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 그녀들의 축구가 진정 빛났던 이유

이준목 입력 2021. 9. 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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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골 때리는 그녀들>

[이준목 기자]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 SBS
 
여자축구의 매력을 보여준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아래 골때녀)의 최종 우승팀이 가려졌다. 22일 방송된 <골때녀> 13회에는 2021 'SBS 사장배 여자축구 미니리그' FC 불나방과 FC 국대패밀리의 결승전 결과와 정규리그 시상식이 펼쳐졌다.

지난주 방송에서 불나방은 서동주의 선제골로 먼저 1-0의 리드를 잡았다. 불나방은 국대패밀리의 약점이 골키퍼 양은지의 불안정한 공처리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강력한 전방압박을 시도했다. 국대패밀리 김병지 감독은 양은지에게 부정확한 골킥보다 가까이 있는 아군에게 공을 던져서 연결할 것을 지시했으나, 불나방 이천수 감독은 첫 패스만 나가면 선수들에게 곧바로 달려들어 압박하게 하면서 공은 국대패밀리 진영에서 맴돌다가 번번이 차단당했다. 패스전개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 국대패밀리는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 못하고 전반을 마감했다.

하프타임에 김병지는 준비했던 플레이가 하나도 통하지 않자 당황한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전반에 패스 실수가 잦았던 심하은에게 "우리 팀에서 제일 킥을 잘차는 선수인데 내가 기대했던 플레이가 안 나오고 있다"라며 독려했다. 심하은이 중압감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동료들은 물론, 남편이자 상대팀 감독인 이천수도 당황했다. 심하은은 인터뷰에서 "감독님의 기대에 못 미치니까. 멘탈싸움에서 제가 진 것"이라며 자책했다.

전미라는 "선수가 아닌 친구들은 결승전이라는 중압감을 처음 느껴보니까. 경기가 안 풀리면 자책하고 자기한테 빠져드는 게 제 눈에 보였다. 그럴 때일수록 '같이 하자', '눈맞추자', '할 수 있다' 격려하면서 신경을 쓰려고 했다"고 밝혔다. 김병지는 "눈물의 의미는 본인도 잘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감독으로서 잘했으면해서 한 말이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불나방 vs. 국대패밀리의 명승부

불나방에게도 불안요소가 있었다. 평균연령 최고령팀(47.3세)이던 불나방은 박선영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선수들이 잔부상을 안고 있었고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큰 상황이었다. 에이스인 박선영은 다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뛸 수 있다"며 투지를 보였다.

후반 들어 만회골을 넣기 위한 국대패밀리의 공세가 시작되면서 경기 흐름이 바뀌었다. 국대패밀리는 전담키커 심하은을 중심으로 세트피스에서 연이어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체력이 떨어진 불나방을 압박했다.

불나방 골키퍼 안혜경의 골킥을 박승희가 차단하며 역습에 나선 국대패밀리는 한채아의 스루패스에 이어 명서현이 신효범을 제치고 골키퍼와 1대 1 찬스를 맞이했다. 명서현의 첫 슈팅을 안혜경이 선방해냈으나 쇄도한 한채아가 흘러나온 공을 다시 밀어넣으며 동점골을 뽑아냈다. 국대패밀리는 모두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 SBS
 
동점골 이후 국대패밀리가 일방적인 공세로 경기흐름을 주도했다. 불나방은 에이스인 박선영을 전방으로 올리지 못할 만큼 수비에 급급했다. 불나방은 종료 5분을 남겨놓고 작전타임으로 경기흐름을 끊고 재정비에 나섰다.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던 경기 종료 2분을 남겨놓고 드디어 결승골이 터졌다. 심하은이 국대패밀리 진영 좌측에서 시도한 킥인을 서동주가 차단하며 다시 심하은에게 굴러왔으나 클리어링 미스로 서동주의 발에 맞고 굴절되며 국대패밀리 골문으로 향했다. 골키퍼 양은지가 그만 공을 뒤로 빠뜨리는 뼈아픈 실수를 저지르며 그대로 골로 연결됐다. 원래는 양은지가 발로 걷어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페널티라인 밖에서 공을 잡으려다가 아차싶어 순간적으로 우물쭈물거리다 공을 처리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 알까기로 이어졌다.

국대패밀리는 부상중인 전미라까지 투입하며 만회골을 넣기 위해 파상공세에 나섰다. 전미라의 기습적인 회심의 슈팅은 안혜경의 선방에 이어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다. 다급해진 국대패밀리는 골키퍼 양은지까지 공격에 가담시키며 동점골을 노렸지만 양은지의 마지막 슈팅을 박선영이 걷어내 위기를 넘기면서 종료휘슬이 불렸다.

