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땀·눈물 25년… 전세계 긴급 구호 달려갑니다
지진, 쓰나미, 태풍 등 재난 속보가 뜨면 그들은 반사적으로 공항으로 달린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하 봉사단)이다.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를 나눠준 것이 시작. 해외에선 2003년 이라크 전쟁 직후 피란민을 도운 것이 시작이었다. 지난 25년 넘게 긴급 출동한 지역이 국내외 50여 곳. 아이티, 스리랑카, 파키스탄, 네팔,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이란 그리고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까지 물품을 총 30억원어치 지원했다.
최근 출간한 ‘그래도 우리는 떠납니다’(생명의말씀사)는 봉사단 25년 피·땀·눈물 기록이다. 초기부터 봉사단 활동을 해온 봉사단 사무국장 이석진(55) 목사가 집필했다. ‘지진과 태풍을 쫓아가는 특별한 여행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는 국내외 24곳 긴급 구호 기록을 담았다.
봉사단은 몇 가지 특별한 원칙이 있다. 교회 대신 ‘한국기독교연합’이란 이름을 썼다. 개별 교회가 아닌 한국 개신교 전체의 선의를 전하는 파이프로 삼겠다는 뜻이 담겼다. 또한 상시 조직을 운영하지 않는다. 단장인 조현삼 목사를 비롯한 단원들은 평소 서울광염교회에서 맡은 직분을 수행한다. 이석진 목사도 평소엔 ‘21교구 담당 목회자’다. 사무실도 따로 없어 별도 운영비가 없다. 대신 항상 조끼·침낭·텐트·안전모·안전화 그리고 여권과 ‘한국 교회가 함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준비해두고 있다. 국내외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단원 5~6명이 가장 빨리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하루 이틀 사이에 현장에 도착한다. 교회 통장에 준비된 비상 구호 자금 5000만원 정도를 달러로 바꿔 간다. 현장 부근에서 식량 기준 30톤 정도를 구매해 직접 이재민 손에 쥐여준다. 대략 현지인들이 2주 정도 버틸 수 있는 양이다. 봉사단 역시 2주 정도 긴급 구호 활동 후엔 그 지역 행정 당국이나 다른 NGO에 인계하고 철수한다. 남서울은혜교회, 선한목자교회, 사랑의교회 등 한국의 여러 교회가 보낸 후원금은 구호품 구입에 다 쓴다. 다음 구호 활동을 위해 남겨두지 않는다. 물품을 구입하면 손 글씨 영수증이라도 모두 챙긴다. 현장까지 가는 교통비나 숙식비는 서울광염교회 비용으로 감당한다.
이 목사는 “현장에서 우리가 구호품을 나누고 있을 때 외국 NGO는 선발대가 현황 파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전쟁터로 치면 봉사단은 정식 병원이 아니라 직접 부상병의 상처를 응급처치하는 위생병이나 119대원 같은 역할이다.
재난 현장은 전쟁터 이상으로 참혹하다. 지진 발생 나흘 후 도착한 아이티 수도 중심엔 그때까지도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널려 있었고, 사이클론이 강타한 미얀마 라부타 지역으로 들어가는 강 주변에서도 시신들은 부패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돈은 쓸모가 없다. 물건이 없기 때문. 봉사단 역시 ‘있을 때 먹어야’ 한다. 기내식으로 나오는 고추장도 필히 챙긴다. 현지 행정 당국조차 안전 때문에 접근을 불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봉사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현장에 간다.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구호품을 나눠주려는 것이다. 이 목사가 재난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플리즈(Please)’다. 통사정하면 통하는 경우가 많다. 수송 수단도 말, 당나귀부터 헬기, 군용 트럭과 보트까지 닥치는 대로다. 천신만고 끝에 현장에 도착해 구호품을 나누고 듣는 말은 ‘생큐’ ‘메르시’ ‘그라시아스’. 철수하면서 봉사단이 하는 말은 ‘쏘리’. 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봉사단원들은 현지에서 액션이 크다. 별것 아닌 일에도 크게 웃고 손뼉 치고, 고마움을 표시할 때도 온몸을 흔들며 고맙다고 한다. 현장에서 목격한 참혹한 장면에 대한 트라우마를 털어내기 위해서다.
이 목사는 책에서 “남들이 다 떠나는 순간 우리 팀만 들어서는 그 장면에서, 세상 모든 사람이 떠날지라도 어렵고 소외되고 도움 받을 길 없는 한 사람을 위해 오시는 예수님 모습이 겹쳐 보였다”고 적었다. 봉사단은 현장에서 ‘예수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단장 조현삼 목사는 “성경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선한 이웃처럼 ‘가서 너도 이렇게 하여라’ 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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