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 인터뷰] 의식 잃은 남성 CPR로 구한 안양 김태훈, "배운 대로.. 큰 용기 냈죠"

김유미 기자 2021. 9.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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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지난 14일, 서울 한강변 뚝섬유원지에서 한 남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앉은 상태에서 그대로 넘어간 남성을 멀리서 주시하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달려간 건 FC 안양 골키퍼 김태훈이었다.

김태훈은 이날 낮 팀 훈련을 마치고 친구와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평일 낮이었기에 길을 지나는 몇몇 사람들과 바람을 쐬러 나온 이들이 전부였다. 도시락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김태훈의 눈에 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등받이가 없는 벤치에 앉아있던 남성은 맞은편에서 쓰러졌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베스트 일레븐>과 인터뷰에서 김태훈은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떠올렸다. "갑자기 바로 건너편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가 넘어지셨어요. 술에 취한 분인가 싶었는데,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확 받았어요. 제가 시력이 좋거든요. 멀리서 봤을 때에도 상태가 안 좋으신 것 같았죠. 발작을 일으키며 입에는 거품을 물고 계셔서 바로 뛰어갔어요."

김태훈은 환자 주변에 있던 두 여성에게 곧바로 112와 119에 구조를 요청했고, 주위에 있던 한 남성과 함께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제세동기를 가져다달라고 요청하고서 바로 응급처치를 시작했어요. 심장이 뛰고 있는지 확인하고, 옷을 풀어 드리고, 기도를 확보했는데 의식과 호흡이 없으셨어요. 혀가 말릴 수 있겠다 싶어서 손가락을 집어넣어 혀가 말려들어가지 못하도록 했어요. 제세동기가 없어서 흉부압박을 5분간 했습니다."

환자의 머리를 붙들고 있던 김태훈은 응급처치를 도와주던 남성이 제대로 힘을 가하지 못하는 걸 확인했다. 김태훈은 학생 선수로 뛰었던 고교생 그리고 대학생 시절, 그리고 프로 진출 후에도 매년 꾸준히 CPR(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던 덕분에 정확한 방법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손을 바꾸자'고 제안한 뒤 직접 흉부압박에 나섰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30초 압박 후 5초 휴식'의 반복이었다.

"다른 남자 분이 계셨는데, 압박을 살살 하시더라고요. 원래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게 당연한 겁니다. 가슴이 5㎝는 들어갈 만큼, 환자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해야 돼요. 이대로 안 되겠다 싶었고, 혈색도 안 돌아와서 손을 바꿔 압박에 들어갔어요. 5분을 하고 나니 혈색도 돌아오고, 숨통도 트이셨어요. 그리고 구급차가 와서 곧 의식도 찾으셨고요."

다행히 5분 만에 구급차가 도착해 환자를 이송했다. 함께 도착한 경찰관은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 인적사항을 물어봤다. 김태훈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간호사냐 하시기에 축구선수를 하고 있다고 답했어요. 경찰관 분이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용기를 낼 생각을 했냐'고 칭찬해주셨어요. 제가 아니었더라면 한 생명이 안타깝게 될 뻔했다고요. 소속팀도 물어보셨고요(웃음).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다행이에요. 골든타임이라고 하잖아요. 첫 5분이 정말 중요한데 거기에 제가 있었던 거죠. 저도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끝나고 나서는 땀이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하며,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배운 지식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많은 축구팬들이 김태훈이라는 이름을 이 기사를 통해 접했을 테다. 2019년 안양에 입단해 프로 3년 차를 보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K리그 데뷔전을 치르지 않은 선수여서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생명을 지키는 값진 일을 했지만, 평소에는 골키퍼 장갑을 끼고 안양의 골문을 지키고 있다. '미완의 대기'인 그는 지난 3월 FA컵을 통해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오랜 기다림에 지칠 법도 하지만, 그래도 김태훈은 끝까지 해보겠다며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정민기 형, 양동원 형이 잘해주고 계셔서 리그 데뷔를 하지는 못했어요. 기회를 잘 만들고 잡는다면 좋은 선수가 될 거라 믿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여러분은 저를 끝까지 응원해주셨으면 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 불확실한 일을 위해 저만의 무기를 갈고 닦고 있어요. 김태훈이라는 선수를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특수한 자리이기 때문에 기회를 얻기 쉽지 않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분명 좋은 날이 올 거라 믿어요. 지금 제 신호등은 빨간불이지만, 언젠가 초록 신호가 켜지리라 믿고 있어요."

지난 3월 27일 소화한 FA컵 경기는 그가 프로 3년 차에 처음 치른 공식전이었다. 김태훈은 "생각보다 긴장은 안 됐어요. 경기 결과는 좋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많은 걸 깨닫는 시간이었죠.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감독님, 코치님들, 선수들, 스태프 형들, 구단 프런트 직원 분들의 도움과 팬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어요. 몸담을 수 있는 팀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라고 데뷔전을 회상했다.

이어 "형들에게 많이 배우면서, 저만의 무기인 양발 킥과 공중볼 처리 능력을 더욱 갈고 닦으려고 해요. 안양 골키퍼 형들, 그리고 선방 능력이 좋은 강현무·조현우 형, 개인적으로 육각형 골키퍼라 생각하는 김승규 형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FA컵 경기 후에 미디어에서 저를 '더 긁어봐야 하는 복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프로라면 언제 긁든 당첨될 수 있는 복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꼭 경기장에서 뵙는 그날을 약속드리겠습니다"라며 성장을 거듭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요즘 김태훈에겐 자신의 리그 데뷔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다. 바로 안양의 'K리그1 승격'이다. 안양은 올 시즌 김천 상무와 K리그2 선두를 다투며 승격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까지 김태훈은 승격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며 모두의 노력을 봐달라고 당부했다. "안양이 승격을 위해 싸우고 있어요. 우리 팀이 승격 하나만 바라보며 선수들이 운동도, 몸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팬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감독님부터 코치님들, 구단 직원들, 닥터 선생님들까지도 한 마음으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어요. 좋은 시너지를 내며 올해를 보내고 있으니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저희 안양은 지치지 않는, 지칠 수 없는 팀입니다."

때때로 남에게 베푼 작은 선행이 더 좋은 일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고는 한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김태훈의 용기는 한 사람을 살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의 커리어도, 안양의 승격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작은 노력이 모이고 쌓여 언젠가 더 크고 좋은 기회로 다가올 거라 믿는다.

글=김유미 기자(ym425@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김태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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