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모두 은퇴한 나이, 망할 뻔 했던 LG맨을 사장님 만든 아이디어

진은혜 더비비드 기자 2021. 9.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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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균 효과 있는 '구리'로 각종 주방제품 만들어 대박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옆집 창업가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직접 개발한 구리 수세미를 들고 있는 한갑수 대표와 구리 수세미 제품 사진. /더비비드, 선우

수세미를 ‘세균의 온상’이라고 한다. 매일 쓰는 물건인데 습기로 인해 인체에 해로운 균에 가장 취약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씨유순(https://bit.ly/38W5pCd)은 항균력이 뛰어난 ‘구리’를 이용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회사다. 구리로 못 만드는 게 없다. ‘구리 장인’ 선우 한갑수(67) 대표가 의 제품 개발노트를 엿봤다.

◇LG상사, 중소기업 컨설팅 등으로 경력 쌓아

한 대표의 과거 모습. /본인 제공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어릴 적부터 사업가가 꿈이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출신입니다. 늘 사람들에게 도움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학문, 의료 등 사람을 돕는 방법은 많지만 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통받는 ‘경제’ 문제에 주목했습니다. 사업가로서 국가 경제에 일조하고 싶었어요.”

1982년 LG상사에 입사했다. “외화 자금, 회계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수출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회사 동기와 선후배들도 훌륭했고요. 하지만 내 사업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89년, 7년 근무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한 대표의 가족 사진. /본인 제공

다양한 사업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중소기업 컨설팅을 오래 했습니다. 전공 지식과 직장 경력을 살려 작은 기업의 회계나 재무를 도왔죠. 장사를 잘해도 관리를 못해서 재무상태가 엉망인 중소기업이 많았어요. 한 번에 세 곳의 기업을 관리한 적도 있습니다. 회사별로 주 2회씩, 주 6일씩 출근했죠.”

◇선우의 한갑수 대표가 ‘씨유순’에 이르기까지

나날이 성장하는 고객사를 보다가 2005년 제조업 창업에 뛰어들었다. 우연히 참숯으로 만든 음식물 쓰레기통의 전국 총판권을 갖게 된 것. 이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 같은 해 11월 주방·욕실 등 생활 잡화를 제조·유통하는 회사 ‘선우’를 세웠다. 딸과 아들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딴 이름이다.

1. 대형 유통처와 효자 상품으로 시장 안착(2007년 8월~)

2010년대 선우의 히트 상품이었던 구르는 손목 보호대 '리스트 프리'. /선우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발간한 책에 소개된 리스트 프리와 한 대표. /더비비드

2007년 독창적 소재의 중요성에 눈떴다. “생활잡화는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남들과 비슷하게 해선 성과를 낼 수 없는 시장입니다. 참숯으로 만든 음식물 쓰레기통,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도마 등 소재 본연의 기능을 활용한 생활잡화를 팔았어요.”

2010년 회사의 성장을 견인할 새 제품을 찾던 중 ‘구르는 손목 보호대’를 발굴했다. “친척이 마우스 패드 같은 뻑뻑한 재질 위에서도 잘 움직이는 마우스 손목 보호대를 만든 뒤 한국 유통처를 찾고 있었어요. 중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특허 등록한 상태였죠. 이 제품의 세계 총판을 맡게 돼 일본, 싱가포르 등에 수출했어요. 국내의 경우 알파문고, 모닝글로리 등 주요 문구점과 삼성전자 디지털플라자에 입점하며 1년에 10만개씩 팔았어요.”

2. 새로운 소재의 양면성을 몰랐던 결과(2015년 9월~)

씨유순에서 출시한 생활 용품들. /선우

남의 제품을 대신 파는 것을 넘어 직접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참신한 소재를 찾던 중 ‘구리’에 눈을 떴다. “2015년 기사를 읽다가 구리의 효능을 알게 됐어요. 항균력이 뛰어난 소재더군요. 그때부터 미친듯 구리를 연구했습니다. 기초과학 분야의 강자인 일본의 동경 전시회와 세상의 모든 물건이 모인 중국 상해 전시회에 참가해서 구리로 만든 주방, 욕실 용품을 살펴봤어요. 해외는 기술력이 뛰어나더군요. 반면 한국은 구리 가공 기술이 외국에 비해 부족했어요. 개선 여지가 많다는 소리였죠.”

