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배로는 가짜뉴스 퇴치 안 돼 포지티브한 방식의 언론개혁 논의해야"

고희진 기자 2021. 9. 23.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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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시민넷' 출범 주도했던 오정훈 전 언론노조 위원장

[경향신문]

당시 검찰개혁에 언론개혁 밀려
‘미디어개혁국민위’ 설치 무산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을 계기로 언론개혁이 최근 화두로 떠올랐지만 불과 2년 전에도 시민사회계를 중심으로 언론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있었다. 2019년 25개 시민사회 및 언론단체들은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시민넷)’를 만들고 언론개혁의 주요 이슈들을 고민했고, 대통령 직속으로 가칭 ‘미디어개혁국민위원회’를 꾸릴 것을 정부·여당에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검찰개혁에 집중하던 여권은 호응하지 않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개혁을 꺼내든 여권은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진하는 등 언론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시 언론노조 위원장으로 시민넷에 참여했던 오정훈 전 언론노조 위원장(51·사진)을 지난 17일 만났다. 그는 “징벌적 손배에 매몰되지 않은 포지티브한 방식의 언론개혁 논의가 다시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넷은 2019년 7월 출범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인(민변) 등 현재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찬성 입장을 보이는 다수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오 전 위원장은 “2017년 MBC, KBS가 정부로부터 독립성 회복을 요구하며 파업 투쟁을 벌였다. 정부가 공영방송의 이사 선임에 개입하고 사장 선출까지 관여하는 상황에서 낡은 방송법을 비롯해 언론 관련법을 전반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서 시민넷을 구성했고 이듬해에 ‘미디어정책보고서’를 냈고, 대통령 직속으로 ‘미디어개혁국민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요청을 정부에 했다”고 말했다.

네거티브식 언론중재법 개정안
언론 전체에 대한 불신 키워
게시물 삭제 근거로 삼는
‘사회적 혼란 야기 우려’ 규정
반드시 불명확성 개선 필요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가 검찰개혁에 집중하던 시기였고, 언론개혁은 후순위로 밀려있었다. 언론개혁이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징벌적 손배’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다. 그런데 징벌적 손배 논의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관련 논의가 있었다. 시민넷은 보고서에서 “네거티브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은 자칫 미디어·언론 전체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심화시키고 미디어 생태계 전체의 질적 저하 및 하향 평준화 등 부정적 외부효과 유발의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또 가짜뉴스의 정의에 대해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 근거로 삼는 심의규정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불명확성에 대해서는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며 “막연하게 사회적 혼란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게시물을 삭제하는 현행 규정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흉기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 짚었다.

오 전 위원장은 “애초 징벌적 손배 같은 것으로 가짜뉴스가 퇴치되지 않는다는 게 결론이었다. 제대로 된 정보 유통을 보장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면서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니 정부에 미디어개혁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자고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결국 무산됐다”고 말했다.

시민넷이 보고서를 낼 때만 해도 정치권의 압박으로부터 어떻게 언론의 공공성을 지키고 시민사회가 미디어의 정보 유통을 감시할 것인가가 주요 논의 사항이었다. 지금은 기성 언론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몇 년 사이에 언론을 바라보는 정치권 등의 시각에 변화가 생긴 것인데, 오 전 위원장은 이를 “정부가 검찰개혁도 흐지부지되고 이슈가 사라지니 언론개혁을 들고나온 측면도 있다”고 했다.

오 전 위원장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은 독점 현상이 심해지고 있고, 1인 유튜버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신문도 글 기사만 쓰지 않고 영상도 만든다. 변화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방송, 신문 관련법을 통합해 다룰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며 “징벌적 손배에만 매몰돼선 언론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17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8인 협의체에서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 삭제, 기사 열람차단 청구 대상 축소 등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오 전 위원장은 “조정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의미는 있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며 “어떻게든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 제안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언론노조를 비롯한 7개 언론단체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계 내 자율규제를 강화는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오는 26일 8인 협의체를 종료하고,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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