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마음이 알고 있으니깐 [책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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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위 공기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늘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기억을 끊어내더라도 서로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기에, 슬픈 결말을 예견하면서도 이들은 감정의 흔적을 따라 다시 한 번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기억을 쌓아올릴 수 없는 마오리에게 있어 도루는 늘 새로이 마주해야 하는 낯선 이일 뿐이다.
미오리는 기억 속 공란으로 남아있던 도루와의 장면들을 조금씩 되짚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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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듯 그 곁을 지키는 소년
유능한 편의점 직원이 된 노숙자
기억에서 지운 자신, 되찾을 수 있을까
먼저 살펴볼 책은 이치조 미사키의 소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모모 펴냄)이다. 히노 마오리는 사고로 인해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소녀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행복한 기억도, 온종일 매달린 슬픔의 기억도, 자고 일어나면 무자비하게 모두 잊히고 만다. 마오리가 맞이하는 아침이란, 오늘의 자신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지난 밤의 기록들을 익혀야만 하는 지난한 고통의 시간이다.
이런 마오리에게 어느날 평범한 소년 가미야 도루가 다가와 거짓 고백을 하고, 소년과 소녀는 조건부 연애를 시작한다. '날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이라는 특별한 조건을 걸고서 시작한 만남이지만, 이 둘은 어느새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를 일깨워주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기억을 쌓아올릴 수 없는 마오리에게 있어 도루는 늘 새로이 마주해야 하는 낯선 이일 뿐이다. 불운한 사건으로 마오리의 삶에서 도루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김호연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나무옆의자 펴냄)엔 알코올성 치매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내가 등장한다.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이 사내는 한 여사의 지갑을 찾아준 계기로 그녀가 사장으로 있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 못하는 사내는 어눌한 말투와 굼뜬 행동으로 편의점을 불편하게 만들고 말 거란 주변의 걱정을 산다. 이러한 의구심이 무색할 만큼, 사내는 이내 주민들의 호감을 사고, 때로는 불쾌한 손님들을 단호하게 상대한다. 그리고 각자의 다양한 사연으로 편의점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마치 해답같이 꼭 필요한 위로를 안겨준다. 이제 불편한 편의점은 언제 찾아가더라도 사내가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따스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과거를 기억을 하지 못했던 미오리와 사내. 회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과거의 기억은 그러나 차츰 떠오른다. 행복한 추억에 누가 함께했는지, 가장 사랑했던 이의 얼굴이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되살아난다. 미오리는 기억 속 공란으로 남아있던 도루와의 장면들을 조금씩 되짚기 시작한다. 사내는 사랑하는 이를 다시 찾아가겠다는 결심으로 편의점 밖 세상에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소중한 기억을 움켜쥐기 위해 아무리 애써도 어떤 기억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지곤 한다. 두 소설은 그렇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이들이 안겨준 생에 대한 단단하고도 가뿐한 태도는 우리 안에 집적되어 남아 있음을 일깨워준다. '기억'을 소재로 한 수많은 소설 속에서 두 작품이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는 이유다.
이주호 교보문고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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