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지붕과 뿌리
[경향신문]
작업의 시간을 서핑에 비유한 작가 쥘 드 발랭쿠르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서핑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 파도를 기다려야 한다. 적절한 파도를 만나면 정확한 타이밍에 파도의 경사면을 타고 올라 균형을 잡고 이동한다. 바다의 신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종교적 제의에서 출발한 원주민 문화는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다리며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바닷가에서 밝고 깨끗한 햇빛을 만끽하며 서핑을 즐기는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그가 구사하는 색은 캘리포니아의 햇빛처럼 선명하다.
그는 서핑을 배우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이상적인 조화가 전해주는 감각을 경험했다. 어떤 밑그림도 없이 빈 캔버스에 곧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그려나가는 작가는, 바다 위에서 파도를 기다릴 때의 마음처럼 캔버스 앞에서 결정의 순간을 기다린다. 서핑을 할 때 보드에 혼자 올라서서 파도를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캔버스 앞에 홀로 선다. 그러나 “아무리 혼자 있어도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혼자 있어도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 놓은 풍경 안에 홀로 있을 뿐, 그곳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코 달아날 수 없는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다. 두 개의 얼굴 사이에서 긴장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은, 자연에 의지하고 도전하면서 원하는 풍경을 만들고 파괴한다. 화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를 오가면서 사회, 문화, 정치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의 역동적 에너지를 밝은 색채, 시원한 붓질에 실어 캔버스로 내보낸다. 그 안에서 느끼는 외로움, 연대의식, 납득할 수 없는 모순은 풍경 사이로 숨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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