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맛]④ 바지선에 실어 들어올린 2700톤 구조물.. 서해안복선전철 아치교의 비밀은

허지윤 기자 2021. 9. 2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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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오전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안성천. 비가 내려 하늘은 흐렸지만 안성천 위 뻥뚫린 시야에 회백색의 5개의 아치로 연결된 교량이 선명하게 보였다. 지난 7월 DL이앤씨가 작업을 완료한 국내 최대 규모의 철도 아치교다. 서로 크기가 다른 5개의 아치 구조물로 짜여진 이 교량은 연장 625m, 높이 44m 규모다. 아치교 건설작업아 완료되면서 서해선(홍성~송산) 복선전철 제5공구 전 구간이 연결됐다.

DL이앤씨 서해선 홍성송산 복선전철 아치교

오는 2023년이면 관광객과 화물을 실은 초고속 여객 열차와 화물 열차가 이곳을 달릴 예정이다.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은 총사업비 4조947억원을 투입해 경기 화성 송산~화성시청~향남~평택 안중~충남 아산, 인주~당진, 합덕~예산~홍성을 잇는 총연장 약 90㎞의 복선전철 신설 사업이다. 국가철도공단이 총 10개의 공구로 나눠 발주했다.

현재 총사업 전체 공정률은 약 77%다. 서해안시대의 새로운 대동맥으로, 서해안 지역의 교통혁명이 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청사진이다.

교량 건설은 한 나라와 기업의 기술력을 상징한다. 서해선 복선전철사업의 핵심공정으로 평가되는 제5공구는 세계 특수교량건설 사업에서 그동안 여러 실적을 쌓은 DL이앤씨(옛 대림산업)가 맡았다. DL이앤씨는 터키 차나칼레대교, 브루나이 라파스대교, 여수와 광양을 잇는 이순신대교 등을 세계 곳곳의 굵직굵직한 교량 건설사업을 성공시키며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았다.

이번 서해선 복선전철사업 제5공구는 철도교량의 박람회장으로 불린다. 통상적으로 철도 교량 형태는 단순하다. 5공구는 총 6개 형식(ED교·사판교·곡현 트러스교·PSC BOX교·복합트러스교·아치교)의 다양한 철도교량으로 시공됐다.

◇ 육상에서 조립해 배로 이동… “강풍과의 싸움”

이 날 찾은 충남 아산 영인면 안성천 인근 DL이앤씨의 서해선 복선전철 제5공구 현장사무소의 모니터에는 서로 다른 모양을 한 교량들이 보였다. 그 옆 칠판에 공정 일정 등이 빼곡히 적혀있고,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의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커다란 지도도 한 벽면에 걸려 있었다. ‘안전’을 강조하는 표어들도 사무소 곳곳에 붙어 있었다.

현장사무소에서 차로 약 10분 이동하니 안성천 위로 충남 아산과 경기 평택을 잇는 ‘복합트러스 아치교’가 보였다. 이날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이 교량도 바로 수많은 근로자들이 매서운 바람과 추위와 다투며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바람과 파도가 바다 못지않은 안성천 특성 탓에 교량 설치 주요 공사는 바람이 잦아드는 새벽 시간에 이뤄졌다. 정경충 DL이앤씨 서해선 홍성-송산전철 5공구 현장소장은 “아산만으로 흐르는 안성천은 바다와 육상의 경계지점이라 기상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지난 겨울 강추위에 서해선 복선전철 5공구 공사 현장인 안성천이 얼어붙은 모습. /DL이앤씨

DL이앤씨는 철도교량 시공에 국내 최초로 ‘대선식 일괄가설공법’이란 방법을 썼다. 이는 교량 구조물을 육상에서 미리 조립한 후 배(바지선)를 이용해 시공 위치로 옮겨와 교각(교량의 발·기둥) 위에 설치하는 방법이다.

복합트러스교는 바다와 육상의 경계지점에 조성됐다. 육상에서 상부 거더(girder·건설 구조물을 떠 받치는 보)를 제작해 설치하고, 비대칭 아치교는 육상에서 제작한 대블럭을 배로 운송해 들어올려 설치(육상 제작 대블럭 일괄가설 공법)했다.

이 같은 방식을 택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정 소장은 “육상이 아닌 수상에서 조립 작업을 할 경우 환경 오염은 물론 시공 위험성도 더 커지기 때문”이라며 “육상에서 구조물을 조립·일체화한 다음 바지선으로 옮겨 올리는 방법을 택하면 이런 우려를 낮추면서 시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육상에서 조립한 교량 구조물을 바지선을 이용해 시공 위치로 옮기고 있는 모습. /DL이앤씨

하지만 이도 말처럼 간단한 공법이 아니다. 배로 1000톤이 훌쩍 넘는 무거운 구조물을 이동시키고, 이를 들어올려 아주 좁은 공간 안에 딱 맞춰 넣어야 하는 고도의 작업이다.

