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배상한 돈 5년간 1조7000억

정희영,류영욱 2021. 9. 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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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委 출범후 증가 추세
국가상대 손배訴 年1200건

지난 5년여 동안 국가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국가가 배상한 금액이 1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상액 대부분은 과거 정부의 불법행위가 야기한 이른바 '과거사' 사건이 원인이 됐다.

24일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 7월까지 소송을 통해 국가가 국민에게 보상한 국가배상액은 총 1조7485억원에 달한다. 구로농지 사건 등으로 대규모 국가배상이 이뤄지며 과거에 비해 국가배상액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과거사 사건으로 인한 국가배상액은 1조5236억원이나 된다. 전체 배상액 중 87.1%가 과거사 사건에서 나온 셈이다.

2005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과거사위)가 출범한 이후 이른바 과거사 사건 관련 소송 건수와 국가배상액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과거 정부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 배상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잦은 상소로 인해 국가가 예산으로 부담해야 하는 배상액이 과도하게 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2010년 12월 과거사위 1기 활동이 종료된 이후 10년 만인 작년 12월 과거사위 2기 활동이 재개된 만큼 과거사위 결론이 나왔을 때 정부 차원에서 배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의래 법무부 송무심의관은 "국가배상 소송이 들어오면 정부는 당사자로서 법리 다툼을 해야 한다"며 "(국가의) 잦은 상소로 배상액이 커진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무분별한 상소를 제한하고 법리적 개선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국가배상제는 공무원의 불법행위나 공공영조물(국가나 공공기관이 공적인 목적으로 설치한 시설) 설치·관리상 하자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법원 판결 또는 국가배상심의회 결정에 따라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단 특별회계와 국방부 소관은 제외된다. 최근 국가배상금 지급 실태를 보면 예비비에서 집행하고 있다.

한편 지난 5년여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사건 접수도 꾸준히 늘었다. 2016년 1002건이 접수된 데 이어 2017년 1078건으로 소폭 증가한 뒤 2018년과 2019년에는 2년 연속 1200건을 넘어섰다. 올해도 715건이나 접수됐다.

빙판길·도로파임 사고도 배상…코로나 관련 소송 20건 진행중

국가배상금 5년간 1조7천억

구로농지 강탈사건 배상액
올해까지만 1조 넘게 지급
제주 4·3사건도 소송 진행중

원금만큼 '지연이자' 붙으며
23억 판결 받고 44억 지급도

빙판길·포트홀·포항지진 등
기반시설 관리소홀 소송 늘고
코로나 관련건도 20건 진행
과거 정부의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금이 지난 5년간 1조원을 훌쩍 넘어서며 현 정부의 재정에 부담을 주는 모양새다. 적절한 배상 시점을 놓치며 지연이자가 붙은 점이 국가배상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원인으로 꼽힌다.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배상 문제가 소송으로 이어지며 결국 배상액이 커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법무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과거사 사건 가운데서도 구로농지 사건과 관련해 지급된 국가배상액은 총 1조1174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전체 국가배상액 1조5195억원의 73.5%에 달하는 규모다. 아직 진행 중인 관련 사건이 있어 향후 구로농지 관련 국가배상액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배상 소송으로 넘어가지 않고 배상심의회 단계에서 끝난 사건의 배상액은 크지 않았다. 같은 기간 심의회에서 결정한 배상액은 약 21억원으로 나타났다.

구로농지 사건은 해방 이후 정국까지 내려가는 오래된 사건이다. 서울시는 당시 미군정이 보유했던 구로구 땅 일부를 농민들에게 분배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며 정부는 구로공단을 조성하겠다며 약 30만평을 강제로 수용하고 농민들을 퇴거시켰다. 농민들은 땅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농민들을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유죄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후 노무현정부 들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구로공단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불법행위가 있었다며 재심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후 농민과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 사건에서 국가가 배상해야 할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것은 손해배상액 원금보다 커진 지연이자 때문이다. 2018년 서울중앙지법은 구로농지 사건 피해자 A씨의 국가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23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실제로 지급된 금액은 44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의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A씨에게 소유권이 이전됐을 시기는 1998년 말로, 이때부터 판결 선고일까지 지연이자가 붙게 됐다.

제주 4·3사건과 관련해서도 약 124억원 규모의 국가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김의래 법무부 송무심의관은 "과거사 사건에 대한 배상은 과거에 대한 책임을 현재 정부에서 지는 것"이라며 "피해 국민에 대한 배상은 법원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가배상 금액 가운데 지연이자의 비중이 커지며, 지연이자로만 140억원이 넘는 보수를 챙겨간 변호사도 생겨났다. 과거 군 비행장 소송으로 이름을 날린 B변호사다. 그는 2004년 대구 공군비행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구의원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낸 소음피해 손해배상 소송을 맡아 원금과 지연이자를 포함해 총 362억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B변호사는 주민에게 손해배상액 원금의 83.5%를 배분하고 원금의 16.5%(15%에 부가가치세를 더한 수치)와 지연이자 약 142억원을 성공보수로 가져갔다. 검찰은 지연이자가 주민들에게 주어졌어야 한다며 그를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했으나, B변호사의 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확정됐다.

국가권력을 악용한 불법행위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은 형태의 사건뿐 아니라 기반시설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해 입은 피해에 대해서도 법원은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오고 있다.

2012년 청주지법은 빙판길에서 운전하다 미끄러져 뇌출혈을 일으킨 C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국가는 C씨에게 1억5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국가가 도로 상태를 수시로 점검해 제설제를 뿌리는 등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음에도 모래주머니만 비치해 도로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도로 일부분이 움푹 파인 '포트홀'로 인해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도 국가배상이 이뤄진다. 국가에는 도로를 안전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고, 주기적으로 확인만 해도 포트홀로 인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데도 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 대해서도 국가배상소송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어난 포항지진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포항시 주민이 낸 소송 17건과 보험사가 낸 사건 8건이 계류 중이다. 각각 45억원, 121억원 규모 소송이다. 코로나19 관련 소송도 104억원 규모로 20건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가 거액을 배상할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사건도 있다. 서울 강남 일대 땅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이원석)는 조계종 봉은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봉은사에 487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해 봉은사가 돌려받지 못한 땅의 현재 시가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봉은사는 현대차 신사옥이 들어설 예정인 삼성동 용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며 기업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진행한 상태다. 봉은사 측은 이 땅을 1970년대에 정부에 매각한 자료는 있으나, 여러 권력기관의 불법적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희영 기자 /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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