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506] 배구는 왜 6명으로 경기를 할까

김학수 2021. 9. 2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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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도쿄올림픽 여자배구에서 4강 성적을 올린 여자배구팀이 기념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자료사진]
1895년 ‘배구의 아버지’ 윌리엄 모간이 처음으로 배구를 창안한 뒤 오랜 시간을 거쳐 매우 전문화된 종목으로 발전해 왔다. 현재는 공격 및 수비를 위한 전문화된 선수들 6명의 선수가 코트에서 뛴다. 선수들은 상대편으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시계 방향으로 한 위치씩 회전하며, 백코트 선수들은 어택라인 뒤에서 점프해야만 네트 너머로 공을 칠 수 있다.

현재처럼 선수수와 규칙이 정해진 것은 많은 변화를 거쳐서 가능했다. 당초 배구가 처음 출발할 때는 지금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미국 매세추세츠주 스프링필드 YMCA에서 체육교사로 활동하던 모간은 배구를 창안할 때 먼저 경기규칙 10개조를 만들었다. (본 코너 487회 ‘배구 최초규칙(Original Rules of Volleyball)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참조) 배구 최초 규칙 10항은 경기하는 선수에 대한 규정이었는데 여러 명이 같이 경기를 할 수 있다고만 돼 있었다.

모건은 1896년 처음으로 배구 시범경기를 가졌다. 양팀 5명으로 구성된 소방대원팀과 시청직원팀은 모건이 만든 경기규칙에 따라 경기를 벌였다. 시범경기를 본 YMCA 이사 알프레드 할스테드 교수는 배드민턴을 본 따 ‘민토네트(Mintonette)’라 불리던 종목 이름을 공이 공중에 떠있다는 의미인 ‘발리볼(Volley Ball)’로 명명할 것을 제안했다. (본 코너 454회 ‘왜 ‘Volleyball’을 '배구(排球)라고 말할까‘ 참조)

영국 개신교도로 이루어진 미국 주류계층(WASPS-White Anglo Saxon Protestants) 청소년과 성인들의 체력 강화와 건강한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배구는 한동안 미국내에서 레크리에이션으로 활용되는데 그쳤다. 하지만 YMCA 선교사 들을 통해 미국 뿐 아니라 캐나다를 비롯해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 등으로 보급되면서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YMCA 선교사였던 엘우드 브라운은 필리핀에서 모건의 규칙을 발판으로 삼아 배구를 인기종목으로 자리잡도록 했다. 191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1회 극동게임 대회에 배구를 포함시킨 것도 그가 큰 기여를 했다. 아시아에서는 그가 보완한 ‘브라운 규칙’에 따라 16명의 선수가 경기를 가졌다. 당시 필리핀에선 3번의 공격을 하는 ‘쓰리 히트’, 볼을 공중으로 띄우는 ‘세트(Set)’와 강타를 터트리는 ‘스파이크(Spike)’ 등을 통해 현대 배구와 흡사한 경기를 갖고 있었다. (본 코너 455회 ‘토스(Toss)는 일본식 영어, 세트(Set)가 정확한 영어 표현이다’ 참조)

1916년 미국 YMCA는 미국 대학스포츠를 운영하는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가 보편적인 규칙을 제정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경기에 실용적으로 쓰일 규칙을 개선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1차세계대전 중 미군과 학생들사이에서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된 배구는 1918년 팀당 선수를 6명으로 제한했다. 6명으로 정한 것은 코트에서 전문화된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6명으로 경기 인원을 정한 뒤 배구 경기는 좀 더 신체적, 기술적 능력에 맞춰 더욱 경쟁적인 스포츠가 될 수 있었다. 1922년 후위 선수가 전위에서 공격하는 것을 금지하고 쓰리히트와 듀스제도를 시행했다. 1926년 6명 이하로 하는 경기는 몰수게임으로 처리한다는 규칙을 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구는 1930년대 초반까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게임 규칙이 있었다. 동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내에서 각종 대회가 열리고 있었지만 통일된 규칙이 사실상 없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49년 배구를 비올림픽 종믁올 인정한 뒤 같은 해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남녀배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공통된 규칙을 가진 세계적인 종목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배구가 비록 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YMCA 체육지도자들에 의해 아시아로 전파돼 필리핀에서 현대 배구의 초석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일본 여자팀이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남자팀이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각각 획득했으며 한국 여자팀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낸데 이어 2021 런던올림픽과 2020 도쿄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한 것은 아시아가 세계 배구 발전에 기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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