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서 구매대행, 철강업계 '적과의 동침'
포스코 엔투비 고객사로 합류
"구매비용 낮춰 모두 윈윈
中·日과 경쟁에도 도움"
23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그룹사인 엔투비는 올해 들어 현대제철, 세아제강, KG동부제철과 자재 구매 협약을 체결했다. 엔투비는 소모성 자재(MRO) 구매를 대신해주는 사업을 한다. MRO라는 게 각종 장비와 기계 등의 유지·보수를 위해 필요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다 보니 구매할 때 번거로움을 덜고자 대행업체를 찾는 경우가 많다. 2000년 설립된 엔투비는 포스코그룹을 비롯해 KCC·한진·한솔·풀무원 등의 MRO 구매대행을 해왔다. 그러다 올해는 경쟁사마저 고객사로 유치한 것이다.
우선 약 120개의 고객사 수요를 합쳐 MRO를 대량 구매하는 엔투비를 통하는 게 자체조달을 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게다가 엔투비는 20년 넘게 철강 MRO 구매대행을 해온 만큼 원가 절감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엔투비가 인공지능(AI) 및 로봇 기반 업무 자동화를 도입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이다.
경쟁사들이 저렴한 가격에 철강 자재를 공급받는 것이 포스코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스코그룹 창립 후 탄생한 첫 여성 사장으로, 올해 초 부임한 이유경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이 대표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포스코의 MRO만 사는 것보다 다른 철강사 자재까지 함께 사면 그만큼 가격협상력이 올라가고, 결국 포스코에도 이득이 된다"며 "결과적으로 중국·일본 등 전 세계 업체와 싸워야 하는 국내 철강업계 전체의 경쟁력이 좋아진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어 "5000개 넘는 공급사 입장에서 봐도 잠재 시장이 훨씬 넓어지고 해외 진출의 길도 열리는 셈"이라며 "결국 포스코, 철강사 등 고객사, 공급사까지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철강업계를 고객사로 품기 위한 이 대표의 마지막 카드는 바로 ESG(환경·책임·투명경영)였다. 올해부터 엔투비는 신규 거래사의 MRO 구매대행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수익금 일부를 재원으로 고객사와 공동으로 ESG 활동을 추진한다. 이 '좋은친구 프로그램'에 따라 수익금 일부가 영세 공급사 및 협력사에 대한 안전·환경 개선, 에너지 빈곤층의 냉난방 효율 개선 사업 등에 사용된다. 결과적으로 포스코의 경쟁 철강사 입장에선 저렴한 가격에 MRO를 구입하고, 동시에 ESG 평가점수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ESG에 대한 고민을 하는 와중에 엔투비 측이 제시한 사회공헌 모델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 ESG는 다른 분야에서도 철강사끼리 손을 잡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어, 앞으로도 ESG를 매개로 한 협력모델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예를 들어 지난 15일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굴·조개껍데기, 즉 패각 폐기물을 제철공정 부원료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패각은 전국적으로 연간 30만~35만t이 발생하며 폐수·분진·냄새 등을 유발해 환경오염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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