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초소를 소통의 책방으로..53년 역사를 리모델링하다

은정진 2021. 9. 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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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사직공원에서 황학정을 끼고 인왕산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작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초소책방은 원래 철근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판재로 덮여 있던 무미건조한 건물이었다.

초소책방은 인왕산 자락에 있는 건물인 만큼 자연경관을 방해하지 않는, 이른바 '자연과의 공존'에도 신경을 썼다.

초소책방엔 기존 건물의 흔적이 외부 조경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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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건축물 열전 - 인왕산 초소책방
방호 목적으로 세웠던 초소
철거 대신 골조 그대로 살려
외벽은 통유리로 전면 개방
앞은 서울 도심, 뒤는 인왕산
경관 어우러진 책방으로 재탄생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사직공원에서 황학정을 끼고 인왕산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작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은 ‘초소책방’. 외관은 직사각형 형태지만 내부가 훤히 보이는 개방감 때문인지 제법 고즈넉한 분위기를 준다.

원래 이 건물은 1968년 1월 무장공비 김신조의 침투 이후 청와대 방호 목적을 위해 세워진 ‘인왕CP’라는 경찰 초소였다. 50년이 지나 비공개 방호시설이라는 본래 목적을 잃은 이 건물은 철거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인왕산을 전면 개방한 청와대가 건물을 휴식공간으로 활용해보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리모델링이 본격화됐다.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난해 문을 연 초소책방은 시민의 작은 쉼터가 돼주고 있다.

 철골 구조미 그대로 살려

초소책방은 원래 철근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판재로 덮여 있던 무미건조한 건물이었다.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인왕산 경치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지은 지 50년이 넘은 탓에 완전히 부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리모델링 설계를 총괄한 이충기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철거 대신 기존 건물의 구조를 살리는 방향으로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우선 내진 성능이 없는 기존 콘크리트 외부 벽체와 칸막이벽은 철거했다. 건물의 뼈대인 기둥과 보, 슬래브는 탄소섬유로 보강해 내진 성능을 확보했다.

특히 리모델링 과정에서 ‘강구조’를 모두 노출시켰다. 강구조는 기둥, 들보 등 건축용재의 접합 부분이 완전히 단단하게 접합된 구조를 말한다. 철골 노출로 2.3m의 층고가 높아지면서 개방감이 커졌다. 두툼한 콘크리트로 덮여 육중해 보이던 외관 역시 철골 노출로 인해 날씬해진 느낌을 준다.

낮에는 사색의 쉼터로, 밤에는 서울의 야경을 즐기는 명소가 된 초소책방. 이충기 교수 제공


초소책방은 인왕산 자락에 있는 건물인 만큼 자연경관을 방해하지 않는, 이른바 ‘자연과의 공존’에도 신경을 썼다. 개방감은 물론 철골 노출과 어우러져 더욱 가볍게 보이도록 외벽 전체에 대형 유리를 사용했다. 이 교수는 “주변 나무들과 건물 뒤에 있는 바위가 만들어낸 경관이 그대로 실내 공간으로 흐르도록 보이기 위해 유리를 벽으로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주변에 조성돼 있던 콘크리트 인공시설물을 모두 철거하고 훼손됐던 바위와 나무 등도 복원했다. 주변 숲이나 산책로와의 이질감을 줄이고자 건물 전체 데크를 목재로 사용했다.

 기억과 이야기를 담은 공간

초소책방이 지닌 매력은 과거를 간직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름에도 경찰병력이 주둔해 보초를 섰던 곳이라는 걸 남기고자 ‘초소(哨所)’를 붙였다.

초소책방엔 기존 건물의 흔적이 외부 조경으로 활용되고 있다. 입구 쪽엔 철제 출입문이 예전 형태 그대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는 곳엔 기존 건물의 외벽인 시멘트벽돌이 남아 있다. 경찰 건물로 쓰일 당시 사용하던 기름탱크 역시 외부 조경 요소이자 풍경이 되도록 보존했다.

자세히 보면 한국적인 건축미도 엿보인다. 원래 없던 데크 면적을 넓히고자 새 벽체를 기존 벽체보다 건물 안쪽으로 후퇴시킨 뒤 필로티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태양과 비를 가릴 수 있는 처마 공간이 조성됐다. 이 때문에 유리벽을 개방해 데크에 앉아 있으면 마치 한옥의 대청마루 같은 시원한 느낌이 든다. 원래 건물에선 없었던 조망권도 생겼다. 초소책방은 그냥 보면 1층이지만 2개의 층고를 갖춘 건물이었다. 낮은 쪽 옥상 부분을 2층으로 증축해 문화공간으로, 높은 쪽 옥상 부분은 도시경관과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로 바꿨다. 2층에 올라가 책을 읽다 잠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서울 광화문의 도심 경관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초소책방은 지난해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특별상’에 이어 올해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받았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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