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은 익숙하고 반쯤은 낯선 것

한겨레 입력 2021. 9. 23. 17:16 수정 2021. 9. 2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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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은 일본에 대해 이국적인 흥취를 느꼈다.

그들이 직접 일본에 가보지 않고도 일본 문화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서 수입된 종이부채와 등, 도자기, 그리고 가구 덕분이었다.

1891년까지 일본에서 유럽 각국으로 수출한 부채는 약 1600만개에 이른다.

일본 물품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상점이 줄이어 문을 열었고, 화가들은 수시로 흥미진진한 물건들을 구입하여 그림 속 소품으로 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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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오딜롱 르동, <일본 화병의 꽃>(Flowers in a Japanese Vase), 캔버스에 유채, 92.7×65㎝, 오하라미술관, 구라시키.

[크리틱] 이주은|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은 일본에 대해 이국적인 흥취를 느꼈다. 그들이 직접 일본에 가보지 않고도 일본 문화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서 수입된 종이부채와 등, 도자기, 그리고 가구 덕분이었다. 특히 판화를 붙인 일본부채는 1870년대부터 20여년 동안 유럽의 멋쟁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891년까지 일본에서 유럽 각국으로 수출한 부채는 약 1600만개에 이른다.

먼 바다를 건너온 일본의 물품은 아시아적인 분위기를 흠씬 뿜어내며 유럽의 수집가들을 흥분시켰다. 일본 물품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상점이 줄이어 문을 열었고, 화가들은 수시로 흥미진진한 물건들을 구입하여 그림 속 소품으로 등장시켰다. 프랑스의 화가 오딜롱 르동(1840~1916)도 정물화 <일본 화병의 꽃>에서 일본풍을 시도했다. 꽃병 위에 그려진 일본 무사의 모습에 시선이 쏠리는 그림이다.

르동의 그림이 걸려 있는 오하라미술관은 구라시키에 있는 일본 최초의 근대 서양미술관인데, 구라시키 최고의 부자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1930년에 세운 곳이다. 들어가 보면 유럽의 웬만한 미술관에서도 접할 수 없던 놀라운 수준의 서양 명작을 만날 수 있다. 전부 오하라가 수집한 작품들로, 일본과 유럽이 주고받은 이색적인 자극이 창의적인 기운을 일으키던 시절을 엿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아시아와 유럽의 만남은 역사적으로는 힘의 불균형이 작용했겠지만, 예술적으로는 상당히 매력적인 순간이었다. 살면서 이상스럽게 마음을 끄는 무엇이 있었는지 되짚어보라. 아마도 그것에는 한 가지 핵심뿐 아니라, 무언가 다른 요소가 중첩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순수 정통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 약간 이질적인 취향이 섞이고 이중적인 뉘앙스가 깃들어야 묘하게 예술적 호소력이 생긴다는 뜻이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항구도시 믈라카(말라카)가 한 예가 아닐까. 야심찬 정복자들을 여럿 거친 슬픈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믈라카는 말레이 토착문화와 중국에서 유입된 문화, 그리고 네덜란드의 문화가 혼재되어 관광자원이 어마어마하게 풍성해졌다. 2008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20년 전 홍콩을 방문했을 때 애프터눈 티세트로 입소문이 나 있던 한 호텔에서 경험한 홍콩 속의 영국풍이 생각난다. 삼단으로 접시를 올려놓은 장식적인 틀에 달달한 간식을 담아 차와 함께 곁들이는 영국식 티타임은 홍콩이라는 장소에서 색다른 분위기를 발산했다. 은으로 된 접시와 티스푼, 테이블보와 리넨, 영국도자기에 우려낸 차의 풍미는 몇 겹으로 이국적인 기분에 젖어들게 했다.

요즘 문화적으로 주목받는 것들을 가만히 관찰하면, 음식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그 안에 다국적 스타일과 정서가 뒤범벅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음식은 이념과 상관없이 다국적 문화를 가장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분야이다. 인류가 전쟁을 겪으면서도 적국의 요리법만큼은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자기 식탁에 녹여낸 결과가 음식문화인 셈이다. 맛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타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겹씩 벗겨내는 재미도 음식문화의 일부이다.

한때는 우리 문화의 정수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역사적 논쟁거리는 건드리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흔적들을 이래저래 외면한다면, 결국엔 이야기가 사라진 결벽증 문화 속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만일 르동이 일본 무사를 그리지 않았다면 그림은 얼마나 평범해져 있겠는가. 반쯤은 익숙하고 반쯤은 낯선 것, 내 것인데 남의 것이기도 했던 것, 거부감도 느끼고 호기심도 생기는 것, 어우러지지 않는 듯 어울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야깃거리 풍성한 문화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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