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전 온다던 찬핵론자들이 말하지 않은 것들

2021. 9. 2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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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원전이 많으면 '대정전' 막을 수 있을까?

[박은수 <함께사는길> 기자(ecoactions@kfem.or.kr)]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력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원자력계의 주장은 이번 여름에도 등장했다. 원자력계 교수들과 국민의힘, 보수언론들은 7월 내내 연일 전력 수급 비상, 전력 대란, 블랙아웃, 대정전 등을 쏟아내며 이게 다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고 공격했다. 심지어 절전 정책도 공격 대상이었다. 적정 실내온도(여름철 26도) 준수와 불필요한 전기 사용 자제 등에 동참해 달라는 정부의 발표 또한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의 주장은 빗나갔다. 폭염에 전력소비가 급증했지만 전력 부족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대정전도 발생하지 않았다.

최대전력 공급하고도 9598MW 남아

이번 여름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한 때는 7월 27일 오후 6시였다. 이때 최대전력수급은 9만1141MW로 최근 6년(2016~2021)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날 정비 등으로 가동이 중지된 발전설비를 제외하고도 전력 공급이 가능한 발전설비용량은 총 10만739MW로 최대전력을 공급하고도 9598MW의 전력이 예비력으로 남았다. 한빛4호기 9기 규모의 용량이다. 

산업자원통상부는 8월 둘째 주에 이를 넘어선 최대전력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제 발생한 전력수요는 6만8470~8만6355MW에 머물렀다. 이 기간 남은 공급예비력은 1만MW가 넘어섰고 8월 14일 공급예비력은 2만7776MW나 됐다. 가동 가능한 발전설비의 40% 이상이 예비전력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번 여름(7월 1~8월 18일) 공급예비전력이 1만MW 이상 남은 날은 49일 중 41일이나 됐다.

그도 그럴 것이 2021년 7월 기준 국내에 건설된 발전설비는 석탄화력발전소 3만8291MW(총 75기), 핵발전소 2만3250MW(총 24기), LNG 4만1170MW(총 255기)를 비롯해 태양광발전 1만6631MW, 풍력발전 1692MW 등 총 13만1330MW나 된다. 탈원전 정책을 선언하기 전인 2016년(총 10만180MW)보다 발전설비용량이 3만MW 이상 증가했다. 최대전력 발생 시 공급예비력도 2016년에 비해 2000MW나 더 많았다.

▲ 영광한빛발전소. ⓒ함께사는길(이성수)

국민 안전보다 원전 가동이 먼저?

7월 한 달간 총 24기 원전 중 10기의 원전이 가동을 중지했다. 고리3호기와 4호기, 한빛4호기와 5호기, 월성3호기, 신월성1호기, 한울2호기와 3호기, 4호기 등 9기는 계획된 예방정비로 인해 가동을 중지했다. 이중 월성3호기는 7월 23일, 신월성1호기는 7월 18일, 한울2호기는 7월 30일, 한울3호기는 8월 19일에 발전을 재개했다.

계획예방정비는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진행된다. 보통 핵연료 교체 주기에 따라 진행되는데 이 기간 동안 사업자인 한수원은 핵연료를 교체하고 설비를 정비하는 동시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정기검사를 진행, 안전성을 확인한 후 재가동을 승인하도록 되어 있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원전의 정비 기간이 길어졌다는 원자력계의 주장에 대해 이광훈 한국수력원자력 발전처장은 "올 여름에 원전이 중단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다른 해와 비슷하게 정비하고 있다. 24개 원전을 가동하다 보니 정비하는 원전도 많아 보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원안위 역시 "원자력발전소는 만에 하나라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지니고 있으므로 독립적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정비 시마다 재가동 승인 전에 인허가 난 상태를 만족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서 "정기검사 기간은 해당 시기에 안전 관련 현안 발생 시, 동 사안이 해소될 때까지 즉, 원전 안전성이 확인된 이후 완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빛4호기와 5호기의 정비 기간이 길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 5월 18일부터 예방정비에 들어간 한빛4호기는 예방정비기간 중 격납건물 철판부식이 광범위하게 확인되었고 철판 부식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수백 개의 크고 작은 공극이 발견됐다. 이듬해에는 증기발생기 안에 이물질까지 발견됐다. 현재 보수 작업과 함께 구조건전성평가가 진행 중에 있다. 한빛5호기는 2020년 4월 10일 계획예방정비 후 같은 해 10월 6일 발전을 재개했으나 발전을 재개한 지 20일 만에 원자로가 정지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계획예방정비 중 보수한 원자로 헤드 관통부에서 규격에 맞지 않은 재질로 잘못 용접한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특별점검 중이다.

