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성 "스포츠행정가는 경영진·코치·선수 하나로 묶어내는 예술가"
■ M 인터뷰 - 이유성 제주 우리들CC 사장
39년간 몸담았던 대한항공서
탁구·배구·빙상 ‘정상 조련사’
“故 조양호 회장의 ‘공부 조언’
그때 배운 것들이 큰 도움 돼”
女탁구 남북단일팀 코치맡아
전력 열세였지만 中 꺾고 우승
만성 적자 골프장 구원투수로
생소한 분야지만 새로운 도전
잔디 관리·직원 복리 개선 등
입소문나면서 방문객 두 배로
제주 = 오해원 기자
엘리트 선수 출신은 아니다. 하지만 탁구 국가대표팀 코치, 감독을 했다.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 대한항공 스포츠단 단장을 지내 탁구는 물론 프로배구와 빙상까지 챙겼다. 체육인 출신으론 드물게 대기업(대한항공) 전무이사까지 승진했다.
체육계에 크고 굵직한 족적을 남긴 입지전적 인물. 그가 골프장 사장으로 또다시 변신, 새로운 도전을 펼치고 있다. 이유성(64) 제주 우리들CC 사장은 올해 1월 취임했다. 지난해 8월 무려 39년간 몸담았던 직장 대한항공을 떠나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이 사장이 부임하기 전 우리들CC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소규모 골프장이었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해 서귀포 앞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그러나 18홀 규모로 크지 않아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매년 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 이 사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어려운 경영여건이 이 사장의 피를 끓게 했다. 23일 우리들CC에서 만난 이 사장은 “이곳 사장직을 제의받곤 대한항공 스포츠단 단장을 맡았던 2005년이 떠올랐다. 처음 대한항공 배구단을 맡았을 때는 프로가 아니었고 대학 체육관을 빌려 훈련했다. 그래서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찾아뵙고 이렇게 팀을 운영할 거라면 차라리 해체하는 게 낫다고 직언했다. 팀 상황을 솔직하게 보고하자 조 회장께서 그룹 연수원 부지에 배구단 전용 체육관과 숙소를 지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렇게 달라지기 시작했고 대한항공 배구팀은 챔피언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들CC는 2008년 문을 열었다. 이 사장은 부임 후 가장 먼저 직원들의 인상이 밝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골프장을 찾는 고객은 가장 먼저 직원과 마주한다. 그래서 직원들의 표정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런트와 캐디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의 표정이 밝아야 다시 찾고 싶은 골프장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체육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조력자를 영입했다. 이 사장은 “초보 감독과 베테랑 코치진의 조합처럼 골프장 관리 분야에서 최고의 노하우를 지닌 인재가 필요했다. 제주골프계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조장현 부사장을 영입해 골프장 관리를 맡겼고, 저는 인적 관리 등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복리후생 개선에도 공을 들였다. 대한항공 스포츠단 단장 시절 인연을 맺은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으로부터 겨울용 고급 외투 등을 지원받아 추운 겨울 실외에서 고생하는 직원에게 나눠줬다.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직원들의 표정이 달라졌고,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우리들CC가 달라졌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사장은 “대한항공 배구단 단장 시절 선수 기량이 늘었다는 평가보다 우리들CC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들었을 때가 훨씬 기분이 좋았다. 초보 경영자지만 욕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주 도내는 물론 멀리 서울 등 육지에서 오는 내장객이 크게 늘었다. 우리들CC는 18홀이기에 캐디가 많지 않았다. 이 사장은 부임 후 약 30명의 예비 캐디를 교육했고, 고객이 몰리는 시기에 ‘즉시 전력감’으로 투입했다. 초보 직원의 실습을 위해 골프장의 선배 직원들이 힘을 모았다. 이 덕분에 손님이 예년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 사장은 우리들CC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대회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고, 제주개발공사가 주최하는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가 지난 7월 29일부터 4일간 이곳에서 열렸다. 제주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던 소형 골프장이 의미 있는 성과를 일궈냈다. 그런데 험로를 통과해야 했다. 우리들CC엔 여름에 취약한 잔디가 조성돼 7월에 골프대회를 개최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초보 경영인이다 보니 대회를 유치한 뒤에야 잔디 사정을 알게 됐지만, 그는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을 투입, 잔디 관리에 힘썼다. 이 사장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서 직원 모두가 합심해 최상의 잔디 컨디션을 만들었다.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도 한다. 지도자 시절 아무리 강한 팀과 맞붙어도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렇게 훈련한 적은 하루도 없었다. 탁구 대표팀 감독이었을 때 ‘아무리 중국이 강해도 이길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훈련해 승리한 경험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됐다. KLPGA투어 대회를 개최하면서 우리들CC 평판이 더욱 좋아진 건 정말 값진 결실이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9개월 차 초보 경영인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비결로 고 조양호 회장을 꼽았다. 오랫동안 임원으로 조 회장을 보좌하면서 경영 노하우를 자연스레 전수받았기 때문. 이 사장은 “조 회장께서 ‘일을 시켜보니 체육인이 제대로 직무교육을 받으면 그 어떤 것도 잘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선 저에게도 공부를 많이 하라고 당부하셨는데, 그때 배웠던 것들이 지금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체육계에서 소문난 달변가이자 미스터 ‘쓴소리’다.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직언을 퍼붓곤 한다. ‘예스맨’은 체질상 맞지 않는다. 2018년 동생에게서 신장을 이식받아 수술한 뒤 사표를 제출했지만 조 회장이 반려했고, 지난해 또 사표를 제출하자 이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만류했다. 이 사장은 “대한항공에서 많은 걸 누렸고, 후배들을 위해 이젠 진짜로 떠나야 한다고 지난해 마음을 굳혔다. 대한항공은 제겐 또 다른 가정인 셈이다. 이제는 우리들CC가 또 다른 저의 가정이 됐다. 이곳의 직원들과 함께 신명 나는 일터를 가꿔 직원과 고객 모두가 만족하는 골프장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어느 정도 우리들CC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지만 여기서 만족할 순 없고,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시설 투자를 실시할 예정이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 남북단일팀 우승 신화 작성 당시 코치였다.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남과 북이 힘을 모아 세계 최강 중국을 꺾었다. 현정화와 홍차옥(이상 남측), 리분희와 유순복(이상 북측)이 빚은 하모니는 2012년 영화 ‘코리아’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사장은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남과 북이 단일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국 합동훈련을 하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한평생 스포츠와 함께하면서 익힌 제1의 원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마음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원과 저를 포함한 임원진이 마음을 모은다면, 우리들CC가 제주를 넘어 한국의 명문 골프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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