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도 친환경으로 하고 싶다고요"

이두리 기자 2021. 9. 24.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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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K팝 아티스트들 ‘친환경 행보’
정작 산업계는 ‘PVC 음반’ 일색
코팅 포토카드로 구매 유도까지
포장 등 구성품 재활용 어려워
팬들 직접 기획사에 개선 요청도

K팝 아티스트들의 음반들. 작년 한 해 3800만장이 팔린 음반은 대부분 ‘친환경’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소재로 제작됐다. 전문가들은 기획사의 음반 판매 전략이 과잉 생산과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누군가가 지구를 구할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진 않을 것입니다.” 지난 4월22일 지구의날을 맞아 보이밴드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한 말이다.

걸그룹 블랙핑크도 데뷔 5주년 기념 굿즈인 소파(아래 사진)와 다용도 파우치를 ‘재활용 가능한 무독성 소재’로 제작했다. 가수 청하는 지난 2월 발매한 정규 1집 앨범 <케렌시아>를 친환경 소재로 제작했다. 이달의소녀 멤버 츄는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지켜츄’에서 다회용기 사용 카페를 방문하고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을 알려준다.

블랙핑크 굿즈 손글씨 소파

K팝 아티스트들의 친환경 행보는 기후위기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수단이다. K팝 소비자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티스트라는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K팝 산업 생태계는 친환경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다. 디지털 시대가 무색하게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코팅 종이로 포장한 실물 음반이 끊임없이 팔리고 있다. 국내 공인 음악 순위 사이트인 가온차트 상위 100위권을 기준으로 작년 한 해 동안 판매된 음반은 3800만장이 넘는다. 하루에 10만장 이상 실물 음반이 팔리는 것이다.

문제는 실물 음반 구성품의 재활용이 어렵다는 데 있다. 투명 폴리염화비닐(PVC)로 포장한 음반은 환경에 해롭다. PVC는 불에 타면 염화수소가스가 나오고, 부식성이 강해 재활용도 어렵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PVC를 ‘나쁜 플라스틱’으로 꼽는 이유다. CD는 플라스틱 재질이지만 가정에서는 분리배출 시 일반쓰레기로 간주돼 버려진다. 음반 포토북과 포토카드에 쓰는 코팅 종이는 코팅 비닐과 종이를 떼내고 버려야 한다. 하지만 분리 과정이 번거로워 일반 폐지로 분류해 통째로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재활용을 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에 대량 유통되는 실물 음반은 ‘감상용’이 아니다. 24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0 음악 산업백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음반을 이용해 음악을 감상했다고 답한 비율은 11.5%에 불과했다. 팬들은 팬사인회에 응모하거나 표지, 내지, 구성품을 달리해 발매되는 음반을 수집하려고 CD를 사 모은다. 기획사의 음반 판매 전략이 ‘과잉 생산’과 ‘과잉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보이밴드 BAE173의 팬 최지영씨(30)는 “앨범 포장을 뜯을 때부터 다음 분리배출 날이 언제인지 생각한다”면서 “랜덤 포토카드와 팬사인회 응모권을 얻기 위해 수십장의 앨범을 사는 건데, 비효율적으로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평소에 플라스틱을 적게 쓰려고 노력한 게 헛수고가 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지속 가능한 K팝’을 위해 행동하는 소비자들도 등장했다. 지난 3월 기후위기 대응 플랫폼 ‘K팝포플래닛’을 출범시킨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은 앨범·상품의 플라스틱 포장 최소화,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라이브 콘서트 개최 등을 기획사에 요청하고 있다. 아티스트와 팬덤의 환경보호 활동 내역도 플랫폼에 공개하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친환경 행보에 기획사의 동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손창원 음악제작유통사 ‘블렌딩’ 대표는 “친환경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서는 과다한 랜덤 아이템을 지양하고, 굿즈의 디지털화와 같은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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