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불평등 해소', 이낙연은 '인격'이 핵심 키워드, 윤석열은 '국가의 실패', 홍준표는 '이념 갈등 극복' 내세워

곽아람 기자 입력 2021. 9.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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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들이 꼽은 '내 인생의 책'

평등, 공정, 인격, 이념, 환경….

‘내 인생의 책’ 만으로 그 사람의 실체를 완전히 파악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가 우선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가늠할 수는 있다. 자신의 정체성과 책의 정체성을 고려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을 약 5개월 앞두고 Books가 여야 대선 후보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입니까?” 모두 19명에게 질문했고, 그중 더불어민주당 후보 4명, 국민의힘 8명, 정의당 3명과 무소속 및 그 외 당 후보 등 17명의 답을 소개한다. 추미애 민주당 후보와 김윤기 정의당 후보는 응답하지 않았다.

민주당 후보 4명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국민의힘 후보도 4명만 사진 및 그래픽을 실었다. 다른 후보들이 추천한 책은 기사에서 소개했다. 순서는 지난 16일 여론조사 기관 4곳이 합동으로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National Barometer Survey) 대선 후보 적합도에 따랐다. 전국지표조사는 매주 목요일 발표되나,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 23일은 발표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더민주]

불평등 해소를 꿈꾸는 이재명과 인격이 먼저라고 선언하는 이낙연. 민중과 함께 세상을 바꾸겠다는 박용진과 역사를 거울로 삼겠다는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꼽은 ‘내 인생의 책’을 보면, 그들의 세계관은 이렇게 요약된다. Books의 요청에 민주당 대선 후보 다섯 명 중 네 명이 호응했고, 추미애 후보는 응답하지 않았다.

◇이재명 “중산층이 두터워야 선진국”

“중진국에서 선진국의 문턱으로 들어선다면 GDP(국내총생산) 하나만을 재고 있어선 안 된다. 이제는 볼륨이 1순위가 될 순 없고,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건강을 재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가장 훌륭한 척도는 그 사회의 중산층 비중이다.”

‘눈 떠보니 선진국’의 한 구절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꼽은 ‘내 인생의 책’이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잘 담겨 있다”며 추천했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인 IT 전문가 박태웅(58) 한빛미디어 의장이 쓴 이 책은 “허리가 튼튼한 사회가 늘 가장 건강했다.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가 선진국”이라면서 성장보다는 불평등 해소에 방점을 찍는다.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분배를 강조해 온 이 후보의 정치적 견해와도 맞아떨어진다. 이 후보는 지난달에도 “하루 저녁에 단번에 읽은 책”이라며 페이스북에서 이 책을 권했다.

◇이낙연, “리더는 겸손해야”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은 물리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취약한 부분을 강하게 단련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내재된 결함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의 기본문제는 자기중심성에 있다.”

이낙연 전 총리가 추천한 ‘인간의 품격’은 겸손과 절제를 강조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쓴 책으로 아이젠하워 미국 전 대통령, 소설가 조지 엘리엇,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등 결함을 거울 삼아 성장한 위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저자는 “유능한 리더는 인간 본성의 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그 결에 따라 사람들을 이끌려 한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가끔 이기적이고, 속 좁고, 자기기만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겸양의 리더십을 강조한다. 이낙연 후보는 “‘사랑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죄’라는 시인 마거릿 윌킨슨의 메시지가 특히 가슴에 남는다”고 했다.

◇박용진 “만인을 섬기며 세상을 바꾼다”

“해몽은 지금까지 사람들을 그만큼 하늘로 받들어 지극한 정성으로 섬긴 것이오. 그러나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기로 하면 몇 생애를 바쳐도 그저 그뿐이오. 그것은 범인들이나 할 일이오. 해몽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 아니, 이 나라의 병을 고칠 생각을 하시오. 그것은 만인을 하늘로 섬기는 일이오.”

박용진 의원이 추천한 소설 ‘녹두장군’에서 동학 지도자 중 한 명인 서장옥이 전봉준에게 하는 말이다. ‘해몽(海夢)’은 전봉준의 호다.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송기숙 소설 ‘녹두장군’은 모두 12권짜리 대하 소설. ‘사람이 곧 하늘’이라며 지배층에 맞서 봉기한 민중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박 후보는 “나도 세상을 바꾸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두관 “역사에서 지혜를”

“백이와 숙제는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어진 덕망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했어도 굶어 죽었다.”

