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게임에서나 꿀 수 있는 꿈
오랜만에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접속했다. 나만의 섬에서 동물 친구들과 함께 마을을 이루며 사는 게임이다. 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힐링 게임’으로 유행했는데, 최근엔 인기가 전보단 덜하다. 주변 친구들은 관둔 게임에 몇 달 만에 접속한 이유는 ‘찜찜함’이었다. 집을 짓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빚을 졌는데, 다 갚지 못한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이 게임에선 착실한 주민이 정직하게 돈을 번다. 사과나무를 3일간 키우면 사과 3개가 나온다. 이걸 수확해서 팔면 300벨이다. 물질을 해서 잡은 불가사리를 내다 팔면 500벨이다. 잠자리채를 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다 보면 1000벨짜리 사슴벌레도 잡을 수 있다.
마을 이장 격인 ‘너굴씨’는 한곳에 터 잡고 이웃들과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주민들의 꿈을 응원해주려 언제나 통 크게 대출을 해준다. 집값이 갑자기 오르는 일은 없으니 성실하게 노동만 하면 언젠가는 다 갚을 수 있다. 100벨, 200벨을 차곡차곡 모아 어느덧 대출금 250만벨을 다 갚았다. ‘너굴씨’가 손뼉을 치며 함께 기뻐해 줬다. “’가을꽃게’님! 대출을 다 갚아줘서 고마워!” 대한민국 직장인의 성실함을 증명한 것 같아 개운함이 들었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듯한 기분에 뿌듯함 비슷한 것도 밀려왔다.
하지만 이건 2021년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7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값은 11억원을 돌파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아파트값을 직장인 월급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너굴씨’가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대출을 풀어줘야 하는데, 현실의 정부는 대출을 틀어막은 지 오래다. 제아무리 매일같이 사과를 키우고 불가사리를 잡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평범한 사람이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것은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일이 됐다. 잠시 느꼈던 뿌듯함이 너무 하찮게 느껴져 그만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을꽃게’의 마을에서 로그오프했지만 동물의 숲을 그립게 하는 뉴스는 계속됐다. 올 들어 수도권 아파트값은 8월까지 13% 넘게 올랐다. 전셋값도, 빌라 월세도 덩달아 줄줄이 올랐다. 그러자 정부에선 오피스텔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집값이 너무 올라서 못 사는 사람들에게 일단 ‘대체품’을 제시한다는 발상이다. 동물의 숲식으로 따지면, ‘너굴씨’가 어느 날 갑자기 집값을 잔뜩 올려놓더니 집이 없어 곤란해하는 동물들에게 텐트나 빌려주는 상황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동물의 숲에선 이런 황당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최근 다시 만난 ‘너굴씨’는 대출을 모두 갚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설명해줬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지붕, 현관문, 창틀의 색과 모양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현실과 비슷한 구석을 찾아봤다. 주기적으로 ‘처음 보는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점이 실제와 닮았다. 대신 현실에선 전셋집을 옮겨 다니는 ‘전세 난민’ 처지라는 점이 다르다.
이뤄지지 않을 꿈을 게임 속에서 꾸는 것마저 지친 나는 또다시 마을을 떠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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