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모든 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송민령 2021. 9. 24. 06: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씁니다] 남성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영역에 '있습니다'. 여성 전문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씁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막연한 신뢰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과학의 권위를 빌려서 자기주장을 펼치고 싶은 이들에게 악용되곤 한다. 과학을 둘러싼 오해를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지난해 3월 미국 뉴욕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망자의 시신을 옮기는 모습. 미국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도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망자를 냈다. ⓒEPA

‘과학’이라는 단어는 신뢰감을 준다. 종교인들마저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경전의 내용을 증명하려 하며, 과학에 거부감을 느끼는 신비주의자들조차 자기네 주장을 지지하는 과학 증거가 있다고 하면 좋아할 정도다. 그럼에도 ‘과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학교에서 과학의 결과를 배웠을 뿐, 과학하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막연한 신뢰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과학의 권위를 빌려서 자기주장을 펼치고 싶은 이들에게 악용되곤 한다. 이는 방역과 백신처럼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상황에서 특히 위험하다. 연재를 시작하며 ‘과학이란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널리 퍼진 오해는 사회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잘못된 앎이므로 이 오해를 바로잡으면 정확한 앎이 사회에 안착하기 쉽다. 그러니 과학에 대해 널리 퍼진 오해를 통해 과학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과학은 논리적인가? 과학에는 논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특징이 있다. 바로 물리적인 세상을 정확하게 관측하고, 관측된 사실을 토대로 세상을 이해해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의 목표이자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다. 논리성은 과학보다는 수학의 본질이며, 과학의 논리성은 관측된 정보를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한 부차적인 특성에 가깝다. 예를 들어보자. 삼각형 세 각의 합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180°다. 그러나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180°가 아닐 수 있다(지구본처럼 둥근 면에서 삼각형 세 각의 합은 180°를 넘는다). 반면에 과학기술은 지구가 둥글다는 ‘측정’ 결과의 토대 위에서 논리성을 발휘해야 한다. 측정 결과를 무시하고 대포를 쐈다가는 포탄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경험담이므로 과학이다? 신비주의나 가짜 과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할 만한 인상적인 체험담을 소개하고, 이것이 관측된 사실이므로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극히 중시하는 과학에서 ‘관측’으로 인정받으려면 ‘누가 봤다더라’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의 인지나 기억은 부정확할 때가 많고,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접촉 사고에서 두 차주의 인식과 기억이 다른 경우가 얼마나 흔한지 생각해보라.

그래서 과학은 누가 실험하든 같은 방법을 쓰면 같은 결과가 재현되어야  ‘객관적’인 관측이라고 인정한다. 누가 실험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므로 실험 방법과 결과를 투명하고 정확하게 공개하는 것을 중시하며, 엄밀한 통계 분석을 요한다.

비판적이기만 하면 모두 과학적인 태도다? 가짜 과학에서 자주 애용하는 오해다. 예를 들어 수십 년간 쓰여서 안전성이 거의 확인된 백신의 안정성에 의문을 던진 뒤, ‘과학은 비판적이므로 어떤 비판이든 수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물론 과학은 비판적이지만, 아무 의혹이나 던진다고 과학적이지는 않다. 인간의 능력으로 100% 확신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고, 이런 상황에서 쉽게 의혹을 던지는 것은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지식을 늘려가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사실관계의 정합성과 경중을 꼼꼼히 따지는 체계적인 사고 끝에 피어난 질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비판도 꼼꼼하고 견실하게 던진다.

과학에서 ‘A가 X의 핵심 원인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려면 ‘B·C·D·E 등이 X의 원인일 가능성이 대단히 낮고, A가 없으면 X는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관측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백신 접종 후 사망’처럼 시간적인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같은 조건(연령·기저질환 등)의 다른 집단과 사망률을 비교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야 한다.

나아가 사용(또는 인용)된 실험 방법이 주장과 부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망이나 장애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백신 이상반응을 우려하면서, 며칠이면 사라질 일반적인 이상반응을 주로 다룬 논문을 거론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 이처럼 꼼꼼하고 비판적인 태도 때문에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실린 논문은 대개 3~5쪽으로 짧지만 첨부된 보조실험 자료는 종종 수십 쪽에 달한다.

기존의 관측 사실을 뒤엎는 비판이라면, 그 관측이 틀렸다는 증거(실험에 오류가 있다, 통계가 잘못되었다 등)를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에서 진심으로 타인을 염려하는 ‘과학적인’ 전문가라면, 적확한 데이터를 제대로 따져보는 정도의 정성은 보여야 한다.

정치보다는 미더운 느낌 주지만

과학만 따르면 해결책이 나올까?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에서 과학기술은 최소한 정치보다는 미더운 느낌을 준다. 과학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 지금 가능한 최선의 지식을 주고, 기술은 우리가 쓸 수 있는 수단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동기로 과학을 무시했다가는,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도 수많은 코로나19 사망자를 냈던 작년의 미국처럼 될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만으로 해결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상황 인식이 같더라도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각기 다른 코로나19 방역책을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가치들은 종종 상충한다. 코로나19 방역을 예로 들자면,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는 해당 개인을 포함한 집단 구성원의 건강이라는 가치와 상충한다. 좋은 가치라고 믿고 추구했는데 예기치 못한 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하고, 과학적 근거가 약한 가치도 있다. 그래서 ‘옳다’고 믿으니까, 혹은 정치적으로 옳다고들 하니까 추구해온 가치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내가 특정 사안에서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그 가치들이 동시에 추구될 수 있는지, 그 가치가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 따져보는 자세는 과학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혼란한 시절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송민령 (뇌과학자)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