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 '기술적 디폴트' 불가피..中경제 시스템 위기 오나
"투자자 최우선" 리스크 완화에 주가 반등
中 소비 심리·실물경제에도 파장 불가피
中정부, 직접 지원보단 충격 최소화 전망
디폴트 위기 속 헝다 주가 장초반 30% 폭등
23일은 헝다가 달러 채권 이자 8350만달러(약 993억원)과 위안화 채권 이자 2억3200만위안(약 425억원) 등 약 1400억원 규모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만기일이다. 헝다는 이 중 위안화 채권 이자는 제때 지급하겠다고 전날 밝혔다. 2025년 9월 만기되는 40억위안 규모의 회사채로, 올해 이자는 5.8%에 해당하는 2억3200만위안 수준이다.
이자 지불 방식을 보면 “이미 장외방식의 협상을 통해 해결됐다”고 적혀있다. 이런 애매한 표현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헝다가 채권 보유 기관과 협상을 통해 부분 지급 시한을 연장하는 등 미봉책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소식에 하루 만에 재개한 홍콩증권거래소에서 헝다그룹의 주가는 이날 장초반 32% 가까이 급등했다. 이는 2009년 상장 이후 하루 기준 최대 상승폭이다. 계열사 주가도 일제히 상승했다. 헝다 주가는 파산 위기로 올해 들어 80% 넘게 하락했었다.
쉬자인 헝다 회장이 밤늦게 회의를 소집해 투자자들의 보호할 것을 지시했다는 소식도 호재로 작용했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헝다그룹은 전날 밤 11시(현지시간) 쉬 회장 주재로 4000여명의 간부 회의를 열었다. 쉬 회장은 이 자리에서 중단된 공사를 재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시하고 “투자자들의 상품 상환을 확실히 하는 것이 전체 그룹이 함께 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며 ‘투자자에 대한 매우 책임 있는 태도’를 강조했다.
그러나 헝다는 이날 지급해야하는 규모가 더 큰 달러 채권 이자에 대한 계획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채권 계약서상으로는 예정된 날로부터 30일 이내까지 상환이 이뤄지지 않아도 공식적으로 채무불이행으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이는 헝다 유동성 위기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해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헝다그룹의 채무는 77억달러(약 9조550억원)에 달하고 2023년에는 108억달러(약 12조7000억원)로 늘어난다. 당장 오는 29일에도 채권 이자 4750만달러(약 560억원)을 또 지급해야 한다.
이와 별도로 헝다는 지난 20일로 예정된 일부 은행의 대출 이자를 갚지 못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헝다는 고비를 겨우겨우 넘기고 있으며 기술적으로는 이미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날 헝다그룹 2대 주주인 화인부동산은 보유하고 있는 헝다의 지분 전량을 매각하는 것을 검토하겠단 뜻을 밝혔다.
헝다 사태가 중국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헝다는 중국의 대표 부동산 민영 기업으로 중국 전역 280여개 도시에서 1300여개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만약 헝다가 채무 불이행을 넘어 파산하게 된다면 건설사, 자재 공급사 등 8000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가 줄도산하고 수십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또한 부동산 건설이 완전히 중단되면 이미 투자금을 낸 분양자들이 집을 받지 못해 사회적 혼란도 초래된다. 이는 소비 심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월가의 저명한 공매도 투자자이자 헤지펀드 키니코스의 짐 채노스 창립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헝다의 디폴트가 세계적 파급은 일으키지 않겠지만 중국 내에서는 경제 모델 이면의 부채 문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리먼 브라더스 사태 보다 큰 위험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에는 헝다그룹 같은 기업이 많다”며 헝다 문제는 주거용 부동산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 모델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은 직간접적으로 중국 GDP의 29%를 차지하는 경제의 주요 성장동력이다.
무엇보다 헝다 사태는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가운데 불거졌다. 중국 경제는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 급격하게 반등했지만 하반기 들어 다시 주춤하는 모습이다. 가뜩이나 대내외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각종 산업 규제로 인해 기업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래리 후 맥쿼리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부동산 하향 사이클이 내년 성장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중국 정부의) 정책 초점이 규제에서 5% 성장을 방어하기 위한 부양 쪽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헝다의 충격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인민은행은 전날 역환매조건부채권(역RP·역레포) 매입을 통해 900억위안의 대규모 유동성을 투입한 데 이어 이날도 1100억위안을 풀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을 다소 진정시키기도 했다.
헝다의 현재 부채는 천문학적인 1조9700억위안(약 35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는데, 중국 정부 입장에서 주요 대형 은행들의 부실 채권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마냥 바라보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하이난항공(HNA) 파산 때 처럼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헝다의 전체 부채 중 해외 투자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달러 채권의 규모는 약 200억 달러(약 23조원)로 전체 헝다의 부채 대비 10% 미만이다. 헝다가 최악의 위기를 맞아도 그 파장이 중국 안에서 머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2일(현지시간) 헝다의 디폴트 우려와 관련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이 직접적으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많지 않다”면서도 “중국의 대형 은행들이 크게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 신용 경로 등을 통해 글로벌 금융 상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신정은 (hao122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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