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도 고생했어" 코로나시대 우리집만의 '불금'[초보엄마 잡학사전]

권한울 2021. 9. 2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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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금요일을 매주 손꼽아 기다린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초보엄마 잡학사전-148] "엄마, 오늘 '불금'(불타는 금요일)이야?" 금요일 아침, 유치원 등원 준비로 바쁜 와중에 작은 아이가 묻는다. "응, 오늘 금요일이야"라고 대답하면 아이 얼굴이 밝아진다. '불금'은 아이들이 저녁에 먹고 싶은 과자를 먹으며 실컷 텔레비전을 보는 날이다. 5일 내내 유치원 다니느라 고생한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처음부터 우리집에 불금이 있었던 건 아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는 부부가 번갈아가며 회식하는 일이 잦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불금을 보내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이들 재우고 남편과 맥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자고 약속하곤 하지만, 그날따라 아이들이 일찍 잠들지 않아 마음 속으로 화를 낸 적이 많았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인데 왜 아이들을 빼고 부부가 시간을 보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아이들과 함께 불금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코로나 덕분에 회식도 크게 줄었다.

우리집 불금은 이렇다. 각자 퇴근 및 하원을 한 뒤 집에 모여 간단히 식사를 한 뒤 부부는 식탁에 앉아 맥주나 와인을 즐기며 마주앉아 얘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원하는 과자를 먹으며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본다. 이따금 부부가 하는 이야기가 궁금한지 아이들이 식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면 다같이 둘러앉아 플라스틱 와인잔에 물을 따라 건배를 한다. 유치원에서 즐거웠던 일이나 속상했던 일은 무엇인지 얘기를 나누며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듣는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회사에서 있었던 얘기나 바빴던 일들을 들려준다.

불금에는 자정이 넘을 때까지 놀기도 한다. 다음날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더 자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깨우는 게 미안해서 일찍 재우려고 하지만 금요일은 모두가 자유다. 아이들은 금요일을 매주 손꼽아 기다린다.

유치원 상담 때 아이 담임 선생님이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부모가 회사에 가듯, 아이들도 유치원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선생님과 사회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라 부모와 마찬가지로 지치고 피곤할 수 있단다. 직장인이 금요일 저녁을 기다리며 버티듯, 아이들도 금요일을 기다리며 버티는 게 아닐까 싶다.

가족끼리 불금을 보내보라고 추천해준 집마다 반응이 좋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돼도 우리집 불금도 계속되길 바란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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