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타운', 제아무리 유재명·엄태구라도 불친절한 연출엔 장사 없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유재명, 한예리, 엄태구. 기대감 가득한 출연 배우만으로도 tvN 수목드라마 <홈타운>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드라마 <비밀의 숲>, <라이프>, <이태원 클라쓰> 등의 유재명과, 영화 <미나리>로 주가 상승 중인 한예리 그리고 드라마 <구해줘>는 물론이고 영화 <낙원의 밤> 같은 작품을 통해 거칠고 낮은 목소리만으로도 몰입감을 선사하는 엄태구이니 말이다. 이른바 '멱살을 쥐고 끌고 가는' 이들의 연기만으로도 <홈타운>의 기대감은 충분하다.
드라마가 끌고 온 소재도 흥미롭다. 1987년에 사주라는 도시에서 벌어진 사린가스 테러가 등장하고, 1999년 경신여중 방송반 이경진(김지안)과 조재영(이레)이 실종된다. 그런데 이경진은 실종되기 전 파출소를 찾아 "우리 집 욕조에 웬 여자가 있다. 그런데 엄마는 그 여자가 없다고 한다"는 이상한 말을 했다. 결국 그날 밤 욕실에 들어간 이경진은 그 이상한 여자를 마주하고, 욕실에 끌려 들어간 경진의 엄마는 다음날 욕조에서 얼굴에 끔찍한 자상을 당한 채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경진 역시 변사체로 발견된다.
1987년, 사린가스 테러, 1999년 세기말, 공포에 질린 여중생, 환영, 살해된 그의 엄마, 그리고 의문의 변사체... <홈타운>이 꺼내놓은 사건들은 단편적이라 도무지 이 사건들이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지를 아직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 키워드가 추측하게 만드는 것들은 흥미롭다. 사린가스 테러는 1995년 도쿄 지하철에서 벌어진 옴진리교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5개 전동차에서 살포된 독가스로 5,500여 명이 중독되고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1987년은 이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가 그 이름을 드러냈던 해다.
여기에 1999년 세기말이라는 설정은, <홈타운>이 어떤 사이비종교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걸 추측하게 한다. 결국 사이비종교에 의해 1987년 사주역에서 사린가스 테러가 발생했을 것이고, 1999년에 벌어진 실종, 살인사건들 역시 이 사이비종교가 여전히 공포를 동력삼아 작동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당시 사주역 테러의 주범인 조경호(엄태구)는 일본유학에서 돌아와 그 사건을 벌인 인물로, 여러모로 실제 인물인 옴진리교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와 관련이 있는 인물로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감옥에 있지만 누군가에게 편지 등을 보내 사주 사람들을 움직인다.
일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가져와, 사주라는 지역에서 1999년 세기말에 사이비종교와 관련된 사건(아마도 이 홈타운에 사는 많은 이들이 이 종교와 연관되어 있어 보인다)을 그려내고, 그 피해자들인 최형인 경위(유재명)와 조정현(한예리)이 그 사건을 풀어간다는 대본의 설계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사린가스 테러로 아내를 잃은 최형인도 또 오빠가 바로 그 테러범인데다 어느 날 조카마저 실종되어 버린 조정현도 모두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들이다. 그러니 이들이 그 공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나가는 과정은 그 캐릭터들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메시지를 갖는다.
연기도 대본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문제는 연출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결코 쉽게 풀어질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벌써 시점 자체가 1987년, 1999년을 오간다. 또 이 사건들을 술회하는 조경호가 인터뷰하는 시점도 들어가 있다. 그러니 도무지 어떤 연관성을 가졌는지 알 수 없게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사건들이 어떤 시점에서 벌어진 것인가를 따라가는 것도 만만찮다. 1999년의 조정현은 사라진 조카를 추적하지만, 1987년 중학시절 교지부 친구들과 '수수께끼의 사주, 7곳의 비밀장소'를 취재한 바 있다. 현재의 추적과 연관되어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겹쳐지는 부분은 그래서 제대로 그 시점을 드러내주는 연출이 아니면 시청자들을 혼돈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도대체 저 사건이 언제 벌어진 것인가가 헷갈릴 수 있는 것.
물론 여러 차례 드라마를 들여다보고, 대사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곱씹어가며 본다면 이런 미로에 빠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 아무리 추리물의 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미로 속에 붙들고 걸어 나갈 실타래가 너무 약하게 존재한다면 자칫 길을 잃을 수 있다. 너무 친절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불친절해지면 시청자들은 금세 미로를 함께 찾아나가는 걸 포기할 지도 모른다.
복잡한 서사일수록 어떻게 하면 더 시청자들이 명쾌하게 따라올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적 고민이 연출에 요구된다. 그건 전모를 처음부터 드러내라는 뜻이 아니라, 미로 속이라도 어떤 하나를 쥐고 갈 수 있는 실타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 스릴러로서 전개를 뒤집는 반전효과도 커지기 마련이다. 지금 <홈타운>의 연출은 그래서 무언가 벌어질 것 같고, 무언가 있을 것 같은 떡밥을 무한정 계속 던지는 게 아니라, 한두 개의 실타래를 던져 이 미로를 따라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겨우 2회가 지난 것이니 속단할 수는 없다. 3회부터 조금씩 사건이 풀려나간다면 금세 시청자들은 몰입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2회까지의 패턴대로 3회에서 또 그 이후에도 계속 오리무중의 전개를 이어간다면 몇몇 마니아들을 빼놓고는 이 게임을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 연기와 대본이 제 아무리 괜찮다 해도 분위기만 잡는 연출로 시청자들을 끌고 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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