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권한으로 행정부 견제하랬더니..국회, '기업 군기잡기'에 혈안

장도민 기자 2021. 9.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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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감, 플랫폼 기업 총수나 대표이사 줄줄이 소환..관련 상임위도 난무
행정부 대신 화제성있는 민간기업 CEO들 불러 호통..플랫폼 거버넌스 한계도 드러내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왼쪽부터) © 뉴스1

(서울=뉴스1) 장도민 기자 = 내달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가 총수 및 기업인 증인 채택에 혈안이다. 입법기관인 국회의 행정부 견제라는 국감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세계가 기술 발전에 따른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플랫폼 경제'로 재편됐지만 행정부는 여전히 과거의 '칸막이 규제'를 답습하고 있어 플랫폼 기업 관리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해마다 '군기잡기 국감'만 되풀이하는 구태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IT 국감', '플랫폼 국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한 가운데, 효과적인 플랫폼 규제를 위해 정치인들의 '보여주기 쇼'가 아닌 플랫폼 경제에 맞는 행정부 거버넌스 및 입법체계 등 근본적인 구조개편을 위한 정치권의 자성부터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넓어진 '플랫폼 경제'…부르고보자式 증인 채택에 신음하는 IT기업

23일 국회와 IT업계에 따르면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김정주 넥슨 창업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 등 IT업계 수장들을 대거 증인으로 채택되거나 채택될 예정이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속한 국회 정무위원회는 증인 채택까지 완료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증인으로 확정했고 넥슨코리아 김정주 대표, 메이플스토리 강원기 총괄 디렉터, SK텔레콤 박정호·KT 구현모·LG유플러스 황현식 대표이사 등 통신3사 수장, 쿠팡 강한승 대표이사, 야놀자 배보찬 대표, '머지포인트 사태'로 논란이 된 머지플러스 권남희 대표 등 기업인을 줄줄이 소환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까지 가세했다. 동물용 의약용품 온라인 불법 거래 문제를 추궁하겠다며 한성숙 네이버 대표와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통신판매중개업자인 네이버가 원산지 표시 위반에 관련됐다는 이유로 김정우 네이버쇼핑 대표도 소환됐다.

플랫폼 기업이 주로 속해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도 예상대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 등 플랫폼 기업 CEO들을 증인으로 불렀다. 김정주 넥슨 창업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권영식 넷마블 대표,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이수진 야놀자 대표, 김재현 당근마켓 대표 등도 증인 리스트에 올렸다.

아직 여야 협의가 끝나지 않은 행정안전위원회·문화체육관광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 등도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대기업의 대표를 노리고 있다.

플랫폼을 정조준하는 상임위만 수개에 달한다. 국방 안보 관련 상임위를 빼면 모두 해당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국회가 국정감사에 민간 기업들을 '일단 부르고 보자'식으로 소환한 뒤 '군기잡기'를 하려 든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감에 불려 나온 플랫폼 기업은 우아한형제들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국내 대다수의 플랫폼기업 CEO들이 줄줄이 국감에 소환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해 플랫폼을 희생양으로 삼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이 길어지면서 플랫폼 기업들의 역할이 커졌고, 이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발생했다"며 "이를 이용해 국회의원 자신과 자신이 속한 상임위원회의 주목도를 끌어올리려는 게 아닌지 의심부터 든다"고 토로했다. 이어 "여·야 간 증인 채택 경쟁이 붙으면서 일단 최대한 주목받는 플랫폼 기업 오너나 대표들은 다 부르고 보자는 식의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덧붙였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지난 2018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8.10.10/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국정감사 아닌 기업감사로 변질…네이버·카카오 CEO '뺑뺑이' 돌 판

일각에서는 국정감사가 '기업감사'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정감사의 본질은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관리하기 위한 장치지만, 언젠가부터는 '영양가 없는' 정부기관보다 화제성이 있는 민간 기업 CEO를 불러 호통치고 추궁하는 자리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민간 기업 CEO들이 소환되는 명분은 '증인'이지만, 이들이 증언할 기회도 많지 않다. 되레 현재의 국감은 민간 기업이 행정부를 대신해서 국회의원들에게 혼나는 자리라는 인식이 널리 자리 잡았다.

상임위의 부름에 불응하기도 쉽지 않다.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더라도 오래전 계획한 해외출장 등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출석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일부 여당 의원들은 대리출석 또는 불참 시 직접 현장 실사에 나서겠다는 으름장을 내놓은 상태다.

이에 문어발식 확장, 골목상권 침해, 과도한 수수료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의 CEO들은 6개 상임위의 국감에 모두 참석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그만큼 IT기업들의 플랫폼 사업영역이 확대되고 영향력이 강해졌다는 방증인 반면, 국회와 정부의 관리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현재의 구조대로라면 전 산업군에 진출한 플랫폼 기업들은 매년 6개 상임위 국감에 참석해야 한다. 기업 영역은 다변화되고 성장하고 있는데 현재의 감독체계는 기업의 산업군을 제대로 분류조차 하지 못하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IT기업 관계자는 "플랫폼 기업은 매년 성장하고 역할과 함께 영역은 더 빠르게 넓어져 주목도도 함께 높아질텐데, 반드시 정비가 필요하다"며 "여러 분야에 사업을 걸치고 있다고 해서 매년 국감 때마다 난도질 당하면 플랫폼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j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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