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시간·공간·국경 초월한 K팝, '코로나 상실' 메웠다

이유진 기자 2021. 9. 24. 15:4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코로나19는 아이돌 공연 및 팬덤 문화의 지형을 바꿨다. 무대 공연과 대면 행사가 메인 이벤트였던 K팝 업계는 메타버스(가상현실)로 눈을 돌려 온라인 행사, 소셜네트워크를 비롯한 각종 비대면 소통으로 ‘코로나 상실’을 메우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데뷔해 한 번도 팬들을 마주하지 못한 K팝 그룹이 생기고 있다. ‘온라인 소통 능력’이 아이돌의 필수 덕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카메라를 켜고 팬과 일상을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여러 플랫폼과 SNS, 커뮤니티를 이용한 다채로운 소통력은 그들을 글로벌 팝스타로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사진| 하이브


■‘위기를 기회로’ 온라인콘, 부익부 빈익빈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오프라인 공연 시장이 마비됐다. 국내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온라인 형태의 콘서트를 본격화했고 이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성공 사례로 남게 됐다.

그룹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온라인 콘서트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기록했다. 미국 투어링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MAP OF THE SOUL ON:E’(맵 오브 더 솔 원)은 이틀간 191개 지역 유료 관객 99만3000여명으로부터 4400만달러(약 495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앞서 지난해 6월에 열린 온라인 콘서트 ‘방방콘: 더 라이브’도 2000만달러(약 225억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SM엔터테인먼트도 온라인 전용 유료 콘서트 ‘비욘드 라이브’를 론칭했다. 지난해 ‘슈퍼엠 온라인 콘서트’는 관객 7만5000여명을 동원하며 24억원의 수익을 냈다. 가격은 낮추고 접근성을 키우니 기존 오프라인 공연 대비 7배 관객이 모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공연은 더 이상 코로나 시대 콘서트 문화의 임시 대체재가 아니며 또 하나의 시장이 형성된 것”이라 평가한다. 박선민 성균관대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 초빙교수는 “온라인 공연 시장은 오프라인 시장과 비교 불가한 새로운 영역이다. 기존 공연은 현장에 온 소수의 사람을 위한 고가의 공연이었다면 온라인 공연은 초연결시대 전 세계 팬들이 같은 시간에 열광할 수 있는 가성비 공연이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나눌 수 있고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시청자가 보고 싶은 각도를 선택할 수 있어 코로나 시대가 끝나더라도 온라인 콘서트 시장은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가수들이 21세기형 온라인 공연으로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체 플랫폼을 갖고 있거나 대형 플랫폼과 협업이 가능한 일부 K팝 기획사를 제외한 대다수의 공연 기획사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손실로 여전히 허덕이고 있다.

지난 8일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고사 직전으로 치닫는 공연 업계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가수 정엽, 나얼, 민경훈 등이 소속된 인넥스트트렌드 고기호 이사는 “코로나19로 공연 업계 전체 매출의 90%가 감소했다. 취소 및 연기로 추가 손실액까지 떠안자 공연사와 기획사들은 폐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티켓 배송 수수료로만 10억원 넘는 손해를 본 기획사도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 시대 데뷔한 그룹 스테이씨는 적극적인 온라인 자체 콘텐츠 제작과 소셜네크워크 소통으로 신인 그룹 중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 하이업엔터테인먼트 제공


■K팝 마케팅도 지각변동

K팝이 타 음악 장르와 구별되는 강점은 글로벌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해 시간과 공간, 언어를 초월했다는 데 있다. 스타 신비주의 시대는 저물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메타버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글로벌 소통의 위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데뷔 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만들고, 팬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친근감을 높이는 신인 그룹들의 마케팅 전략은 이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온라인 융합콘텐츠 개발업체 ‘메타유니버스’의 변문경 대표는 “현재 메타버스에 이용되고 있는 주된 콘텐츠는 바로 K팝”이라며 “K팝 그룹은 무대는 물론 대기실, 연습 장면, 일상까지 팬들과 공유하고 있다. 즉 스타와 팬 모두 ‘라이프로깅’(일상의 디지털화)에 익숙해 있다. 파급력 있는 콘텐츠가 플랫폼을 살리듯 K팝은 메타버스 산업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 11월 데뷔한 걸그룹 스테이씨는 지난 5월 SK텔레콤과 함께 ‘K팝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메타버스 공간을 배경으로 촬영한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고 온라인 라이브 팬미팅도 열었다. 코로나 시대에 데뷔한 스테이씨는 사실상 팬들과 ‘현실’에서 만난 경험이 없다. 이런 여건 속에서 스테이씨는 지난 6일 발매한 새 싱글 ‘색안경’으로 실시간 음원 차트 정상에 올라 데뷔 이래 첫 음원 차트 1위라는 쾌거를 이뤘다. 남다른 전략이 있었을까?

