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희의 타로 에세이]어쩌겠는가, 이 사랑이라는 '낭패'를.. '15번 악마 카드'
[서울=뉴시스] “술 먹고 전화할까 봐 내 핸드폰에서 그 사람 번호 지웠어요. 그런데 얼마 전 그 사람 번호 다시 입력했어요. 혹시 모르고 전화 받을까 봐….”
후배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앞으로 후배가 홀로 감당해야 할 지옥의 시간이 떠오르며 마음이 저려왔다.
단식 이후에 보식(補食) 기간이 필요한 것처럼 실연에도 그런 보정(補情)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3일 단식했으면 3일 동안 찬찬히 양을 늘려 정상 식사량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사랑한 기간에 비례해 그런 보정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마도 그 보정의 대부분은 집착을 놓아버리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15번 타로가 떠올랐다.
‘악마’ 카드는 왜 ‘사랑’ 카드와 닮아있을까
재미있는 것은 이 카드가 6번 사랑 카드와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형상은 변해 버렸다.
천사는 악마로 변했다. 몸은 사람 형상을 하고 있지만 얼굴은 개, 소, 당나귀가 혼합된 모습이다.
남녀의 모습도 변했다. 머리에 뿔이 달리고 쇠사슬에 묶여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서로를 묶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묶고 있다. 그것도 문고리에. 목에 걸린 느슨한 쇠고랑으로 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벗고 저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묶여 있다.
혹자는 6번 카드의 남녀는 선악과를 먹기 전 모습이고, 15번 카드의 남녀는 선악과를 먹은 이후 쾌락을 알게 된 모습이라고 한다. 사랑이 집착으로 변한 모습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실전에선 성욕·물욕·불륜, 이에 따른 집착·구속, 빠져나가기 힘든 유혹 등으로 해석한다. 6번의 사랑이 동등한 연결이고 순수한 결합이었다면 15번에 와서는 그것이 집착과 구속으로 변한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겐 ‘스스로’ 묶여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집착이나 구속을 만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그래서 벗어나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한다는 메시지 같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 스스로를 수감한 것이 비단 사랑뿐일까. 늘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월급은 나오잖아’하고 안주하는 마음, 불의를 보고도 싸우기 싫어 적당히 타협했던 순간, 사람들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망상, 스스로 노예가 된 상태, 적당한 타협, 자의적 차단 등 그 모든 것이 감옥일 것이기에 말이다.
안드레아스 바그너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패러독스(모순)로 가득 차 있으며, 패러독스를 기초로 구축되어 있다고 한다. 가령 우리의 자유는 대출이나 근로계약서 같은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들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삶의 가장 지독한 패러독스는 ‘살자’와 ‘자살’일 것이다.
사랑은 하나의 염증, 너라는 지옥
그런데 왜 사랑에서만 영원을 꿈꾸는지. 사랑이란 뇌에서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화합물이 분비되는 것이고, 그 유효 기간은 고작 3년일 뿐이고, 그동안에 펼쳐지는 오감의 화려한 착각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걸까.
집착이란 욕망의 이상 세포 분열. 그때부터 사랑은 하나의 질병이 된다. 그때부터 사랑은 하나의 염증(炎症), 너라는 악성궤양, 너라는 지옥이 된다.
그러나 난 이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내 젊음도 한때 사랑에 수감돼 본 적 있었으므로.
‘낭패(狼狽)’는 전설 속에 나오는 동물이다. ‘狼’은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았으며, 반대로 ‘狽’는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았다. 둘이 힘을 합하면 제대로 달릴 수 있었지만 혹여 다투기라도 하여 서로 떨어져 있게 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낭패란 조어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남녀야말로 낭패의 조합이다. 같이 있으면 머리가 외롭고 떨어져 있으면 몸이 외롭다. 어쩌겠는가. 이 낭패를….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 golenelia@hanmail.net
※이 글은 점술학에서 사용하는 타로 해석법과 다를 수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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