사고 및 고장으로 인해 정지된 원전도 있다. 고리3호기는 계획예방정비 전인 7월 12일 증기발생기 밸브 고장으로 원자로가 정지됐고 신고리4호기는 지난 5월 29일 화재가 발생해 7월 20일까지 발전을 중단하기도 했다. 특히 신고리4호기가 불시 정지되면서 순간 주파수가 59.79Hz까지 하락했다. 2011년 9월 15일 전국적으로 발생한 정전 때 주파수는 59.4Hz로 자칫 정전이 재연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무소속 양이원영 의원은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서라도 원전 안전가동과 철저한 예방정비가 중요한데, 탈원전 정책 비판한다면서 무조건 원전을 가동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한낮 전력피크 잡은 태양광

일반적으로 한낮 무더위 때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한다. 하지만 이번 여름철 최대전력을 기록한 시간대는 대부분 오후 5시 이후다. 7월 3일과 7일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오후 5시 이후 전력 사용량이 가장 높았다. 과거(2010~2016년) 여름철 최대전력시간대는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였지만 2017년부터 그 양상이 달라졌다. 한낮 전력피크가 사라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태양광 발전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설치된 태양광 발전설비는 2012년 690MW에서 2015년 2538MW, 2021년 8월 현재 1만6685MW로 10년 사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전력거래소에 계측되는 태양광 발전은 전력시장에 참여하는 5.1GW뿐이다. 한국전력과 직거래하는 태양광발전 11.5GW는 계측되지 않는다. 또한 미니태양광, 옥상태양광 등 자가소비를 목적으로 설치한 태양광 발전설비도 전력수급에 반영되지 않는데 전력거래소는 3.7GW로 추정하고 있다. 한낮 태양광 발전이 생산한 전력량은 상당하다. 산업자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주말 제외) 전력시장에 참여한 태양광발전의 시간대별 이용률은 12시 52%, 13시 54%, 14시 52%, 15시 48%, 16시 40%에 달했다. 전력거래소에 집계된 태양광 발전 설비 5.1GW가 오후 2~3시에 생산한 전력은 2433MW로 계측됐다. 전력시장 외 한전PPA·자가용 태양광발전까지 포함할 경우 오후 2~3시의 태양광발전량은 1만118MW나 된다.

정부는 전력시장에 집계된 7월 한낮(오후 1~3시) 전력수요는 83479MW였지만 실제 이 시간에 발생한 전력수요는 9만1164MW이며 이중 11.1%를 태양광 발전량이 해결했다고 분석했다. 즉 통계에 잡히지 않은 태양광 발전의 전력생산이 한낮에 크게 늘어나면서 당시 전력수요를 상당 부분 상쇄시켰고 이후 다시 전력생산이 줄어들면서 오후 5시에 가장 많은 전력수요가 발생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 여름 전력 피크시간에 태양광발전이 블랙아웃을 막았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원전이야말로 대정전 가능성 높여 

원전이 많으면 대정전을 막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오히려 원전이 전력망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은다. 전력 수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필요하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전력공급이 부족해지거나 반대로 예상보다 수요가 줄거나 전력이 과잉 공급될 경우 전력망에 악영향을 줘 최악의 경우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항상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중요한데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전원의 유연성이다. 원전은 가동 및 중단에 긴 시간이 걸리는 대표적인 경직성 전원이다. 또한 원전은 용량이 1GW 이상 대형 발전으로 자칫 1기라도 불시에 중지될 경우 적지 않은 전력이 전력망에서 빠져 전력수급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특히나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전원의 유연성 확보는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한다. 재생에너지의 공급이 많은 시간대에는 이에 맞춰 다른 전원의 전력 생산을 감축하고, 반대인 상황에서는 전력생산을 높여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원전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이러한 이유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원전 2기를 조기폐쇄하기로 했고 영국 역시 지난해 재생에너지의 기록적 증가와 코로나19 사태가 겹쳐지며 순수요가 최저 7GW 까지 하락하자 사이즈웰원전(1.2GW)에 대해 50% 출력감발 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6.5%에 불과한 국내도 지난해부터 최대원전인 신고리 3, 4호기를 장기연휴마다 20% 출력 감발"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증가로 2030년대에는 영국처럼 장기간 출력 감발이 전망되며 신규 원전 건설은 물론 가동 중 원전도 수익보장이 불가"하다고 석 교수는 지적했다.

탈원전은 생명과 안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

탈원전을 폐기하라는 원자력계와 달리 시민사회는 탈원전에 더욱 속도를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8월 19일 교계 시민단체들은 탈핵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촉구하는 '탈핵 비상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치권과 핵산업계가 핵 산업의 부흥을 위해 탈핵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규탄하는 한편 2017년 6월 탈핵을 선언하고도 사실상 탈핵을 이룰만한 어떤 법 제정도 이루지 못한 정부에게 탈원전 의지가 있는지 물었다.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확고한 사회적 합의"라며 탈원전 정책을 선언했다. 어떤 이해관계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할 수 없다는 의지를 흔들림 없이 보여줘야 할 때다.


[박은수 <함께사는길> 기자(ecoactions@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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