김영호 DL이앤씨 부장은 “중량이 1400톤에 달하는 수십미터 길이의 구조물(거더)을 바지선에 싣고 나가 시간당 6m씩 끌어올려, 오차 간격 10cm 이내 설치해야 하는 정밀한 작업”이라면서 “풍량과 조류를 감지하는 계측기 센서를 통해 프로그래밍화해 구조물을 올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조물을 올리는 작업은 새벽 3시~4시에 이뤄졌다”면서 “이곳은 오후가 되면 바람이 항상 불어 불리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해야 이른 아침에 교각과 교각 사이로 밀어 넣을 수 있다”고 했다.

바다나 강 등 수상 교량 건설 현장 엔지니어들은 시시각각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분석하고 이런 변수에 대응하면서 현장을 지휘한다. 정경충 소장은 “파도가 심하게 쳐도 공사 진행이 어렵다”면서 “겨울철에는 야간에 수면이 얼면 공사를 진행할 수 없으니, 얼지 않도록 배를 움직여 공사 현장 컨디션을 관리했다”고 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본 겨울철 안성천 위 교량 공사 현장. 바지선을 움직여 수면이 얼어붙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DL이앤씨

비대칭 아치교에 적용된 건축 공법(육상 제작 대블럭 일괄가설) 과정을 풀어보자면, 크게 교량 하부 공정부터 상부 공정까지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맨먼저 육상에서 제작된 작업대를 하천 위로 운송해 거치한다.

그 다음은 현장타설 말뚝작업이다. 지반을 파낼 때 발생하는 충격으로 공벽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희생강관(강관파이프 말뚝)을 설치해 지반을 굴착하는 것이다. 이어 희생강관 내부에 철근망을 넣고 콘크리트를 비벼 넣는다(콘크리트 타설).

이어 육상에서 제작된 PC(Precast concreter·사전제작 콘크리트)하우스를 각 부분별로 거치하고,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한다.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붓고 한층이 완성될 때 기다리는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콘크리트로 미리 만들어둔 영구 거푸집을 현장에서 조립해 상부구조를 지탱하는 교각을 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량 하부공정이 마무리된다.

그 다음은 교량 상부 공정이다. 상부 아치는 바지선이 접안할 수 있도록 간이부두(물양장)를 조성해 시공작업을 진행한다. 지상에서 제작한 강부재를 바지선에 안착시켜 하천 위로 옮겨 설치 지점으로 이동한 다음, 설치지점에서 스트랜드 잭을 이용해 강부재를 끌어올려 거치한다. 스트랜드 잭은 대형크레인으로도 양중하기 힘든 무거운 중량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특수장비다.

이를 이용해 소아치 2개, 중아치 2개, 이 사이에 들어가는 대아치 하나를 마지막으로 거치한다. 즉, 가장 큰 아치 양쪽으로 1681톤의 아치 2개와 1255톤의 아치 2개를 연결한다는 얘기다. 대아치 길이는 155m, 높이 46.5m, 무게는 2726톤에 달한다.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 공사 현장. /DL이앤씨

◇ 다양한 다리 선보인 ‘철도교량 박람회’

“5공구 현장은 철도교량의 박람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홍민 DL이앤씨 5공구 현장 차장의 말대로 5공구에서는 복합트러스교와 아치교 외에도 ED교, 사판교, 곡현 트러스교, PSC 박스(BOX)교 등 다양한 철도 교량을 볼 수 있다.

서해선 복선전철 철도에는 복합트러스교와 아치교, ED교, 사판교, 곡현 트러스교, PSC 박스(BOX)교 등 다양한 교량이 적용됐다.

우 차장은 “육상 3.1km와 해상 2.8km 등 총 5.9km의 구간을 잇는 철도교량이다보니 경제성과 안전성, 경관미, 각 지역적 상징과 관문성 등까지 두루 고려해 다양한 형식을 적용했다”고 했다. 교량 건설 공법은 다양한데, 현장의 지형, 지반 상태, 교통 여건, 가설 높이, 구조물과 부재의 형태, 공사 규격과 공기(工期), 비용 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방법을 택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선, 국도 39호선을 통과해 아산시를 진입하는 관문 위치에 자리한 교량은 ED교로, 국도 34호선을 통과하는 교량은 이주탑 사판교로 각각 설계됐다. 이 구간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 위에 고속철도가 달리는 철길과 교량이 있는 모습이다. 이주탑 사판교 아래 도로변에는 저층 주택들이 보이는데, 이를고려해 저소음 저진동 콘크리트 교량으로 시공했다.

김영호 부장은 “ED교와 사판교는 국도를 통과하는 교량이라, 도로 차량 운행에 차질이 없도록 도로를 점유하지 않는 게 핵심이기 때문에 거더 지지식 벤트를 활용해 시공했다”고 했다. 거더 지지식은 지반조건이 불안하거나 입체 교차 지점, 지주를 설치하기 곤란한 장소 등에 주로 쓰는 가설 방식이다. 벤트는 중하중을 임시로 지지해주는 부재다.

