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영웅 없는 혁명' mRNA 백신의 길고 지루한 역사

김우재 보통과학자 입력 2021. 9.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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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 과학자이자 현재 바이오엔테크 부사장인 카리코의 연구와 발견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는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개발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건 과학계에서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카리코도 인정하듯, 그의 연구만으로는 현재 mRNA 백신의 성공은 불가능했다. mRNA 백신개발 성공의 이면에는, 이를 위해 30년 이상 연구했던 수백명의 과학자들의 노력이 녹아 있다. 물론 우리는 그들 모두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다. 얼마전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mRNA 백신개발의 역사를 간략하게 다룬 에세이를 출판했다. 이 에세이를 통해 mRNA 백신개발의 숨겨진 역사와, 카리코의 발견이 그 속에서 지니는 의미, 현대과학, 특히 의생명산업과 연계된 의생명과학이 보여주는 특징에 대해 살펴본다. 

mRNA 백신의 개발사┃노벨상은 현대과학의 협업체계를 반영할 수 없다

1987년 바이러스학자이자 면역학 전문가인 로버트 멀론 박사는 mRNA 백신의 시작을 알리는 실험을 수행한다. 몇 방울의 지질과 mRNA를 섞은 다음 이를 세포에 뿌린 것이다. 지질과 섞인 mRNA는 반딫불이의 꼬리에서 빛을 내는 효소인 루시퍼레이즈(생물체가 빛을 내는데 관여하는 효소)가 코딩되어 있었다. 멀론 박사가 뿌린 혼합물 덕분에 'NIH 3T3'라고 불리는 생쥐 유래 세포주는 루시퍼레이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멀론은 자신의 연구노트에 만약 세포가 외부에서 mRNA를 받아들여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mRNA를 약으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썼다. 개구리의 알 등에 mRNA를 주사기로 주입해서 단백질을 생산하는 실험은 멀론의 발견 이전에도 많은 과학자들이 자주 애용하던 실험법이다. 하지만, 멀론이 처음으로 지질과 mRNA의 혼합물을 이용해 mRNA를 세포내로 주입시키는 아이디어를 증명했다. 물론 멀론 박사의 실험에서 mRNA 백신의 아이디어가 바로 등장한건 아니었다. 하지만 멀론의 실험이 2021년 수백만명의 생명을 살리고 제약사에겐 100억달러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게 만든, mRNA 백신의 시작을 알린건 사실이다.

mRNA 백신의 개발사는 화학적으로 안정적인 mRNA의 개발 그리고 안정적으로 이를 세포내로 전달할 수 있는 지질전달체의 개발로 요약될 수 있다. 네이처 제공

멀론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mRNA 백신개발의 선구자인데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불평했다. 하지만 mRNA 백신 개발의 역사처럼 수많은 이들의 발견이 얽히고 섥혀 있는 분야도 찾기 힘들다. 즉, mRNA 백신의 성공은 수백명의 과학자들의 공동작품인 셈이며, 그들 중에서 몇 명의 과학자를 뽑아 공로자로 만든다는건 결코 쉬운 일도, 합당한 과학적 업적에 대한 평가방식도 아니라는 뜻이다. 카리코의 연구결과, 즉 우리 몸 속에 mRNA를 주입했을때 일어나는 면역반응을 피할 수 있는 원리의 개발은 분명 mRNA 백신개발사의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만약 카리코와 함께 mRNA와 면역반응에 대해 연구하던 전세계 과학자 동료들이 없었더라면, 혹은 이후 mRNA를 세포내로 효율적으로 전달할 지질전달체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mRNA 백신의 성공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네이처에서 mRNA 백신의 개발사를 자세히 소개한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겸 저술가 엘리 돌진은 이렇게 말했다.

