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호주에 '원자력추진잠수함 기술이전'..국제정치의 현실
지난 15일(미 동부시간) 군사·안보 협력과 정보 공유, 인공지능과 사이버 기술,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아우르는 안보파트너십 ‘오커스(AUKUS)’를 전격 발표했다. 핵심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고농축 우라늄을 원료로 쓰는 잠수함 추진 원자로 기술을 호주에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과 비대칭 전력의 위협이 다종화, 고도화되는 가운데 한국도 대통령 공약 사항으로 원자력추진잠수함 사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이번에 미국의 결정은 한국에게는 뼈아픈 측면이 있다. 이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용 핵연료를 합법적으로 획득하려면 미국과 협의를 통해 국제사회, 사실상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모든 핵연료는 미국이 주도하는 핵공급국그룹(NSG·Nuclear Suppliers Group)에 의해 통제한다. 잠수함용 핵연료를 미국에서 수입하든 제3국에서 수입하든 미국의 승인 없이 합법적으로 핵연료를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호주에 대한 미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 기술이전 결정은 한국이 미국에 대해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미국, 반중 노선의 선봉에선 호주에 원자력추진잠수함 전격 기술이전
호주는 최근 적극적으로 인도-태평양전략에 가담하고 있고 쿼드(QUAD) 국가로서 연합훈련을 포함해서 대중국 다자협력에 적극 나선 데 이어 지난 15일(현지시간)엔 미국·영국·호주 3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군사·안보·외교 협력체인 'AUKUS'를 발족했고, 첫 협력 사업으로 호주는 향후 18개월간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받아 8척을 자체 건조하기로 했다.
호주의 스콧 모리슨 총리는 2018년 8월 취임 직후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 최대 통신장비회사 화웨이의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 구매를 금지했다.
지난해 4월 모리슨 총리는 중국이 코로나19 사태에 책임이 있다며 국제 조사를 촉구한 후 호주 국방장관은 유사시 대만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어 올 4월 21일 머리스 페인 호주 외교장관은 성명을 통해 “빅토리아 주정부가 각각 2018년, 2019년 중국과 맺은 협약 두 건을 파기한다. 중국의 경제영토 확장 사업 겸 21세기 실크로드로 불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전격 탈퇴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호주가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자 중국은 지난해 11월 호주의 대중국 최대 수출품인 철광석을 제외한 호주산 소고기, 와인 등에 최대 200%의 관세폭탄을 부과하는 무역 보복에 나섰다. 호주의 지난해 대중국 수출은 전체 수출의 35.3%나 됐지만 호주는 미국 중심의 중국 포위 동맹인 쿼드와 영미권 정보 동맹인 파이브아이스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반길주 전임연구원은 "미국의 핵심이익은 중국의 패권도전을 저지하는 것이고 이는 동맹국, 우방국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입장에서 호주의 역할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자리하며 원자력추진잠수함 기술이전 결정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라고 평가했다.
호주는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을 받으면서까지 코로나19의 원인 규명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중견국이자 미국의 핵심동맹국으로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형 핵잠수함, 실천 없는 빈껍데기
2017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에 합의했다는 추측이 돌면서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실제로 도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지난 2020년 10월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미국에 잠수함용 핵연료를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고,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핵 비확산 원칙에 따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잠수함용 핵연료를 그 어느 나라에도 판매 또는 제공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였다.
반 전임연구원은 "한국은 원자력추진잠수함 필요성의 논리도 약하지만 해당전력의 정책화를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헤징전략 혹은 ‘안미경중(安美經中)’식 자세로 한미동맹이 소원해지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며 "인도·태평양전략 동참에 주저하고 있으며 미국이 한국을 위해 해주어야 할 것만 강조하고 반대로 한국이 미국에 해줄 것은 별로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미·중의 패권 경쟁은 단순한 신냉전이 아니라 국가 간 사활이 걸린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의 그때그때 사안에따라 이익을 취하는 자세는 양측에 모두 외면받거나 공격받는 희생양의 타깃이 될 우려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어 반 전임연구원은 "현실주의 국제정치에서 일방적 수혜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주는 게 있어야 받는 게 있다. 동맹으로서의 의무를 함께하고 미국에 이익이 돼야 기술이전이든 확장억제든 가능하다"라며 "한국이 동맹국 미국의 절실한 과제인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유지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으면서 원자력추진잠수함 기술협력만 요구하는 것은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외면한 당연한 결과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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