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케임브리지·실리콘밸리, 팬데믹 기회로 혁신 가속도

입력 2021. 9. 25. 00:22 수정 2021. 9. 25.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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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걸리버여행기
실리콘밸리 팔로 알토의 스탠퍼드대학로. 코로나19 위험을 낮추기 위해 차도를 막고 식당들이 야외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 차상균]
19개월 만에 자유의 몸으로 미국 보스턴의 케임브리지와 실리콘밸리에 ‘디지털 걸리버’ 출장을 다녀왔다. MIT와 하버드가 있는 케임브리지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글로벌 혁신의 아이콘이다. mRNA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가 여기에 있다. 스탠퍼드와 버클리를 품고 있는 실리콘밸리는 팬데믹 때문에 더욱 빨라진 디지털 대전환의 메카이다. 두 곳 모두 팬데믹의 최대 수혜자다.

20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팬데믹은 세계적으로 개인은 물론 기업과 대학, 국가의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모든 국가와 지역이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와 다른 여건에서 출발해 다른 길을 걸어온 미국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두 지역의 백신 접종률이 높은 것은 과학과 혁신 마인드가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이지만 높은 백신 접종 덕분에 식당에서는 테이블당 2인, 4인 같은 인위적 제한도 없다. 자율 판단에 맡긴다.

대신 실리콘밸리에서는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해 차도를 막고 식당들이 야외에서 영업한다. 팬데믹 때문에 준 교통량도 이 현명한 결정에 한몫했다. 낮에는 재택근무하고 저녁때는 동료들끼리 식사하며 토론하기도 한다. 팬데믹 이후 사무 환경의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재택근무 활용해 새 프로젝트 활발

코로나19 mRNA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 빌딩 앞에 선 필자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모더나와 MIT, 하버드대가 있는 보스턴 케임브리지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글로벌 혁신의 아이콘이다. [사진 차상균]
대학의 팬데믹 대처에서도 과학이 우선이다. 스탠퍼드대학은 모든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백신 접종과 코로나19 자가 테스트를 의무화하고 가을 학기부터 대면 교육을 재개하기로 했다. 수강 신청을 하려면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글로벌 혁신을 선도하는 이 두 지역에서 팬데믹은 더는 걸림돌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과 기업이 일상화된 재택근무를 활용해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빌 게이츠의 이름이 붙어 있는 스탠퍼드 컴퓨터사이언스학부 건물은 출입을 막은 상태에서 리노베이션이 한창이다. 스탠퍼드와 버클리는 급증하는 데이터사이언스 교육 연구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각각 3억 달러 규모의 대형 교육 시설 건축을 시작했다.

모더나가 자리 잡고 있는 케임브리지의 MIT 켄들 스퀘어는 대학과 기업을 위한 교육, 연구 개발, 주거 시설이 모여 있는 열린 혁신의 공간이다. MIT와 케임브리지시가 2010년부터 추진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의해 현대적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다. MIT의 통합 암연구원, 브로드 부부의 기부금으로 설립한 MIT하버드 공동 생명과학 연구원, 유전자 기술 회사인 CRISPR 테라퓨틱스, 노바티스, 화이자와 같은 글로벌 생명과학 기업 연구소, 신생 벤처, 벤처 캐피털이 경계 없이 한곳에 모여 있다.

보스턴 케임브리지의 브로드연구원. [사진 차상균]
모더나의 창업도 2010년 하버드 의대 조교수 데릭 로시 박사가 획기적인 실험 결과를 창업 성공 경험이 있는 티머시 스프링거 교수와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스프링거 교수는 로시 교수와 함께 약물전달기술 전문가인 MIT 로버트 랭거 교수를 찾아가고 랭거 교수는 이 두 사람을 바로 같은 MIT 화학공학과 출신의 벤처 캐피털리스트 누바 아폐얀 박사에게 소개했다.

다수의 생명과학 벤처를 창업하고 자문한 랭거 교수와 50여 개의 벤처 창업을 이끌었던 아폐얀 박사는 로시 교수의 연구 성과의 파괴적 혁신성을 바로 알아봤다. 이 열린 네트워크가 켄들 스퀘어 생명과학 혁신 생태계의 신경망이다.

아폐얀 박사의 플래그십 벤처는 모더나 성공의 바람을 타고 지난 6월 34억 달러의 새로운 벤처 펀드를 조성했다. 기존 벤처 펀드의 10배가 넘는 규모이다. 이 새로운 규모의 자본과 아폐얀 박사의 노하우는 켄들 스퀘어의 열린 혁신 인재들에 의한 생명과학 혁신을 더욱 빠르게 할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데이터브릭스가 지난달 16억 달러(약 1조8500억원)의 시리즈H 투자를 받아 380억 달러 가치의 거대 유니콘이 됐다. 지난 2월에 받은 10억 달러의 시리즈 G 투자까지 합치면 올해에만 26억 달러의 현금이 이 회사에 들어왔다. 2013년 창업 이후 35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IPO를 준비 중인 데이터브릭스에 이렇게 많은 벤처 자본이 몰리는 이유는 이 회사의 ‘데이터 레이크하우스’ 클라우드 서비스의 고속 성장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이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과 4차 산업혁명 선도국가를 목표로 시작한 디지털 뉴딜 사업의 핵심이 데이터 댐 구축이다. 8개 분야 170종의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를 구축하고 개방하는 사업이다. 정형화된 테이블 데이터는 물론 이미지, 동영상, 음성, 텍스트와 같은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담고 있다.