“mRNA 백신의 이야기는 많은 과학적 발견이 엄청난 혁신이 되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조명한다. 수십년 동안 계속되는 실패의 막다른 길, 잠재적 이익을 둘러싼 갈등과 싸움,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보이는 관대함과 호기심, 그리고 성공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회의주의와 의심, 이 개발과정에 기여했던 애리조나대의 발생학자 폴 크리그는 도대체 무엇이 유용할지 알 수 없는 아주 길고 긴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30년간 수백명의 과학자가 현재 화이자와 모더나의 이름으로 판매중인 mRNA 백신의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이들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처럼 몇몇 과학자들의 이름으로 mRNA 백신을 기억하려 할 것이다. 노벨상은 카리코를 포함한 몇 명의 과학자에게 주어지게 될 것이고, 언론은 이들을 조명하며 다른 수백명의 과학자들을 역사에서 지울 것이다. 하지만 현대과학, 특히 생물학은 이제 한 두명의 결정적 실험과 아이디어가 위대한 발견을 이끄는 분야가 아니다. 생물학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생물학자들은 엄청나게 복잡한 생명현상을 파헤쳐야 하며, 이를 위해 협업은 필수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mRNA 백신의 개발사는 단 3명에게 노벨상을 수상하는 낡은 노벨상 수상위원회의 기준이 얼마나 심각하게 과학자의 업적과 기여를 가리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mRNA 백신의 발견사┃ 혁명은 점진적일 수 있다

mRNA를 세포밖에서 생산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한 폴 크리그와 더글라스 멜튼. 네이처 제공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특징으로 ‘단절’을 강조했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누적되면, 과학자사회는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개종하듯 옮겨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쿤이 분석한 과학은 물리학과 화학의 일부였다. 그리고 쿤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철학 분야에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됐다. 덕분에 과학에 대한 담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쿤의 이론이 획일적으로 모든 과학에 적용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생물학은 물리학이 아니며, 과학의 발견사가 모두 쿤의 이론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특히 생물학의 역사엔 쿤의 이론으로는 설명조차 되지 않는 수많은 반례들이 존재한다. 혁명을 강조하기 위해 쿤이 단절을 선택한건 현명한 일이었지만, 생물학사는 쿤의 무모한 단순화를 부정하는 가장 강력한 반례로 존재한다. 과학사에서 혁명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과학의 발견사야말로, 마치 생명의 진화적 역사와 같다. 진화를 모두 설명하는 단 하나의 이론은 없다. 진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듯, 과학의 혁명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질과 mRNA를 섞어 세포에 뿌린 멀론 박사의 실험도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게 아니다. 이미 1960년대부터 과학자들은 리포솜이라 불리는 지질과 핵산을 혼합해 mRNA를 세포내로 주입하는 실험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mRNA를 주입하는 실험을 통해 세포내에서 일어나는 분자적 과정을 이해하려 했을 뿐, 이를 의학적으로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충분한 양의 mRNA를 확보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4년 이런 상황이 뒤바뀐다. 폴 크리그와 더글라스 멜튼을 비롯한 동료들은 바이러스의 RNA 합성효소를 분리해서 인공적으로 원하는 mRNA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를 개구리알에 주사해 원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걸 밝혔다.

하지만 크리그와 멜튼은 그들의 발견을 주로 기초연구를 위해 사용했다. 멜튼이 1987년 mRNA를 이용해 특정 단백질의 생성을 방해할 수 있다는걸 알게 된 후, 회사를 설립해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 백신개발은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그건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RNA를 연구해본 과학자들은 모두 그 이유를 안다. RNA는 매우 불안정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RNA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혹시라도 존재할 지 모르는 RNA 분해효소로부터 실험용 RNA를 보호하기 위해 손에 장갑을 몇겹씩 끼고, 입에는 마스크를 한 채로 실험을 수행한다.

RNA는 극도로 불안정한 물질이다. 세포 밖으로 RNA가 나오는 순간, RNA는 곧 분해되어 사라진다. 세포 내에서도 RNA는 여러 단백질의 도움을 받아야만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mRNA를 세포 외부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지만, 이 두 과학자는 그들의 발견을 바이오기업인 프로메가(Promega)에 양도했고, 이로 인해 많은 연구자들은 RNA 합성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크리그와 멜튼이 받은건 약간의 로열티와 고가의 샴페인 한 병 뿐이었다.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으로 개발된 화이자·모더나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참고자료

-Dolgin, E. (2021). The tangled history of mRNA vaccines. Nature, 597(7876), 318-324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김우재 보통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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