그는 “교량 상부에서 내려오는 하중을 기둥 사이(경간)에 설치된 거더에서 받아주고, 교각에 설치된 지지구조재(브라켓·bracket)를 통해 하부로 전달하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우 차장은 “교각 쪽에는 상징성과 관문성을 고려한 설계 요소도 발견할 수 있다”며 “ED교 교각은 충무공 이순신의 쌍룡 검을 상징화한 것이고, 이주탑 사판교는 아산시 로고를 반영해 지역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DL이앤씨 서해선 홍성송산 복선전철 사판교

ED교와 이주탑 사판교를 지나 아산천 합류부를 통과하는 구간에 ED교와 사판교와 다른 모양이 다른 노란색 교량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게 ‘곡현(曲弦)트러스교’다. 곡현 트러스(truss)는 직선이 아닌 곡선 형태의 뼈대 구조를 말한다. 합천 합류부와 어울리는 교량이 될 수 있도록 안전성과 개방감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둔 설계로, 합류부 삼각주에 교각을 설치했다.

농경지를 통과하는 긴 구간에는 제법 익숙한 교량이 이어진다. 이는 40미터 경간장의 PSC(프리스트레스 콘크리트)BOX(박스)교로 분류된다. 가장 보편화된 철도 교량으로 ED교, 사판교, 곡현 트러스교, 아치교 사이 사이를 잇는 이음새 교량이라고 할 수 있다.

DL이앤씨는 개선형 이동식 비계(MSS· Movable Scaffolding System) 공법으로 시공했다. 정 소장은 “농경지라 고속철도 운행 시 지반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한 데다, 가장 많은 구간을 차지해 시공성과 경제성이 우수한 PSC 박스교가 적합했다”면서 “MSS 공법은 교량의 상부구조물(세그먼트)을 시공할 때 기계화된 거푸집이 부착된 특수 장비(이동식 비계)를 사용해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해 시공을 진행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 세계를 무대로 특수 교량 경쟁력 키웠다

DL이앤씨는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특수 교량 건설 사업을 수주하며 역사를 써왔다. DL이앤씨가 만든 교량엔 최초, 최장 등의 수식어가 잇따라 따라왔다. 국내 최초 해상 콘크리트 사장교 ‘거북선대교’, 국내 최초 곡선 사장교 ‘세풍대교’, 국내 최초 곡선경사주탑 사장교 ‘한두리교’, 브루나이 최초 사장교, 국내 최장 현수교 ‘이순신대교’, 국내 최초 단경간 현수교 ‘팔영대교’, 세계 최장 현수교 ‘터키 차나칼레 대교’ 등이 그 예다.

DL이앤씨(옛 대림산업)이 건설해 2017년 10월 개통한 브루나이 최초의 사장교 순가이 브루나이 대교 전경.

이 회사는 현수교 가설기술을 자립화하기 위해 현수교의 핵심요소기술인 주케이블 가설기술, 보강형 가설기술을 개발하고 지식재산권을 확보했다. 현수교는 주탑과 주탑을 케이블로 연결하고 케이블에서 수직으로 늘어뜨린 강선에 상판을 매다는 방식의 교량이다. 현존하는 교량 중 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인 경간장을 가장 길게 확보할 수 있어 해상 특수교량 중 가장 효율적인 교량이지만, 바다 위 공중에서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지난 7월 세계 최장 현수교 '터키 차나칼레 대교' 상판 설치 작업 현장 모습. DL이앤씨와 SK건설은 2017년 1월 터키 업체 2곳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 사업을 수주했다. 차나칼레 프로젝트는 세계 최장인 3.6㎞의 현수교와 85㎞ 길이의 연결도로를 건설한 후 운영하고 터키정부에 이관하는 BOT(건설·운영·양도)방식의 민관협력사업이다. 차나칼레 해협을 사이에 둔 터키 차나칼레주 랍세키와 겔리볼루 지역을 연결한다. 총 사업비는 약 3조5000억원이다.

서해선 복선전철 제5공구 현장에 다양한 교량을 선보이게 된 것도 여러 특수 교량 사업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2011년 서해선 복선전철 제5공구 사업 턴키공사(설계시공 일괄 입찰) 입찰 당시 대림산업(현 DL이앤씨) 컨소시엄은 종합평가 결과에서 99.9점을 획득했다. 김영호 부장은 “특수교량 최강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기술력을 다 넣어보겠다는 의지와 자부심도 깔려 있다”고 했다.

또 ‘서해선 홍성-송산 5공구’를 포함해 ‘도담-영천 전철 6공구’, ‘포승-평택 철도 1공구’ 등 철도교에 특화된 실적을 보유하고 있는데, 특히 국가철도공단 사업에서 10년간 중대재해없이 현장을 운영하고 있는 점도 사업 수주에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서해선 복선전철사업 제5공구의 경우 공사량이 가장 많은 피크 시점에 투입된 1일 작업근로자만 500명에 달했다. 정경충 소장은 “수많은 근로자와 대형 중장비가 투입되고, 기술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수상 공사 등 교량 공사를 중대재해와 대형사고 한 건 없이 안전하게 마무리했다는 점도 현장 관리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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