는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33만원, 믿을 수 없이 저렴한 가격에 드림하우스를 찾았다고 답한다. 황당해하던 예지는 별수 없다는 듯이 호두의 집에 눌러앉아버린다. “집에 안 가냐?”고 묻는 호두에게 예지는 말한다. “이 집의 지분은 누구에게 더 많지?” 그리고 덧붙인다. “살던 집 보증금 ‘땡겨서’ 주식으로 다 날려서 갈 데도 없어.”

그렇게 영혼을 끌어모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파묻어버린 집에서 호두와 예지의 동거가 시작된다. 예지가 들어온 날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아니나 다를까, 원한 맺힌 귀신이 두 사람 앞에 나타난다. 허우대 멀쩡한 2층 주택이 어째서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나왔는지 설명이 되는 순간이다. 원귀를 무시해보려고도, 계약을 파기해보려고도, 다른 세입자를 찾아보려고도 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한가지뿐이다. 집에서 귀신을 내쫓는 것.

여기서도 문제가 생긴다. 비싼 건 집값만이 아니다. 착수금 1천만원에 평당 100만원씩 올라가는 퇴마비 역시 두 사람의 능력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결국 검색에 검색을 거쳐 특별 할인 중인 퇴마사 꽃도령을 발견하는데, 꽃도령 행세를 하던 청년 기두(홍승범) 역시 귀신을 볼 수만 있을 뿐 퇴마는 하지 못하는 사이비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예지가 입금한 퇴마비는 이미 연체된 카드 값으로 다 빠져나가버렸고, 좌절한 예지는 오열한다. 오갈 데 없는 기두까지 귀신의 집에 눌러앉으면서 세 사람의 ‘귀신 잡기’가 이어진다.

허우대 멀쩡한 저렴한 2층 주택
이사 직후 눈앞에 나타난 귀신

21세기에 만난 ‘아랑형 귀신’

영화는 지금, 여기 청년의 삶을 서사의 밑절미로 삼는다. 그 안에는 취직난, 경제난, 주거난뿐만 아니라 학벌 차별, 지역 차별, 성차별의 현실이 함께 놓여 있다. 심지어 자신의 어려움을 청년 세대에게 떠미는 어른들은 편법을 저지르는 데 부끄러움이 없고, 다종다양한 부정의를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 제도의 무능함은 이 모든 걸 섞어서 반죽으로 만드는 믹서기 역할을 한다. 이 총체적 난국 속에서 만들어진 반죽으로는 ‘귀신의 집’밖에 굽지 못한다.

원한 서린 귀신 소희(임채영)는 ‘아랑형 귀신’이다. 아랑은 한국 전설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원귀다. 조선시대에 스토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아랑은 마을에 새로운 원님이 부임할 때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그들 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원님들은 아랑을 보는 족족 겁에 질려 죽어버리고, 드디어 담력이 뛰어난 신임 부사가 등장해 아랑의 원한을 풀어준다.

소희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였다. 그는 2층집에서 시체로 발견됐는데, 모두들 그가 자살했다고들 말했다. 그러나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살아생전 소희는 ‘죽음’으로써가 아니라 가해자를 체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가해자가 소희를 살해하고 자살로 꾸몄던 것이다. 귀신이 된 소희는 진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아무도 소희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희-아랑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오직 예지뿐이었다.

인디스토리 제공

예지가 고통스러운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21세기 도시괴담’에서 과거 ‘사대부 남성’이 맡았던 해결사 자리에 서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라넷에서 엔(n)번방까지, 공권력이 무기력했던 디지털 성범죄에서, 죄를 죄라 명명하면서 실제로 가장 먼저 몸을 움직여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던 존재가 메갈리아 유저들과 추적단불꽃 등을 비롯한 청년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화는 호두와 기두 캐릭터를 통해 여성과 함께 이 시대의 폭력에 저항하는 청년 남성의 모습을 제안한다. 그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곁에 서고, 친구인 예지의 통찰을 신뢰한다.

청년 불안에 어떻게 응답할까

영화 끝, 소희의 천도재를 지낸 세 청년은 드림하우스에서 비로소 편안한 저녁을 맞이한다. 그래서 어쩌면 ‘쇼 미 더 머니’가 아니라 ‘쇼 미 더 고스트’일 것이다. 고스트 덕분에 그들은 저렴한 집을 얻었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를 찾았다. 물론 한국 사회가 이 블랙코미디가 그리는 청년의 불안에 응답하는 방식이 유령을 풀어놓는 것일 수는 없다.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입구에서 “세대가 아닌 체제를 교체하라”고 외치다 연행된 ‘청년시국회의’의 요구처럼 ‘전환의 정치’로 응답해야만 할 것이다.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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