2018년 항균과 항바이러스 효능이 뛰어난 구리(Cu)를 내세운 생활 용품 브랜드 씨유순을 내놓고, 구리 도마와 믹싱볼을 출시했다. 구리의 녹는 점은 섭씨 1050도로, 200~300도에서 녹는 다른 향균 소재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이런 특성은 뜨거운 물에 자주 닿는 주방 용품에 적합하다.

기대가 컸는데 시장 호응이 적었다. “구리 제품에 대한 대중 인식이 부족했던 게 패인이었어요. 구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제품 범위를 주방 용품에서 생활용품 전반으로 확대하겠다고 결심했죠.”

3. 낯선 소재를 대중화하기 위해 통과했던 관문들(2018년 4월~)

항균 검사 성적서. /선우
선우 사무실에 비치된 구리 실. /더비비드

제품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항균 시험을 했다. “구리 가루를 합성 수지에 넣고 사출한 판을 국가 시험 기관에 보냅니다. 시험 기관은 판 위에 균을 배양한 후 열흘 정도 내버려둬요. 이후 균의 사멸 상태를 측정하죠. 그 결과 구리를 넣은 플레이트에서 증식된 균의 99.9%가 사멸됐다는 결과서를 받았습니다.”

구리를 응용하는 노하우도 쌓았다. “다른 회사와 협업해서 구리 함유 수세미 개발을 시도했는데 잘 안됐어요. 구리가 고르게 분산되지 않고 뭉쳐 있더라고요. 결국 혼자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구리를 넣은 실부터 개발했어요. 제직 공장까지 섭외했죠. 지난해 7월 구리를 함유한 실 제조 능력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실로 제품을 만들기 전에 한 달 동안 너덜너덜해지도록 쓰고 항균 시험도 의뢰했어요. 99.9%의 균이 사멸됐더군요.”

4. 노하우 체득 후 제품 다변화(2019년 10월~)

구리 함유 수세미(왼쪽)와 황동 싱크대 거름망(오른쪽) /선우

구리를 함유한 가위와 칼, 위생 장갑, 변기시트, 변기솔 등을 온라인몰(https://bit.ly/38W5pCd)에 꾸준히 내놓았다. 구리 변기시트는 대형마트에서만 2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에는 총 2년 반을 투자해 개발한 구리 실로 만든 수세미를 출시했다. “용도에 맞춰 쓸 수 있게 부드러운 것, 거친 것 두 종류로 만들었습니다. 빨아서 널어 두면 알아서 잘 마르고 스스로 살균도 하니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제품이죠. 온라인에서 1주일 동안 1만 6000장이 나갔어요. ‘고객 만족도 94%’라는 성과도 얻었죠.”

같은 해 황동 싱크대 거름망도 내놓았다. “황동은 구리 75% 아연 25% 이루어진 소재로, 스테인리스 소재와는 달리 용접이 안 됩니다. 용접 없이 이음새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 개발 기간만 1년이 걸렸죠. 그만큼 애착이 커요. 항균과 탈취력이 강해서 음식물 쓰레기에 특화된 제품입니다. 제품명도 ‘냄새 잡는 싱크대 거름망’이죠.”

5. 은퇴 없는 게 창업의 매력

그동안 자신이 출시한 제품들을 한데 모은 한 대표. /더비비드

연금술사처럼 구리에 몰입한 덕일까. 올해 한국기업데이터에서 구리 함유 제품 제조 기술로 기술역량우수기업 인증을 받았다. “대형마트 바이어가 저만 보면 ‘구리가 생각난다’며 놀립니다.”

주변 친구들은 모두 은퇴한 시점에도 한 대표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제 일을 하니 늙는 속도가 더딘 것 같아요. 아직은 쉴 마음이 없어요. 오죽 며느리가 ‘아버님은 어떻게 그 나이에 이렇게 열심히 일 하시냐’ 물어봐요.

요즘은 ‘세우는 가위’ 출시 준비에 집중하고 있어요. 세워서 보관할 수 있어 위생적이고 공간 효율이 좋죠. 이 제품 역시 구리를 넣어서 제조할 예정이고 디자인과 특허 등록을 완료했어요. 꼭 멋진 상품을 만들어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은 제가 만든 물건을 쓰도록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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