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값'만 수천만원? 또다시 입길 오른 대법관 전관예우

신민정 2021. 9. 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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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 전 대법관(현 연세대 로스쿨 석좌교수)이 경기 성남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의 고문을 맡아 한달에 15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법관 출신의 전관예우 문제가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이름만 걸어놓고 '도장값'으로 수천만원을 받는 전관예우 폐단을 줄이기 위한 규제방안이 일부 마련돼 있지만,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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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개발사업 논란]권순일 전 대법관, 화천대유서 고액 자문료
"대법관 출신 아니면 받기 힘든 액수" 지적
전직 대법관들 취업제한 풀리면 대형로펌행
법조계 "최고위직 변호사 개업 때 제한 둬야"
권순일 전 대법관. <한겨레> 자료사진

권순일 전 대법관(현 연세대 로스쿨 석좌교수)이 경기 성남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의 고문을 맡아 한달에 15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법관 출신의 전관예우 문제가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이름만 걸어놓고 ‘도장값’으로 수천만원을 받는 전관예우 폐단을 줄이기 위한 규제방안이 일부 마련돼 있지만,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9월 퇴임한 권 전 대법관이 그해 11월 화천대유에 고문직을 맡을 수 있었던 건 전직 대법관 취업제한 대상에 이와 같은 회사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는 퇴직한 대법관이 3년 동안 업무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곳이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됐던 곳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곳들로 자본금 10억원·연간 외형거래액(매출액) 100억원 이상인 사기업, 연간 외형거래액 100억원 이상의 로펌 등이 대표적이다. 화천대유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본금 3억1천만원에 불과해 고위공직자의 취업제한기관이 아니었다. 한 중견 변호사는 “권 전 대법관이 어떤 일을 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달 고문료로 15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법조인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전직 대법관이 아니라면 받기 힘든 액수”라고 설명했다.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규정이 있지만,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 상고심 의견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 이름을 올리려면 그 ‘도장값’만 수천만원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상식처럼 퍼져있다. 전 대법관의 이름이 있을 경우 재판부가 기록을 보다 신경 써서 봐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2015년 3월 전직 대법관의 취업제한 기간을 3년으로 두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3년의 제한 기간이 풀리면 전직 대법관들은 ‘전 대법관’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대형로펌으로 향하곤 한다. 2017년 2월 퇴임한 이상훈 전 대법관은 3년 제한이 풀리고 두 달 뒤인 지난해 4월 김앤장법률사무소에 둥지를 틀었고, 2016년 9월 퇴임한 이인복 전 대법관은 지난해 4월 법무법인 화우에 영입됐다. 2015년 9월 퇴임한 민일영 전 대법관도 사법연수원 석좌교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다 2019년 9월 법무법인 세종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대법관 퇴임 뒤 3년이 지나면 영향력이 조금은 떨어질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전관으로서 영향력이 없다고 볼 순 없다”고 짚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관 도장값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이들에 대한 취업제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은 2019년 펴낸 보고서에서 국내 전관 변호사 문제를 두고 “다수의 퇴직 대법관들이 상고사건의 소송대리를 하는 것이 일반화된 것은 다른 해외사례에서는 거의 발견하기 힘든 모습이다.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 최고위직 법관에는 전면적·영구적인 변호사 개업제한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2016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있을 때 법무법인 광장을 택한 신영철 전 대법관의 개업신고서를 반려했던 김한규 변호사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같이 상징적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는 사건 수임을 금지하고, 로스쿨 등에서 후학을 양성하거나 공익을 위한 단체에서 일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한편, 권 전 대법관이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변호사법 위반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23일 “권 전 대법관이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변호사법은 변호사로 등록하지 않은 이가 법률자문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이성문 화천대유 대표는 지난 20일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권 전 대법관의 서초동 사무실에 4번 정도 찾았다’며 자문을 구한 게 맞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권 전 대법관이 변호사로 등록하지 않고 화천대유 고문으로 일하며 법률자문을 했다면 변호사법 위반이다. 이와 관련해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은 이날 권 전 대법관을 변호사법 위반, 사후수뢰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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