‘사기열전’의 백미(白眉)로 불리는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저자 사마천은 이렇게 묻는다. 은나라에 대한 지조를 지키려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 고사리를 뜯어먹다 아사(餓死)한 백이·숙제를 언급하면서다. “역사에서 혜안을 찾는다”며 김두관 의원이 추천한 ‘사기열전’엔 격동과 파란의 춘추전국시대를 치열하게 겪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로 수록됐다. 지조와 소신의 문제를 다룬 백이열전 외에 사나이의 진정한 우정을 다룬 관포지교(管鮑之交) 고사 등이 실려 있다. 김 후보는 “독일 유학 때도 가져간 책”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국힘]

현 정부의 적폐 청산 선봉에 섰다가 야당 유력 주자가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고른 책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여당이 아닌 야당으로 출마했다는 점에서, 그의 책 선택은 당연히 의미심장하다. 홍준표 의원이 택한 ‘지리산’은 해방 전후 이념 갈등을 다룬 대하소설이다. 대중적인 이미지와 닿아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1790년에 나온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을 꼽으며 진중한 학자 이미지를 보여줬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인간이 만든 법과 신(神)의 용서에 대한 ‘죄와 벌’을 꺼내 들었다. 판사 출신이자 기독교 장로라는 정체성이 나타난다.

◇윤석열 “소득이 공평하게 분배되면 정치도 공평한 경쟁이 펼쳐진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로마시대부터 현대 중국까지 여러 사례를 살피면서 어떤 국가가 성공하고 어떤 국가가 실패했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들은 “국가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지리적, 역사적, 인종적 조건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제도에 있다”며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윤 후보는 “분배가 공정하지 않은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홍준표 “해방 직후 좌우 대립 보는 듯”

홍 후보는 해방 전후 이념 대립을 다룬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을 골랐다. 그는 “40여 년 전에 처음 읽으며 해방 직후 좌익과 우익의 대립을 리얼하게 경험했다”며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좌우 간의 극렬한 대립이 해방 직후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리산’에는 항일 투쟁을 하다가 공산주의자가 되는 박태영이 등장한다. 홍 후보는 “박태영이 ‘선택에 실패한 책임을 마지막까지 진다’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정부를 잘못 선택하면 그 책임을 국민이 져야 한다”고 했다.

◇유승민 “개혁은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하는 심정으로”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의 창시자’로 불린다. 버크는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변화의 수단이 없는 국가는 보존의 수단을 갖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개혁은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하는 심정으로 경건한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 후보는 “버크의 이 같은 말을 새기며 정치를 해왔다”고 했다. 연금 개혁처럼 인기 없을 정책도 소신에 따라 주장하는 그가 버크를 택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최재형 “용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그는 31년을 판사로 일했다. 65년 평생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전당포 노파 자매를 살해한 청년의 구원을 다루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그래서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보인다. 최 후보는 “학창 시절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한 책”이라며 “판사 생활을 하며 매일같이 고민해야 하는 인간의 죄와 고난, 그에 대한 벌함과 용서의 의미를 배우게 한 책”이라고 했다.

◇원희룡 “선의보다 책임이 필요”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골랐다. 원 후보는 “정치를 시작하며 만난 책”이라며 “정치인이 되려는 내게 선의보다 책임이, 독선이 아닌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했다”고 말했다. 책에서 베버는 정치인의 자질로 세 가지를 꼽았다. ‘대의에 대한 헌신’ ‘선의를 내세워 변명하지 않고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사태를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균형 감각’.

하태경 의원은 ‘리콴유 자서전’을 택했다. “리콴유는 자원도 자본도 없던 싱가포르를 부국으로 일으켜 세웠다. 국민 통합과 선진국가 창조를 위한 헌신적인 리더십에 감명받았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오늘의 남이섬을 만든 강우현이 쓴 ‘상상망치’를 꼽았다. 황 후보는 “혁신을 실천한 저자의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추진력에 감동했다”고 했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을 선택했다. 안 후보는 “1996년에 나온 책이지만 산업 구조 및 노동 환경 변화에 대처할 경제 정책 개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심상정은 기후 위기 해결, 김동연은 약자 대변 강조]

정의당 후보들은 환경과 돌봄 문제를 다룬 책을 꼽았다.

심상정 의원은 ‘미래가 불타고 있다’를 선택했다. 그는 “기후 위기 앞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환경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이 쓴 책으로 남은 10년 동안 ‘그린 뉴딜’을 통해 기후 붕괴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재생에너지 사용, 기업 규제, 부유세 신설 등을 통해 ‘공정한’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황순식 정의당 경기도당위원장은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꼽았다. 그는 “고교 시절 문명과 에너지, 환경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했던 책”이라고 했다.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는 ‘돌봄 선언’이라고 답했다. 그는 “’돌봄 대통령’이 돼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책”이라고 했다. 가족 단위가 아닌, 국가 더 나아가 지구 차원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김윤기 전 정의당 부대표는 답을 보내지 않았다.

무소속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레미제라블 완역판’을 꼽았다. 그는 지난 8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 출신”이라며 “힘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있다”고 말했다.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는 유일하게 자신이 쓴 책을 선택했다. 2000년 나온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로 현재 절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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