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산 축구' 비아냥에도 카타르 팀은 달린다

배진경 2021. 9. 2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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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의 안과 밖] 월드컵 본선까지 남은 시간은 1년. 개최국 카타르는 조별 리그를 통과해 남아공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돈으로 산 축제라는 비아냥거림을 딛고, 산체스의 팀은 경쟁력을 키운다.
2019년 열린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후 산체스 감독이 팀원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EPA

축구에 관한 한 카타르를 떠올릴 때면 반복 재생되는 어떤 말이 있다.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니?”

오래된 드라마 〈가을동화〉에 나오는 대사다. 사랑도 돈으로 사겠다는 마당에, 그깟 공놀이쯤이야.

카타르로 말할 것 같으면 불모의 사막에 빌딩을 올리고 공항도 짓고 지하철도 연결하고 인공호수까지 만든 부자 나라다. 2021년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카타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만5062달러로 세계 6위를 자랑한다. 10만 달러가 넘던 시절에는 1위에 오른 적도 있다. 국토 크기는 경기도와 비슷하고 인구는 290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니 돈이 넘쳐난다. 자국민에 대한 복지와 혜택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에도 적극 투자 활동을 벌인다.

카타르에 경제적 풍요를 선사한 건 원유와 가스 같은 천연자원이다. 그러나 자원은 언젠가 고갈된다. 여기에 카타르의 고민이 있었다. 자원에서 소프트파워로 눈을 돌려 미래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전 국왕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시대부터였다. 스포츠를 비롯해 교육·예술·의료 등 인프라 구축에 집중투자가 이뤄졌다. 스포츠에서는 2019 도하 세계육상선수권, 2022 월드컵 개최권을 차례로 따냈으며 그 열정은 월드컵 유치로 정점을 찍었다. 유치 과정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주요 인사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넸다는 스캔들은 유명하다. 경기장을 새로 짓는 데도 천문학적인 돈을 들였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카타르는 월드컵에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다. 월드컵 개최국으로 본선 데뷔를 치르는 나라는 1934년 이탈리아 이래 88년 만이다. 이런 이유로 카타르는 줄곧 의심과 불안의 시선을 받아왔다. 본선 무대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자칫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처럼 개최국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다면? 흥행에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른다. FIFA는 개최국에서의 흥행을 중요한 미덕으로 여긴다. 월드컵 마케팅으로 축구 대중화에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대한민국을 붉게 물들였던 응원 열기에 감명받은 FIFA는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 아예 마케팅 일환으로 팬 페스트(Fan Fest)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카타르는 적어도 남아공보다는 나은 성적이어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카타르의 본선 경쟁력을 논하려면 아스파이어 아카데미를 주목해야 한다. 전 국왕이 제시한 비전을 기반으로 설립된, 사실상 국가 산하의 스포츠 엘리트 사관학교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을 비롯해 엄청난 규모와 첨단 시설을 갖춘 실내외 훈련장을 꾸렸다. 훈련 시설뿐 아니라 메디컬센터, 스포츠과학 연구소 등 지원 체계도 훌륭하다. 세계에서 모셔온 전문가 집단이 상주한다.

특히 축구는 풋볼아카데미를 따로 운영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설립 당시 최우선 과제는 유망주 육성이었다. 아스파이어 재단은 카타르 축구협회, 카타르 스타리그(QSL, 프로축구)와 계획을 공유하고 실행한다. 아스파이어에서 발굴한 선수들을 대표 스타로 키워내고, 프로리그에서 경험의 수준을 높이는 시나리오다. 카타르 클럽들이 라울 곤잘레스, 차비 에르난데스, 웨슬리 스네이더 등 황혼기의 세계적 스타들을 꾸준히 영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편으로 아스파이어 재단은 외펜(벨기에), 레오네사(스페인) 등 유럽 클럽의 소유권도 갖고 있다. 아카데미의 유망주들을 이 클럽들에 ‘임대’ 보내 유럽의 문화와 훈련 프로그램,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만들었다.