이로써 불나방은 지난 설특집 파일럿에 이어 정규리그에서 우승하며 2연패에 성공했다. 디펜딩챔피언의 자존심을 지킨 불나방은 감독 이천수를 헹가래치며 뜨겁게 환호했다.

여성 스포츠예능 시즌제 가능성 보여줘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 SBS
 
모든 일정이 끝나고 대회에 참가한 6개팀이 전원 함께하는 시상식이 열렸다. 각 팀 선수들은 물론이고 감독들까지 동참하는 흥겨운 단체 댄스 세리머니가 펼쳐졌다. 근엄함을 내려놓은 황선홍, 이천수, 김병지, 최진철, 최용수, 이영표 등 한국축구의 전설들은 난처해하면서도 나름 최선을 다하는 수줍은 아재 댄스로 웃음을 자아냈다.

시상식에서 3위는 재한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FC 월드클라쓰(감독 최진철)가 차지했고, 준우승 국대패밀리-우승 불나방 순으로 시상이 진행됐다. 우승팀 불나방에게는 메달외에도 우승트로피와 상금 1000만 원이 수여되어 다른 팀들의 부러움을 샀다. 불나방 선수들과 이천수 감독은 화려한 단체 세리머니로 우승의 기쁨을 자축했다.

대회 최다득점은 불나방 서동주와 국대패밀리 한채아가 나란히 3골로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정규리그 일정을 모두 마친 <골때녀>는 다음주 6개팀 중 에이스급 선수들만을 선발하여 치러지는 블루팀(이천수, 이영표, 최진철)대 레드팀(황선홍, 김병지, 최용수)의 올스타전을 예고했다.

<골때녀>는 여성 연예인-스포츠스타-셀럽들로 구성된 팀들에, 2002 한일월드컵 축구전설들이 감독을 맡아, 국내 예능 최초 '여자축구 미니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을 표방했다. <불타는 청춘>에서 여성 멤버들과 제작진의 축구대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 기획은 올해 2월 설 연휴특집 파일럿으로 이어지며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6월부터 정규편성까지 성공했다. 실제로 <골때녀>의 모티브가 된 박선영과 불청의 여성멤버들이 모여서 결성된 팀이 불나방이고, <불청>의 제작진들도 대거 합류했다.

<골때녀>는 기존 남성 위주의 프로그램에서는 보기 힘든 '여성들의 축구 도전기'를 다룬 스포츠 예능이라는 희소성, 출연자들이 서투르고 미숙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축구에 몰입하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얻었다. 사실 출연자들이 전문 선수가 아니고 축구 초보들이 대다수이다보니 경기력의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출연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인식보다는 진짜 대회에 임하는 각오로 시종일관 치열함과 승부욕을 보여줬다. 이는 연출이나 극본으로는 만들 수 없는 진짜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예측불허의 긴장감과 반전을 선사하는 원동력으로 이어졌다.

결과보다 과정의 가치를 더 중시한 감성적인 연출도 호평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단지 누가 이기고 졌냐를 부각하기보다는 잘하든 못하든 최선을 다하는 승부욕과 열정에 초점을 맞췄다. 참가팀들은 비록 경기에서는 치열하게 맞붙지만 끝나고 나서는 결과를 인정하고 상대팀을 축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패배에도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페어플레이와 스포츠맨십의 진정한 가치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은 출연자들의 부상과 안전관리에 있었다. <골때녀>는 방영 기간 중 일부 출연자들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으며 촬영이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다. 또한 신체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격렬한 축구의 특성상, 경기가 거듭되면서 남현희, 전미라, 한혜진 등 많은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며 아찔한 장면들이 속출했다.

팀당 가용인원이 6명만으로 5대 5 축구를 하다보니 한두 명만 부상자가 발생해도 팀전력 유지가 어려워진다. 차후에는 팀이나 경기수를 늘리는 것보다는 예비멤버를 확충하고 신체접촉에 대한 룰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이 출연자 보호를 위하여 더 필요해보인다.

<골때녀>는 방송내내 동시간대 시청률와 화제성 1위를 놓치지 않았고, 결승전과 시상식이 방송된 13회도 8.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날 시상을 위한 참석한 박정훈 SBS 사장은 이 자리에서 <골때녀> 시즌 2의 확정을 공식 발표하며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골때녀>의 기대이상의 성공은, 여성 스포츠예능으로서는 보기드문 시즌제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개척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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