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광대의 일기..당신은 지금 어떤 표정인가요? [김창길의 사진공책]
[경향신문]
중세의 가을이 저물고 르네상스의 꽃이 필 무렵, 유럽의 강 어귀에는 술 취한 배들이 출몰했다. 이교도의 붉은 깃발을 꽂은 이상한 배 위에서 음탕한 성직자들과 상인들은 술판을 벌이고 선상 만찬에 초대받지 못한 광대는 자신의 탈을 꽂은 지팡이를 움켜쥔 채 혼술을 즐기고 있다.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그린 ‘바보들의 배’의 술 취한 선원들은 커다란 숟가락으로 노를 저으며 바보들의 천국 ‘나라고니아’로 항해한다.
‘광기의 역사’를 추적했던 철학자 미셸 푸코는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하던 바보 문학과 그림을 선단에 배치하며 광인의 항해를 시작한다.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풍자시 ‘바보배’에 묘사된 100가지가 넘는 바보들의 모습은 광인들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탐욕스러운 자, 나태한 자, 마녀, 주술사 등의 탈을 쓴 광인들은 지금의 정신병자들과는 다른 미분화된 군상이었다. 가령, 중세의 광기는 때로는 신비스러운 존재로 생각되기도 했는데,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에 등장하는 광대는 지혜를 설파하는 스승이었다. 하지만 17세기 고전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성의 찬란한 빛은 비이성적인 영역들을 광기라는 이름으로 끄집어냈다. 태양왕 루이14세는 구빈원을 설치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광기의 대감금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무위도식하는 부랑아들은 감금됐고 노동교화형에 처해졌다. 18세기 말 등장한 정신의학은 감금됐던 나태한 자들을 귀가시키고 교화될 수 없는 광인들을 질병에 걸린 자들로 진단했다. 광기의 역사는 이성이 비이성적인 것들을 분리하고 비정상인을 정상인으로부터 격리하고 감금하는 권력의 역사인 것이다.
‘누락된 의제-37.5도 아래’라는 주제로 지난 10일 개막한 제8회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정상’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던진다. 이제 우리는 체온 37.5도 이상의 몸뚱이를 가지고는 건물 내부로 진입할 수 없다. 코로나19 이전의 우리는 36.5도 언저리가 정상 체온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을 벗어나는 체온의 경계는 그렇게 확실하지 않았고 37.5도는 누군가에게는 단지 미열일 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37.5도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지점으로 작동한다. 발열 검사를 하는 목적은 코로나19의 증상들을 감별하기 위한 것인데, 다른 모든 징후들은 누락되고 37.5도라는 차가운 디지털 숫자가 법관의 자리에 올라 정상과 비정상을 판결 내린다. 지금 작동하고 있는 이 사회의 시스템이 모두 그럴지도 모른다. 시스템이 정한 정상의 기준선을 벗어난 사람들은 15세기 광인의 배에 승선한 바보들처럼 퇴출당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선포된 지난해 네덜란드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가 기록한 ‘2020년 만우절’ 사진 연작은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주제를 오롯이 보여준다. 코로나19로 도시가 봉쇄되기 직전, 어윈 올라프는 카메라를 들고 집 밖을 나섰다.
‘오전 9시45분’ 하얀 고깔모자를 쓴 늙은 광대가 비닐장갑을 끼고 카트를 끌고 간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마트 옥상 주차장이다. 그런데 주차장이 텅 비었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릴 만한데, 광대는 천천히 카트를 끌고 걸어간다. 아니 이상한 낌새를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계획한 일들을 섣부른 추측으로 중단하는 성격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풍문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고, 달리 말하면 고지식하다.
‘오전 9시50분’ 매장에 들어선 광대는 물건 하나를 집어 든다. 하지만 평소 즐겨 구입하던 제조사의 상품이 아니었는지 선반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항상 있던 물건인데….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아직도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았던 것일까? 상품 진열대는 반 이상이 텅 비었고, 통로에는 떨어진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다.
‘오전 9시55분’ 텅 빈 냉장고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광대의 불안한 파란 눈동자. 이제 광대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모든 광대가 그렇듯이 늙은 광대의 표정도 슬프다. 웃기 싫은데 웃을 수밖에 없는 광대 조커의 비참한 웃음기는 없다. 늙은 광대의 슬픔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제 광대는 확실히 깨달았다. 노인네답게 한발 늦은 것이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이미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난 것이다. 사진작가는 회고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후 첫 주 동안 나는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대한 전례 없는 두려움으로 말 그대로 거의 마비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 카메라를 들었던 어윈 올라프는 당대의 사회 문제들을 예의주시한다. 쇼핑 목록의 절반도 건지지 못했던 개인적인 경험은 소비주의 사회가 직면했던 단절과 감금의 사회적 현상과 연결된다. 자신의 사진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무대를 연출하고 모델을 출연시켰던 어윈 올라프에게 2020년의 사진 작업은 인위적인 무대가 따로 필요 없었다.
‘오전 10시5분’ 광대의 쇼핑은 실패로 끝났다. 비닐장갑을 낀 그의 손에 남아 있는 것은 자신의 손가방뿐이다. 비닐 차단막 건너의 젊은 직원은 늙은 고객의 좌절에 무안한 듯 시선을 떨구고 있다. 하긴, 어떤 말이 위로가 되겠는가.
