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년 전 신들의 이야기가 일깨우는 한국 사회 불공정[조대호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입력 2021. 9. 24. 03:02 수정 2021. 9. 2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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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화가이자 건축가인 조르조 바사리가 그린 ‘우라노스의 거세’(1560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에 속한 코시모의 방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 세상은 맨 처음 어떻게 생겨났을까? 모든 문명권에는 저마다 세상의 시작에 대한 신화가 있다. 그리스 문명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기원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적 상상은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계보)에 담겼다. 기원전 700년 무렵에 지어진 이 서사시는 세상이 카오스에서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천지개벽에 얽힌 신들의 이야기는 현재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계보’에서 깨어진 거울 속 자화상 같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헤시오도스는 가난한 이주민의 아들이었다. 땅 한 뙈기 부칠 곳 없는 궁벽한 산골의 가난뱅이가 할 만한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산기슭에서 양과 염소 떼를 돌보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그렇게 하늘과 바람과 별을 벗 삼아 단조로운 날들을 보내던 목동의 삶에 뜻밖의 반전(反轉)이 찾아왔다. 산중의 어느 날 밤, 뮤즈 여신들이 그에게 나타난 것이다. 여신들은 신들의 탄생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에게 시인의 소명을 부여했다. 베들레헴의 성 밖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했다는 성서의 이야기와 같다.

뮤즈에게서 영감을 얻은 헤시오도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맨 처음 카오스가 생겼고, 그런 뒤/가슴이 넓은 가이아, 모든 영원한 것들의 앉을 자리가 생겼다.” 또 “카오스로부터 검은 어둠과 밤이 생겼고/밤에서 빛과 낮이 생겨났는데,/이들은 밤이 사랑에 빠져 어둠과 몸을 섞어 잉태해서 낳았다.” 카오스는 보통 ‘질서 없는 혼돈’으로 알려져 있지만 ‘계보’의 카오스는 틈새가 벌어져 무한히 열린 공간을 가리킨다. 어둠이 가득 찬 거대한 빈자리, 이것이 카오스다. 이런 카오스에 가이아(땅)와 우라노스(하늘)와 바다와 산맥이 들어차고 그 깊은 어둠에서 밤과 낮의 순환이 반복되면서 세상이 형태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철학적으로 보면 있는 것의 시작은 없는 것이고 가득 찬 것의 뿌리는 비어 있는 곳에 뻗어 있다는 생각이 헤시오도스 신화의 핵심이다.

귀스타브 모로가 그린 ‘헤시오도스와 뮤즈’(1891년). ‘계보’의 이야기에서는 뮤즈 여신들이 시인에게 리라가 아니라 월계수 가지를 꺾어 준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우주의 발생은 물 흐르듯 순조로운 과정이 아니었다. 어디서나 그렇듯이 신들의 세계에서도 빈자리가 채워지면서 문제가 생겨났다. 카오스의 빈틈에 들어선 가이아는 “사랑 없이” 우라노스와 산맥과 바다를 낳았다. 그때까지는 별일 없었다. 하지만 가이아가 우라노스와 동침해 자식들이 생겨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이아의 배 속에 열두 자식이 생겼지만 우라노스가 이들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자식들을 배 속에 가둔 채 가이아를 독점하려는 우라노스의 욕심이 문제였다. 자식들을 출산하지 못하는 가이아에게나, 배 속에 갇힌 자식들에게나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참다못한 가이아와 자식들은 마침내 독재자 남편과 아버지를 응징할 계획을 세웠고, 막내 크로노스가 나섰다. 어머니 배 속에서 때를 기다리던 아들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몸을 덮는 순간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버렸다. 단단한 돌로 만든 낫으로. 땅과 하늘은 그렇게 분리되었다.

그 뒤 아들은 아버지와 달라졌을까? 폭력은 대물림되는 법. 크로노스의 폭력은 아버지보다 더 가혹했다. 우라노스가 자식들을 ‘티탄들’이라고 부르면서 이들 역시 자식들에게 똑같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크로노스는 권력 유지를 위한 행동에 나섰다. 그는 아내 레아가 자식들을 낳을 때마다 무릎 앞에서 기다리다가 태어나는 즉시 자식들을 삼켜버렸다. 훗날 수많은 화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엽기적인 만행이었다. 루벤스는 아들의 심장을 물어뜯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고야는 이미 아들의 머리를 삼키고 남은 몸통마저 삼키려는 아버지를 그림에 담았다.

만일 크로노스의 만행이 저지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올림포스의 신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레아의 지극한 모성 덕분이었다.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도움으로 레아는 멀리 크레타섬으로 피신한 뒤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막내를 낳았다. 자식을 잡아먹으려는 아버지에게는 아기 대신 강보에 싼 돌덩이를 건네주었다. 올림포스의 주인 제우스가 그런 원정 출산의 결과였다. 몰래 태어난 제우스는 곧 어른으로 성장해 아버지의 권력에 맞서 싸움을 준비한다. 그는 크로노스가 삼킨 자식들을 토해내게 하고, 가이아의 배 속에 갇혀 있던 우라노스의 아들들까지 구해내 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드디어 아들 세대와 아버지 세대의 싸움, 이른바 ‘티탄들의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하늘이 흔들리고 땅속 깊은 곳까지 진동하는 우주전쟁이 10년 동안 이어졌다. 이 싸움의 결과는? 아버지의 힘이 아무리 강력해도 아들을 이길 수는 없다. 시간은 언제나 아들 편이니까. 10년 전쟁은 제우스와 그 형제들이 크로노스의 세력을 제압하고 그들을 지하감옥에 가둠으로써 끝났다.

‘계보’에서 그려진 신들의 갈등과 폭력, 세대 간 전쟁 이야기는 우주의 발생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격변의 알레고리다. 하지만 그 깊은 뜻과 상관없이 후대 철학자들은 신들의 폭력과 싸움 이야기를 혐오했다. 특히 플라톤이 그랬다. 신화가 아이들 교육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그는 신들의 이야기에 엄격한 검열 지침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라노스와 크로노스를 이은 제우스의 시대는 나아졌을까? 세상에 완전한 평화와 질서가 도래했을까? 이 시대에도 폭력은 뿌리 뽑히지 않았다. 하지만 젊은 신들은 옛 신들의 몰락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새롭게 왕좌에 오른 제우스는 다른 신들에게 적절한 몫을 분배했다.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지하세계를 다스리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분쟁의 불씨를 제공한 땅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그들의 지혜가 빛났다. 새로운 세대의 신들은 땅을 공유물로 남겨 두었다. 이런 분배와 공유의 지혜가 없었다면 제우스와 올림포스 신들 역시 앞 세대 신들이 겪었던 파멸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2700년 전에 기록된 ‘계보’의 우주 탄생 신화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기이한 경험이다. 땅을 둘러싼 불화, 미래 세대의 탄생을 억압하는 사회, 세대 간의 갈등과 폭력 등은 신화적 상상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 존재한다. 이 현실이 빚어내는 엽기적인 막장 드라마들은 먼 옛날 신화 속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초현실적’이다. 그런데도 ‘분배와 공유’로 분쟁의 여지를 없앤 제우스의 지혜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으니, 아직도 우리는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의 야만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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