스탠퍼드대가 캠퍼스 중앙에 3억 달러를 들여 짓고 있는 데이터사이언스 교육 연구 컴플렉스. [사진 스탠퍼드대]
댐을 쌓으면 레이크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레이크를 이루는 데이터 자체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변하면 학습한 인공지능 모델과 응용 서비스도 변한다. 데이터 댐 사업이 성공하려면 데이터와 인공지능 모델, 응용 서비스와 이들의 라이프사이클 관리를 위한 클라우드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데이터 레이크(Data Lake)는 다양한 태생의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모아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 모델 및 응용 서비스 개발, 라이프사이클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환경이다. 데이터 레이크하우스 서비스는 데이터 레이크 구축과 유지·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SW 서비스이다.

2013년 창업한 데이터브릭스는 마테이 자하리아 스탠퍼드 교수가 버클리 박사 과정에서 개발한 스파크(Spark) 빅데이터 플랫폼에서 시작했다. 스파크는 내가 최고 아키텍트(Chief Architect)로 기술개발을 주도했던 SAP HANA의 ‘인메모리’ 플랫폼 모델을 따랐다. 데이터를 다수의 컴퓨터 메모리에 올려놓고 복잡한 분석과 기계 학습을 실시간으로 병렬 분산 처리하는 아키텍처이다.

파괴적 혁신 뒤에는 훌륭한 멘토 많아

HANA가 세상에 나올 때쯤 연구개발을 시작한 스파크가 HANA의 분산 트랜잭션 처리와 같은 고난도 기술들을 갖출 수는 없었지만 갈수록 싸지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해 누구나 복잡한 데이터 분석과 인공 지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데이터브릭스는 스파크를 기반으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클라우드에 데이터 레이크하우스 솔루션을 개발했다. 구글은 기술적으로 지향점이 유사한 SAP HANA 서비스도 제공한다. 데이터브릭스도 그 위에서 다른 응용 솔루션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모두 열린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훌륭한 업적을 낸 사람들 뒤에 훌륭한 멘토가 없을 수 없다. 자하리아의 버클리 지도교수는 스콧 셴커다. 시카고대학에서 1983년 카오스 이론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컴퓨터사이언스로 전공을 바꿔 여러 분야에 기여한 열린 학자이다. 모교인 시카고대학에서 2007년 인터넷 아키텍처 분야의 공로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리콘밸리 혁신의 아이콘 제록스 PARC에서 1998년까지 재직하다 2004년에야 버클리 교수가 됐다.

자하리아 박사를 공동 지도한 이온 스토이카 교수는 같은 루마니아 출신이다. 그와는 2019년 추석 기간에 개최된 칭화대의 빅데이터 심포지엄의 초청 연사로 만났다. 아이디어를 소프트웨어 시스템으로 빠르게 구현해 내는 천재 소프트웨어 아키텍트이다.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 연례행사에서 그가 창업 초기에 스파크에 대해 직접 발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데이터브릭스의 성공으로 7명의 버클리 교수와 졸업생들이 IPO 이전임에도 벌써 각각 10억 달러가 넘는 부를 가지게 됐다. 2명의 버클리 교수를 포함한 3명이 2500만 달러씩 버클리 데이터사이언스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했다.

데이터브릭스가 처음부터 비즈니스를 잘한 것은 아니다. 오픈 소스로 공개된 스파크는 대학과 기업 연구소 등 가난한 사용자들이 고객이었다. 가치가 입증되면 오픈 소스 개방성 때문에 사용자들은 빠르게 늘어난다. 사업 경험이 없는 대학교수와 연구자들은 기술적으로는 탁월하지만 사업 전략은 엉성했다. 스토이카 교수가 첫 2년 동안 CEO를 맡은 후 이란 난민 출신의 가장 ‘헝그리’한 알리 갇시가 CEO를 맡아 오픈 소스라는 열린 세계에서 데이터브릭스만의 기술적 강점에 집중해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최근 카카오가 열린 플랫폼을 지향하기보다 다른 곳에서 하게 열어 주어도 좋은 수직적 사업까지 모두 독점해 비난을 받았다. 혁신의 세계에서는 열린 자만이 살아남는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2년 실리콘밸리에 실험실벤처를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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