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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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시인은 강원도에서 태어난 시인이고, 지금도 강원도에 산다.
그러나 나는 자연이 항상 채우는 것, 가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 따라 나를 채워보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곳이 가득 차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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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수숫대만 서걱이는 빈들입니다
희망이 없는 빈들입니다
사람이 없는 빈들입니다
내일이 없는 빈들입니다
아니,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무도 들려 하지 않는 빈들
빈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당신은―고진하(1953∼)
고진하 시인은 강원도에서 태어난 시인이고, 지금도 강원도에 산다. 그의 피에는 강원도 산골짜기 물이 흐르고, 그의 숨에는 강원도의 공기가 머물 것이다. 시인의 육신이 자연에 기대 있는 것처럼, 그의 생각과 마음도 자연에 의탁해 있다. 그러니 그의 시가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에서 빚어지는 건 당연하다. 자연은 의지할 만한가. 그렇다. 자연은 그렇게 든든한가. 그렇다. 그러나 나는 자연이 항상 채우는 것, 가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의 피를 채우고 우리의 숨도 채우지만 때로 자연은 텅 비어 있다. 비어서 무엇을 하나. 빈 자연마저 허투루 있지 않다. 그것은 늘 우리에게 뭔가를 준다. 비어서도 우리를 껴안아 주려고 한다.
고진하 시인의 ‘빈들’은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삶의 첫 깃발이었다는 말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시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비어 있는 들을 닮아 나도 다 내려놓자. 비어 있는 곳에 뭔가가 꽉 차 있다. 그것 따라 나를 채워보자. 이런 마음이 이 시를 만들었고, 시인의 삶을 만들었다. 나중에 시인은 ‘다시 빈들에서’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그만큼 빈들의 마음이 중요했다는 말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무엇을 얻었나.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곳이 가득 차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생각을 처음부터, 마음을 처음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다 비우는 데서 시작된다. 마음의 빈들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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