스테이씨 소속사 하이업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팬들과 현장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프로모션 측면에서 많이 아쉬운 시기였다. 대신 외부 콘텐츠와의 협업을 통해 스테이씨의 매력과 실력을 최대한 드러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하이업엔터테인먼트는 매일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그 안에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룹의 방향성과 멤버들의 개성, 재능을 꾸준히 부각시켰다.

“올해 KBS2 <뮤직뱅크> 새해맞이 스페셜 무대에서 스테이씨는 소녀시대의 ‘힘내’를 커버했습니다. 기성세대로부터 신인의 패기가 돋보였다는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 온라인에서는 MZ세대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챌린지 영상과 콘텐츠로 그룹의 정체성을 알리는 데 힘썼어요. 이런 노력이 각 세대에 골고루 스테이씨라는 그룹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코로나19 이전 음악방송 현장은 방청석을 가득 메운 팬들의 응원으로 들떴다. 공개방송이 중단되고 방청객이 사라져 적막한 무대에 오르는 일부 아이돌그룹은 MR(반주 음악)에 구호와 함성을 입혀 마치 팬들과 함께하는 듯한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스테이씨 멤버들은 팬들을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적극적인 온라인 소통으로 달랜다.

“아티스트에게 무대란 팬분들과 함께 꾸미고 즐기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늘 있어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팬들이 즐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뛰고 있어요.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공식 팬카페와 글로벌 팬커뮤니티 플랫폼에 들어가 팬들이 남겨주신 글을 봐요. 댓글을 최대한 달면서 팬들에게 솔직히 다가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스테이씨)

그룹 SF9의 멤버 다원은 팬들과 원활하고 유쾌한 소통으로 ‘영통팬사 장인’으로 불리며 주목받고 있다. 사진| @bboya_724


■새로운 소통 ‘영통팬싸’

일명 ‘영통팬싸’(영상통화 팬사인회)는 스타와 팬들의 비대면 소통에 정점을 찍는 이벤트다. ‘영통팬싸’는 메신저 영상통화 서비스로 약 2분간 스타와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팬 서비스 차원의 이벤트다. 보통 음반사 혹은 기획사가 지정한 기간 동안 앨범을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소수 인원을 선발한다. 2020년 데뷔한 K팝 그룹 MCND가 처음 시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제는 대부분의 K팝 그룹이 ‘영통팬싸’ 이벤트를 열고 있다. 팬들은 스타와의 통화 내용을 스마트폰에 녹화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점을 ‘영통팬싸’의 장점으로 꼽는다.

‘영통팬싸’에 대한 관심과 화제성이 커지자 2분간의 영상통화를 어색하지 않게 끌고 가는 화법과 소통 능력을 가진 멤버가 주목받고 있다. 그룹 SF9의 다원은 일명 ‘영통팬싸 장인’으로 불린다. 잘못된 자세로 운동하는 팬에게 그가 올바른 자세를 직접 선보이는 ‘영통팬싸’ 영상은 온라인상에서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다원은 “시간을 내주시는 팬에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항상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마음이 강하다보니 재미있는 해프닝이 생기는 것 같다”며 “나도 일대일 통화는 긴장된다. 그러니 팬들은 얼마나 긴장될까. 최대한 상대방이 긴장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즐거운 영상통화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영통팬싸’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앨범을 대량 구매하는 팬들이 등장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불거지기도 했다. 온라인 참여가 가능하다보니 해외팬까지 경쟁에 가세하면서 경쟁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의 끝이 보이지 않는 요즘, ‘영통팬싸’는 스타와 팬이 양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