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인종·계층 너머에 존재하는 정의를 말하다

강구열 입력 2021. 9. 25.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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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4일 오후 4시 30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57번 버스 안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란스러웠다.

퇴근을 하거나 쇼핑을 나가는 사람들, 심부름을 가는 아이들이 뒤섞인 그곳에 고등학생 사샤와 리처드도 있었다.

백인 중산층 가정 밀집 지역의 소규모 사립학교에 다니는 사샤와 범죄가 만연한 동네의 대규모 공립학교를 다니는 리처드는 이 버스에서 단 8분 정도 동선이 겹치는 것 말고는 별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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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슈카 슬레이터/김충선 옮김/돌베개/1만5000원
57번 버스/대슈카 슬레이터/김충선 옮김/돌베개/1만5000원

2013년 11월 4일 오후 4시 30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57번 버스 안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란스러웠다. 퇴근을 하거나 쇼핑을 나가는 사람들, 심부름을 가는 아이들이 뒤섞인 그곳에 고등학생 사샤와 리처드도 있었다. 백인 중산층 가정 밀집 지역의 소규모 사립학교에 다니는 사샤와 범죄가 만연한 동네의 대규모 공립학교를 다니는 리처드는 이 버스에서 단 8분 정도 동선이 겹치는 것 말고는 별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사건은 그날, 그 짧은 시간 57번 버스 안에서 벌어졌다. 사촌과 친구의 부추김에 리처드는 사샤의 치마에 불을 붙였고, 그것은 리처드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피해를 낳아 사샤는 다리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치마를 입은 소년’ 에이젠더(스스로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인식하지 않아 특정한 성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 사람) 사샤와 흑인 소년 리처드가 당사자인 이 사건은 ‘성소수자를 노린 끔찍한 혐오범죄’라는 프레임으로 조명되며 당시 미국 사회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책은 이런 시선이 온당한지를 따지며 손쉽게 선택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깊은 고민 속으로 밀어넣는다. 사건 자체의 추이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은 물론 두 당사자의 가족과 친구, 그들의 삶, 그들을 둘러싼 공동체와 사법제도 등을 들여다보며 관용과 정의, 용서, 공동체의 회복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우선 ‘동성애 혐오(homophobic)’의 철자도 모르는 리처드가 정말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묻는다. 또 사건의 심각성을 이유로 16살의 리처드를 성인으로 기소하는 것이 공정한지를 따진다. 무엇보다 피해자인 사샤의 가족들이 리처드를 성인 교도소에 보내는 것에 반대했다. 또 석연치 않은 경찰 조사의 과정,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피부색에 따라 차이나는 성인으로 기소되는 비율, 성인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소년범의 재범률 등을 보여준다.

사건이 알려지고 오클랜드 지역사회는 사샤를 응원하고 혐오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책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리처드 역시 공동체가 보호해야 할 아이가 아니냐고 묻는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성인 범죄자들 사이에 던져 놓고 진짜 괴물로 키우는 것보다는 미성년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또 다른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으로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아닐지 고민하는 것이다.

책을 옮긴 번역가 김충선은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포용력과 관용으로 생각이 옮아가게 된다”며 “자신이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말하는 청소년을 우리 사회는 포용할 수 있을까. 저소득층의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고 피부색도 다른 전과 2범의 청소년은 우리 사회에서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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