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51] 자유는 마냥 자유로울까

양해원 글지기 대표 2021. 9.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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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3호 터널 앞에서 멈칫했다. 연휴 마지막 날이니 무료 통행 분명한데. 지난해 근로자의 날이었던가, 같은 길로 출근했을 때가 생각난 탓이다. 공휴일로 여기고 지나다 통행료 물지 않았나. 셈 안 치르고 오가는 자유(自由) 사라진 지 25년에 뜻하잖은 지출이 달가울 리 없다. 한데 자유도 자유 나름, 너무 자유로우면 곤란한 자유가 있으니….

‘농막은 주택이 아니어서 부동산 관련 세금에서 자유롭다.’ ‘세금이 없다’ 하면 될 말을 이렇게 하다니, 우리말이 단단히 뒤틀렸다. ‘자유롭다’는 무언가에 매이지 않고 맘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세금에 속박당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뭘 하는 것과 세금이 없다는 말이 어찌 같은가.

어법으로 따져도 이상하다. ‘에서’는 어떤 일(행위)이 일어나는 곳에 붙는 말이니, 자유로움이 세금에서 일어난다? 영 말이 아니다. ‘어떤 기업이든 성장과 수익을 우선시하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유혹을 받는다/벗어나기 어렵다’와 비교해보자. 어느 쪽이 자연스럽고 명쾌한지.

왜 이다지 어색한 쪽으로 말이 흐를까. 영어 ‘free’ 영향이 의심스럽다. ‘매이지/막히지 않은, 무료인, ~이 없는, 사용 중이 아닌’ 등 여러 뜻이 있건만 곧이곧대로 ‘자유롭다’로 옮겨 버릇한 탓일 터. 여기에 전치사를 더한 ‘free from’을 ‘로부터(에서) 자유롭다’는 식으로 직역한 표현이 어지럽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죄책감에서 자유로운,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산 걱정에서 자유로운,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를 ‘자유는 자유롭지 않다’고 옮기는 꼴 아닌가. 제대로 된 한국어로 써보자. ‘정치 영향 안 받는, 죄책감에서 벗어난, 전염병 없는, 예산 걱정 안 해도 되는, 안전한….’

다가오는 개천절 다음 날에도 남산 터널에서 주춤해야 하나. 알아보니 대체 공휴일은 그냥 통과란다. 흠~. 2000원에 오락가락하는 소시민의 자유여. /글지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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