카타르의 히딩크, 펠릭스 산체스

아시안컵 득점왕 알모에즈 알리. ⓒEPA

사실 카타르 출신만으로 특급 선수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언급했다시피 카타르는 인구 290만명의 소국이다. 자국 태생은 30만명 정도다. 과거에는 적극적 귀화 정책으로 대표팀의 경쟁력을 키웠다. 장기적으로는 이민자의 자녀들이 아스파이어 레이더망에 걸렸다. 특히 아프리카 원석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합류한 소년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카타르 국적을 선택했다. 2019 아시안컵 득점왕 알모에즈 알리도 그중 한 명이다. 수단에서 태어나 열 살 때 아스파이어 일원이 된 그는 자라면서 카타르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이들과 함께 훈련한 ‘카타리(카타르 출생, 카타르인)’들도 경쟁을 통해 성장했다. 과거에는 대표팀 경기 선발 명단의 절반 이상이 귀화 선수로 채워졌다. 2019년 아시안컵을 기점으로는 카타리의 출전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제 펠릭스 산체스를 소개할 차례다. 스페인 출신으로 카타르 축구 성장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도자다. 산체스와 카타르의 인연 역시 아스파이어에서 시작됐다. FC 바르셀로나에서 라마시아(유소년 육성 시스템)를 맡고 있던 2006년, 아스파이어 재단의 제안을 받고 카타르로 합류했다. 산체스는 선수 스카우트부터 훈련과 육성 거의 전반에 관여했다. 카타르 안팎의 인재풀을 꿰고 있었다. 아스파이어 유망주들이 각급 대표팀에 선발되기 시작할 즈음, 카타르 축구협회는 산체스를 U-19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결과는? 2014년 AFC 아시아 U-19 챔피언십 우승! 이후 U-23팀(올림픽팀)을 거쳐 A 대표팀 자리에 오른 것이 2017년이다. 올해로 임기 4년째. 카타르 역사상 최장수 대표팀 감독으로 역사를 쓰고 있다.

아스파이어에서부터 청소년대표팀-올림픽팀-A 대표팀에 이르기까지 산체스의 팀에는 연속성이 있다. 그의 축구는 단단한 수비를 기반으로 속도감 있는 공격과 정확도 높은 마무리를 추구한다. 일관된 지도 철학과 훈련법, 소통능력으로 선수들과 맺은 유대감이 끈끈하다. 여담이지만 당시 대회 전 차비의 예언이 화제를 모았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카타르 리그에서 황혼기를 보냈던 그는 아시안컵 우승 후보로 카타르를 지목했다. 카타르를 눈여겨본 이들은 없었기에 ‘오일머니에 영혼을 판 것 아니냐’는 우스개도 흘러나왔다. 실상은 누구보다 카타르의 경쟁력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산체스의 팀은 올해도 큰 무대를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 지난 7월 미국에서 열린 북중미 골드컵에 초청국 자격으로 참가했는데, 준결승까지 올랐다. 아시안컵 득점왕 알모에즈 알리는 이 대회에서도 네 골을 넣고 ‘골든부츠’를 수상했다.

본선까지 남은 시간은 1년 남짓. 축구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긴 시간이다. 감독 교체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당장은 산체스와 카타르의 관계가 끈끈해 보인다. 하지만 지도자로 월드컵 경험이 없다는 점은 흠이 될 수 있다. 한때 지네딘 지단 같은 슈퍼스타가 감독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본선 대비가 거의 친선경기만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어쨌거나 산체스의 팀은 갈 길을 간다. 돈으로 산 축구 축제라는 세상의 비아냥을 동화로 바꾸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쓰고 보니 괜한 걱정이다. 우리 대표팀 갈 길이 구만리인데. 나, 카타르가 조금 부러운…건가?

배진경 (전 <포포투>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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