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서 구매대행, 철강업계 '적과의 동침'

이유섭 입력 2021. 9. 2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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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세아제강·동부제철
포스코 엔투비 고객사로 합류
"구매비용 낮춰 모두 윈윈
中·日과 경쟁에도 도움"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 경쟁사들이 최근 잇달아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다. 철강업계는 하나의 철강사와 여러 공급업체들로 이뤄진 각자의 생태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정부 주도 사업에 다 같이 참여할 때를 제외하면 업무상 엮일 일이 없을 정도로 배타적 성격을 갖고 있다. 철강사끼리 손을 잡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3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그룹사인 엔투비는 올해 들어 현대제철, 세아제강, KG동부제철과 자재 구매 협약을 체결했다. 엔투비는 소모성 자재(MRO) 구매를 대신해주는 사업을 한다. MRO라는 게 각종 장비와 기계 등의 유지·보수를 위해 필요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다 보니 구매할 때 번거로움을 덜고자 대행업체를 찾는 경우가 많다. 2000년 설립된 엔투비는 포스코그룹을 비롯해 KCC·한진·한솔·풀무원 등의 MRO 구매대행을 해왔다. 그러다 올해는 경쟁사마저 고객사로 유치한 것이다.

현대제철과 세아제강 등 철강사들은 왜 하필 포스코 그룹사인 엔투비와 거래하기로 한 것일까.

우선 약 120개의 고객사 수요를 합쳐 MRO를 대량 구매하는 엔투비를 통하는 게 자체조달을 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게다가 엔투비는 20년 넘게 철강 MRO 구매대행을 해온 만큼 원가 절감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엔투비가 인공지능(AI) 및 로봇 기반 업무 자동화를 도입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이다.

경쟁사들이 저렴한 가격에 철강 자재를 공급받는 것이 포스코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스코그룹 창립 후 탄생한 첫 여성 사장으로, 올해 초 부임한 이유경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이 대표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포스코의 MRO만 사는 것보다 다른 철강사 자재까지 함께 사면 그만큼 가격협상력이 올라가고, 결국 포스코에도 이득이 된다"며 "결과적으로 중국·일본 등 전 세계 업체와 싸워야 하는 국내 철강업계 전체의 경쟁력이 좋아진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어 "5000개 넘는 공급사 입장에서 봐도 잠재 시장이 훨씬 넓어지고 해외 진출의 길도 열리는 셈"이라며 "결국 포스코, 철강사 등 고객사, 공급사까지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철강업계를 고객사로 품기 위한 이 대표의 마지막 카드는 바로 ESG(환경·책임·투명경영)였다. 올해부터 엔투비는 신규 거래사의 MRO 구매대행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수익금 일부를 재원으로 고객사와 공동으로 ESG 활동을 추진한다. 이 '좋은친구 프로그램'에 따라 수익금 일부가 영세 공급사 및 협력사에 대한 안전·환경 개선, 에너지 빈곤층의 냉난방 효율 개선 사업 등에 사용된다. 결과적으로 포스코의 경쟁 철강사 입장에선 저렴한 가격에 MRO를 구입하고, 동시에 ESG 평가점수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ESG에 대한 고민을 하는 와중에 엔투비 측이 제시한 사회공헌 모델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 ESG는 다른 분야에서도 철강사끼리 손을 잡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어, 앞으로도 ESG를 매개로 한 협력모델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예를 들어 지난 15일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굴·조개껍데기, 즉 패각 폐기물을 제철공정 부원료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패각은 전국적으로 연간 30만~35만t이 발생하며 폐수·분진·냄새 등을 유발해 환경오염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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