스스로 사진 모델이 된 어윈 올라프가 도시 봉쇄에 직면한 공포감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분장은 광대였다. 하얀 고깔모자와 백색 마스크의 광대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가 싶더니 무서운 뒷맛을 남겨 놓는다. 원뿔 모양의 ‘카피로테(capirote)’는 중세의 수도승이나 사형수들이 썼던 모자다. 밀랍 같은 하얀색 마스크도 우습기보다는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관객을 웃기고자 하는 광대의 하얀 기초화장은 하얀 도화지에 무엇을 그리기 위한 기초작업일 터인데, 늙은 광대의 마스크는 백지 상태로 남아 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색 도화지는 언뜻 무언가의 부재 상태인 것으로 착각할 수 있겠으나 실상은 그 반대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하얀색은 모든 색채의 불순한 총합의 유령이라 했다. 광대의 하얀 마스크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버릴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묻어 있는 것이다. 광대 조커의 페르소나가 영화의 시작부터 불안했던 것은 그가 정신병을 앓아서가 아니라 그가 곧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것이라는 알기 힘든 불길한 징후 때문이다. 하얀색 마스크는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하얀 번데기 같은 껍데기다.
‘오전 10시15분’ 달라진 세상을 체감하는 시간은 30분이면 족했다. 빈손으로 마트를 나선 늙은 광대는 호수가 있는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해는 아직 높지 않고 짙은 그림자는 사물의 형태를 뒤틀며 땅에 내려앉고 있다. 이제부터 시간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공간도 불투명해질 것이다. 도시는 곧 봉쇄될 것이다.
‘오전 11시15분, 그리고 15분 후’ 집에 도착한 늙은 광대는 카메라 앞에 뒤돌아선다. 단정한 그의 집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등장하는 시청 서기관 ‘그랑’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사전이 꽂혀 있는 하얀색 나무 선반과 칠판뿐이었던 그랑의 집은 단출했다. 칠판에는 몇 번이고 고쳐 쓴 흔적이 남아 있는 문장이 적혀 있다. ‘꽃이 핀 오솔길’. 아주 작은 일에도 정확함을 추구하는 성격인 것이다. 어윈 올라프의 늙은 광대 역시 마찬가지다. 감금된 나의 처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늙은 광대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고민에 빠져든다. 또오오오 따아악. 시간은 중력을 초월한 콧수염을 갖고 있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에 그려진 시계처럼 서서히 녹아 눌러붙는다. 그리고 광대의 몸도 눌러붙는다. … 15분 후, 광대는 전선으로 연결된 셔터 릴리스의 버튼을 누른다. 철커덕! 늙은 광대는 밀랍처럼 꼿꼿하게 굳어버렸다.
늙은 광대의 자화상은 기묘한 긴장감이 조용하게 맴돌고 있다. 사진 프레임 안에는 세 개의 차가운 ‘직선’과 검은색을 담고 있는 완곡한 ‘곡선’이 공존하고 있다. 아주 거친 비유겠지만, 직선을 즐겼던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과 다양한 곡선을 그렸던 칸딘스키의 ‘뜨거운’ 추상성이 뒤섞이고 있다. 색깔은 단순화돼 흑과 백의 구성이다. 그리고 한 가지 균열이 있다. 고깔모자의 하얀 직선이 검은 머리를 만나는 부분에서 찢기고 있다. 작은 긴장의 파동이 진동하는 부분이며 롤랑 바르트가 말했던 ‘푼쿠툼’의 세부가 남겨진 흔적일 수도 있겠다.
늙은 광대의 뒷모습은 누군가를 닮았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검은 코트를 즐겨 입는 중산모를 쓴 지긋한 나이의 신사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묻는 말에만 짤막한 명사로 대답할 것 같은 중산모의 신사는 마른하늘에서 비처럼 내리고 파란 사과로 얼굴을 가리며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익살을 즐긴다. 어윈 올라프의 늙은 광대, 르네 마그리트의 중산모 신사, 그리고 알베르 카뮈의 시청 서기관은 어쩌면 모두 동일한 인물일 것이다. 도시 봉쇄령이 풀리면 어윈 올라프의 늙은 광대는 흑사병 환자들을 돌보던 의사를 도왔던 시청 서기관처럼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와 대면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짐을 떠안은 것처럼 심각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만우절에나 일어날 법한 난센스라며 씨익 웃으며 제 할 일을 해나갈 것이다.
어윈 올라프의 만우절 일기로 시작한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알레한드로 에르베타, 팀 파르치코프 등 유럽의 사진가들이 담은 코로나 팬데믹 풍경으로 전시를 이어간다. 알레한드로 에르베타는 프랑스에 봉쇄령이 떨어지자 2년 전 도서관에서 보았던 바이러스의 다양한 형태들을 비교했고, 팀 파르치코프는 격리의 시간 동안 소중하게 다가왔던 집 안의 하찮은 물건들을 주목했다. 저녁 8시가 되면 발코니에 나와 전염병과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위해 박수를 치던 프랑스 바뇰레의 시민들을 찍은 제로민 데리니의 사진들은 격리의 기간에도 끊어지지 않았던 시민사회의 연대감을 확인하게 한다. 전시관 밖에서도 코로나 팬데믹 사진 이야기는 이어진다. 코로나19 거점 병원이었던 대구동산병원에는 동료들의 모습을 담은 의료진의 풋풋한 사진들이 걸려 있다.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려도 알 수 있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중환자실의 간호사들. 환자들의 아픈 몸을 보듬던 그들의 방역 장갑 손바닥에는 알파벳 문자가 적혀 있었다. KILL COVID-19.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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