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계승한 라셰트냐, 진보축 숄츠냐..독 총선 막판 초접전

한겨레 입력 2021. 9. 24. 05:07 수정 2021. 9. 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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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지지 사민당-기민련 엎치락
후보별 사민당 숄츠 압도적 1위
메르켈과 대연정 파트너로 경륜 뽐내
'최저임금 12유로' 의제 치고나와
기민 라셰트, 부동표에 역전 달려
녹색당 베어보크 정책정당 선전
2013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메르켈의 마름모’ 그림이 새겨진 거대한 집권 기독민주당 선거 운동용 패널 앞으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양손 엄지와 검지를 마주 대어 다이아몬드 모양을 만드는 독특한 손동작을 자주 취했고, 이런 손동작은 ‘메르켈의 마름모’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26일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 지지율 1위와 2위 정당이 마지막까지 격전을 벌이고 있다. 21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인 중도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이 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이하 기민·기사연합)을 상대로 앞서 왔으나 총선을 이틀 남겨두고 다시 차이를 좁히고 있다. 이미 두차례 1위가 바뀌면서 역전을 거듭했던 독일 총선에서 사민당이 더 유리해진 모습이다.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자 유럽연합(EU)의 맹주 역할을 해온 독일에서 지난 16년간 이어진 이른바 ‘메르켈 노선’의 계승을 둘러싸고 치러진 선거이기에 세계가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23일 공개한 결과를 보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대연정’에 소수파로 참여 중인 사민당의 지지율은 25%로 여전히 1위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대연정’의 다수파인 기민·기사연합의 지지율은 올해 초 한때 40%에 육박했지만, 지난주 21%까지 떨어졌다가 막바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첫 ‘녹색 정권’ 탄생 기대감을 높였던 야당 녹색당의 지지율은 다시 하락해 14%를 기록했다. 아직 지지정당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부동층도 20%가 넘는다. 2017년 총선 때도 일부 여론조사에선 사민당이 1위를 기록했지만 개표에선 2위에 그친 바 있어 현지에선 섣부른 판세 예측을 피하는 분위기다.

이번 독일 총선은 2005년 이후 무려 16년이나 집권했던 메르켈 총리가 출마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독일을 이끌어 갈 새로운 리더십을 선출하는 선거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지지율 1위가 두번이나 바뀌고 어느 당도 30%를 넘지 못하는 ‘초박빙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은 메르켈이라는 거인이 빠져나간 뒤의 ‘정치적 진공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십수년 동안 1위가 이미 정해진 선거를 해오던 독일 정치에 오랜만에 생산적인 논쟁과 경쟁이 살아나는 등 정치적 역동성이 회복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다.

지난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 정당 총리 후보자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민주당의 올라프 숄츠, 녹색당의 아날레나 베어보크 공동대표, 기민·기사연합의 아르민 라셰트 후보의 모습이 보인다. 베를린/AP 연합뉴스

이번 선거에선 부자 증세, 최저임금 인상, 국민건강보험 도입 등 ‘사회적 정의’, 지구온난화, 탈탄소 등 ‘기후 이슈’들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며 정당 간에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특히 가장 일찍 총리 후보를 정한 사민당은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최저임금 12유로(약 1만6500원)’, 돌봄노동 처우 존중 등 구체적인 정책들을 내걸면서 의제를 선점했다. 19일 밤 열린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회에서도 올라프 숄츠 후보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1000만명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부자 증세를 통한 독일 사회 내 ‘격차 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맞서는 아르민 라셰트 후보(기민·기사연합)는 “민간투자 확대를 통해 기업이 고용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며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번 총선에서 사민당이 1당을 차지하고 녹색당과 연정을 맺는다면, △고소득자 증세 △부유세 재도입 △중산층과 저소득층 감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정책 등이 적극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 분야도 주요 쟁점이었다. 독일이 유럽연합에서 차지하는 주도적 위치와 점점 치열해지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유럽이 중심을 잡아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번 선거는 독일의 총리가 아니라 유럽연합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이라는 논평이 나올 정도였다. 기민련은 선거공약집 첫 장에 중국의 신 실크로드(일대일로)와 협력 등 메르켈 총리가 추진한 외교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유럽연합의 기후, 인권 정책을 강조했다.

이번 선거 기간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정치인은 단연 숄츠 후보였다. 사민당과 기민·기사연합 사이의 지지율 차이는 2%포인트 안팎이지만, 차기 총리 후보로서 인기는 숄츠 후보가 압도적이다. 19일 마지막 티브이 토론 직후 조사기관 포르자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2%가 숄츠 후보, 27%는 라셰트 후보를, 25%가 아날레나 베어보크 후보(녹색당)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사민당에선 숄츠 후보가 처음엔 ‘메르켈의 닮은꼴’로 인기를 얻었지만 선거운동이 진행되면서 유권자들이 메르켈과 다른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같은 당의 아나마리아 트러스네아 연방의원 후보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숄츠 후보는 대연정의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정치적 능력을 증명했기에 위기를 헤쳐나갈 인물이라는 믿음을 얻었다. 하지만 ‘기다림의 정치’로 상징되는 메르켈과는 달리 숄츠는 바로 행동하는 스타일이다. 기후변화 등과 맞물려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어서 많은 지지를 얻게 된 것”이라고 했다.

또 ‘사회적 정의’를 내세우며 가장 먼저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은 전략이 유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숄츠 후보는 최저임금 12유로, 부자 증세 등 유권자들의 피부에 와닿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초반부터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민당은 기후 정책에서도 “겉은 녹색, 속은 빨강을 추구해야 한다. 사민당만이 이행기에 도출될 사회적 갈등을 수습하며 기후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는 ‘수박론’을 들고나오면서 녹색당과 설전을 벌였다. 이에 견줘 라셰트 후보는 “기민·기사연합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와 잡음”으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메르켈의 정적이자 동지인 기민련 출신 볼프강 쇼이블레 하원의장은 19일 <타게스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메르켈 후보가 2018년 당대표는 사임하고 지금까지 총리로 있었기 때문에 기민련이 개혁을 추진할 수도, 정책을 계승할 수도 없었다”고 비판하는 등 벌써부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총리를 배출하긴 어려워 보지만 앞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정치세력은 녹색당이다. 녹색당은 선거까지 독일 전역 100곳을 돌면서 녹색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최근에는 환경 시위 ‘미래를 위한 금요일’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이 부모님에게 녹색당을 찍을 것을 요구하면서 선거법 위반 논쟁에 휘말리기도 할 만큼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자리잡았다. 선거 슬로건으로 “녹색당을 교수형에 처하자”는 슬로건을 내건 ‘제3의 길’이라는 극단적인 반대세력이 등장할 만큼 논쟁적인 정당이기도 하다.

사민-녹색의 ‘적녹연정’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회적 전환을 원하지만 극단적인 변화의 충격은 피하려는 독일 사회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비평가 헤리베르트 프란틀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유권자들 사이에선 사민당이 집권하고 난 뒤엔 당내 정치적 파벌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금의 정치적 원칙들을 지켜내지 못하리라는 불신도 높다”고 경고했다. 반대로 기민·기사연합이 막판 역전에 성공했을 경우엔 메르켈 시대 정치적 안정성을 지속하면서도 정책 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지가 과제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nameunjoo1@gmail.com,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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